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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스 Nov 09. 2022

엄마가 떠나고 [7]

멈춰 선 것들

돌아가시고 나니 엄마의 이야기를 쓰는 게 더 힘들어졌다. 엄마를 외면해야만 조금 견딜만하게 살아지는데 다시 끄집어 추억하려니 마음이 아린다. 사람들이 한 번씩 툭 괜찮냐고 물어본다. 괜찮게 살고 있는 것 같았는데 괜찮냐는 소리에 단단하게 쌓았다고 생각했던 울음 장벽이 무너지곤 한다.



엄마의 발인 날 화장터로 가는 버스 안에서 브런치 작가 합격 메일을 받았다. 난 정말 끝까지 엄마 등골 빼고 사는 등골 브레이커구나 싶었다. 엄마 얘기로 그동안 하고 싶었던 브런치 글을 발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조금 더 힘내서 엄마 얘기를 써봐야겠다. 나중에 엄마 어떻게 돌아가셨어? 하면 안 그래도 기억력 없는 내가 잘 기억이 날까 싶어서가 글을 쓰고 싶은 이유였는데 쓰다 보니 엄마는 참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엄마는 손주 보는 게 늘 소원이셨다. 보험회사 사무실에 가면 할머니가 된 동료들의 손주 자랑대회가 열리는데 재밌는 것은 사무실 가운데 돈통이 있고 참가비 500원을 내야만 손주 사진을 보여줄 수 있다고 했다. 동영상은 밥을 사야 한단다. 엄마는 이제야 밥도 사고 돈도 낼 수 있게 됐다며 좋아하셨는데 그 기쁨은 너무나도 짧았다.


엄마의 기쁨 중 하나는 회사와 가까운 남대문 시장에 가서 신나게 손주 옷을 살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원래도 영 옷에 감각이 있지 않았던 외할머니의 옷 선물들이 내 맘에 쏙 들진 않았지만 (가족들이 베트남 수출품이냐고 놀리기도 했다) 그래도 그 자체가 좋았다. 외할머니가 사준 옷 입혀 사진 찍어 보내고 어떠냐고 물어보고 우리 손주 너무 예쁘다고 하던 그 소소한 대화들이 그립고 맘이 아리다. 이제는 외할머니가 사준 옷들이 다 작아져버려 맘이 아프다.



매일 오후에서 저녁쯤 되면 늘 카톡이 울렸다.

우리 시윤이 뭐해?

얼른 오늘 찍은 사진 보내라는 뜻이다.

우리는 시윤봇 알람 왔다고 장난처럼 얘기했었다.

난 시윤봇에게 사진을 보내기 위해 하루 종일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엄마가 깊이 잠든 이후 멈춰서 버린 시윤봇의 알람 때문에 엄마가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이 크게 실감이 났다. 그게 제일 아팠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고 너무 눈물이 나서 엄마가 보냈던 카톡들을 다시 보는 것이 두려웠다. 병원에 가서도 시윤이의 똑같은 동영상을 열 번도 넘게 보고 있다고 했었던 늘 손주가 보고 싶었던 엄마였다. 내 새끼를 유일하게 나만큼 사랑해주는 사람이 또 우리 엄마였다. 친정엄마.


돌아가시기 이틀 전날 내 꿈에 엄마가 나왔었다. 그동안 오래 자서 미안하다고 잘 자고 일어난 얼굴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예뻤다. 난 그런 엄마를 꼭 껴안고 있었다. 그 품이 꿈속에서도 너무 따뜻했었다. 그렇게 엄마는 나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났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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