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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스 Dec 21. 2022

엄마가 떠난 지 49일

꼰대 장녀의 제사 준비 그리고 핸드폰에 녹음된 엄마 목소리

49재.

엄마를 떠나보낸 지 7주가 지났다.

불교적 의미로 보면 49재를 끝으로 비로소 엄마는 하늘로 영원히 떠나는 날이라고 한다. 아직도 믿어지지 않고 엄마가 없다는 게 납득도 실감도 안나며 그저 어느 날 문 열고 집으로 돌아올 것만 같은데 또 엄마와 다시 한번 이별하는 날이 왔다.


우리 집은 사실 종교도 특별히 없고 제사도 유별나게 챙기는 집은 아니었다. 이모는 엄마가 기독교인이길 바랐고 아픈 동안이라도 하나님 믿고 천국 가길 바라며 매일 전화로 기도해 주었다. 엄마도 어릴 적 다녔던 추억을 떠올리며 가끔은 교회에 가고 싶어 했지만 막연한 믿음과 신앙보다는 현실을 살아가는 것과 타협하였었다.


나도 늘 제사는 그저 선세대의 K-고집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었다. 그저 세대가 지나면 다 없어질 불필요한 의식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사람이다. 결혼 후 제사를 지내는 시댁 덕에 조금 제사와 친숙해질 수 있었는데 사실 고인을 추모하는 마음보다는 그저 어머님이 원하시니 며느리로서 소양을 다하고자 했던 마음뿐이었다.

그랬던 나는 49재 제사 준비에 가족들을 꽤나 피곤하게 했다. 아빠는 일회용 접시에 간단히 몇 가지만 가져가서 성의만 보이자고 했지만 나는 며칠을 고르고 골라 제사용 목기를 주문했다. 그리고 시댁 제사에서 배웠던 것들을 떠올리며 제기가 모자를 정도로 음식을 준비했다. 반찬가게에 도움을 받았지만 모두 국산으로 좋은 것으로 주문하고 상이 꽉 들어차게 가짓수를 늘렸고 특별히 빠트린 것이 없는 제사상을 차렸다.

그저 내 고집이었다.

꼰대여도 좋고 미련하다고 해도 좋았다.

정말로 혹시라도 모를 샤머니즘이 실제로 존재해 엄마가 제사상을 통해 뭘 먹을 수만 있다면 매일이라도 차려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매년 제사에 열심이신 시어머니 마음이 이해가 갔다.


엄마가 입원했을 때 입이 아파 뭘 못 먹고 배고프다고 했던 것이 매일매일 생각이 난다.


과일을 무척 좋아했던 엄마.

홍시, 무화과, 망고를 좋아했었고 입원해서는 나에게 시원한 배가 먹고 싶다고 갈아서 좀 갖다 주라고 했는데 나는 엄마 성에 안 차게 대충 갈아서 갖다 준 것이 엄마는 화가 나서 나에게 전화로 화를 냈었다. 엄마답지 않게 화를 내는 모습에서 서운해서가 아니고 안 좋은 예감이 들어 그날 정말 많이 울었었다. 그래서 지금은 배만 보면 엄마한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훈아의 홍시라는 노래는 앞으로 절대 듣지 못할 나의 금지 송이다. 엄마가 홍시 좋아하는 사실은 누구나 알 정도여서 사람들은 홍시만 보면 다 우리 엄마에게 갖다 주었다. 또 엄마는 동생과 갔던 태국에서 먹었던 망고맛을 잊을 수가 없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었다. 우연히 망고 한 박스가 집에 선물로 들어왔을 때 우리 집에 놀러 왔던 엄마는 맛이 영 시원찮다고 하면서도 그 한 박스를 거의 다 먹고 가셨다. 그렇게나 과일을 좋아했던 엄마의 제사상에는 과일도 가득 음식도 가득 올리고 싶었다.


제사를 마치고 친정으로 와 엄마 핸드폰을 오랜만에 들여다보았다. 삼성 핸드폰은 통화가 자동 녹음된다는 것이 문득 떠올랐다. 오디오 파일을 찾고 엄마와 아빠가 서로 나누었던 일상의 통화를 듣는 순간 눈물이 참을 수 없이 터져 나왔다. 옆에 있는 듯이 너무도 생생했다. 엄마가 삼성 핸드폰을 썼던 게 너무 감사했다.


어쩐 일인지 엄마가 아프던 즈음의 통화들은 녹음되지 않았다. 올해 5월까지의 통화들이 마지막 녹음이었다. 엄마의 목소리는 너무나 생기 있고 건강했다. 늘 아프신 할머니의 걱정. 그즈음 코로나에 걸린 손주 걱정. 고객들과의 통화. 떨어져 사는 아빠와 동생들의 끼니 걱정. 온갖 걱정과 남들의 안부를 묻는 통화들 뿐이었다.


한 번만이라도 이기적으로 나 힘드니까 좀 쉴게라고 하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게 쉴 틈 없이 살게 한 가족들을 엄마가 하늘에서 원망해도 좋다. 그저 편안하고 행복하게만 하늘의 삶을 마음껏 누렸으면 좋겠다.


엄마가 떠난 후 두 가지 마음이 공존한다.

어서 따라가서 엄마를 보고 싶은 마음과 또 다른 죽음의 공포. 가까운 사람이 떠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내가 겪은 엄마를 잃은 슬픔을 내 딸이 나만큼 빨리 겪게 될까 봐 두렵다. 죽음은 다시 한번 인간의 능력 밖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운명은 어디까지일까.


예정일이 1/1이었던 내 딸에게 억울하게 나이 먹게 해주고 싶지 않아서 버티고 버텨 22년 새해 첫 평일날 딸을 낳았다. 그렇게 축복과도 같은 2022년이 내게 이렇게 가장 큰 슬픔을 주게 될지 몰랐다. 그만큼의 행복을 누릴 자격이 부족했었나 보다. 다른 그 어떤 좋은 일로도 보상받을 수 없을 슬픔이기에 앞으로의 새해 그리고 밝은 미래가 기대되지는 않는다. 그저 주어진 현실을 딸과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기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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