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의 애개육아 후기
임신 출산을 겪은 여성들이 98프로 가입한다는 맘 X홀릭이라는 맘 카페에는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반려동물 게시판의 주된 이야기는 과연 나의 아기와 반려동물이 서로 잘 지낼 수 있을까요?라는 막연하고 정답이 없는 질문들이 쏟아졌고 감동적이고 이상적인 사례의 댓글들로 서로를 안심시키곤 한다. 미래를 알 수 없던 두려웠던 임신 기간이 끝나고 조리원에서 아기와 함께 돌아온 날 우리 집 반려견 또띠의 뜻밖에 반응에 놀라웠다.
아기 보고 사냥감이라고 생각하고 덤비면 어쩌나 했던 쓸데없던 걱정은 무색하게 아기를 보고 무서워서 줄행랑을 친다.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이 생명체가 어찌나 무서운지 이틀 동안은 잘 들어가지도 않던 골방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처음엔 나도 굉장히 예민했다. 처음 키워보는 신생아인 데다가 속을 알 수 없는 이 고라니를 닮은 갯과 동물로부터 보호도 해야 하기 때문에 둘만 두는 일이 없도록 24시간 와치 했고 애님 개님 모두 섭섭지 않게끔 최선을 다했다. 만 10개월이 지난 지금은 애개 서로가 꽤나 신뢰를 다졌는지 질서 있는 삶을 사는 중이다. 너머서 아이 곁에 사랑스러운 또띠가 있어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 줄 모른다. 아이도 나도 한없이 주기만 하는 이 개님 또띠에게서 많은 위로와 웃음을 받는다.
또띠는 온순하고 착한 기질의 강아지이기 때문에 사실 좀 더 수월하게 서로에게 적응시킬 수 있었다. 심지어 고맙게도 짖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그간에 데이터가 없기에 우리가 모르는 모습이 있지 않을까 싶어 항상 조심했고 지금의 평화가 생기기까지 몇 가지 주의만 한다면 걱정 없는 이상적인 애개육아가 가능할 것이다.
침착견 만들 수 없다면 알아서 피하기
강아지는 하루 중 이따금씩 흥분할 때가 있다. 산책 후나 장난감을 던져줬을 때(흠 아니 스스로 던질 때) 이때는 그동안 선비처럼 걸어서 아기를 피해 다니던 착한 강아지는 없다. 그냥 냅다 밟고 뛴다. 주로 자기 나와바리였던 거실과 소파도 뛰고 아기고 뭐고 다 밟아버리니 개가 좀 흥분해서 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아기를 무조건 안거나 침대로 옮겼다. 아기가 스스로 기고 앉기 전까지 제일 유의한 점이다. 평소에는 주로 강아지도 잠을 자기 때문에 그냥 소파나 바닥에 내려놓고 잘 지냈다. 지금은 기고 걷고 하기 때문에 밟을 일은 없어졌다. 이제는 개가 밟히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역방쿠는 두 개로 개님도 섭섭지 않게
역방쿠라 불리는 역류방지 쿠션은 아기를 내려놓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아이템이지만 강아지에게도 너무나 가서 깔고 앉고 싶은 꿈의 방석이다. 아무리 말로 주의를 줘도 아기가 자리만 비우면 자기 자리인 양 가서 똬리를 틀었다. 결국엔 포기하게 된다. 그래 너도 앉고 아가도 눕고 될 대로 돼라. 위생과 털은 그냥 흐린 눈 하기로 한다. 두 개 중에 한 개는 그냥 개님에게 양보하고 스트레스받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애착과 질투
이탈리안 그레이하운드인 우리 집 또띠는 털이 짧아서인지 사람이 만져주고 겨드랑이에 들어가서 팔베개를 해야만 잠을 자는 요물 같은 아이다. 아이가 없을 때는 그게 견딜만했고 참 행복했는데 이제는 내 곁을 내어줄 수 있는 여유가 사라졌다. 수시로 만져달라고 와서 머리를 들이밀고 궁둥이를 내미는 이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한 번씩은 방울뱀 소리 ‘습’으로 거절해야만 하는 상황이 생긴다. 가슴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는 개님의 당분간의 운명이다. 신생아 때보다는 그래도 지금은 훨씬 같이 자고 껴안고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약간은 더 많아졌다. 앞으로 훨씬 나아지리라 보며 개님에게 양해를 구해본다. 다행히도 이러한 반응에 긍정적인 일이 일어났다. 사람들이 외출하여 혼자 집에 있으면 분리불안이 유난히 심했던 또띠의 상태가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 혼자 켄넬에서 잠자는 시간도 많아졌고 여전히 밤에는 침대에서 엉켜서 자지만 그래도 외출했을 때의 불안도는 많이 나아져서 어찌 보면 나의 일방적이었던 애착이 둘로 찢어지면서 또띠는 좀 더 성숙해졌고 심리적으로 더 안정돼 보인다.
예상 못한 주의사항
아기는 태어나서 한 달이 지나면 구강기가 시작되고 18개월까지 지속된다고 한다. 구강기에 강아지도 입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예상 못했다. 유난히 긴 꼬리를 가진 또띠의 꼬리는 늘 아기의 입속을 향했고 잡기가 가능해진 시기부터는 또띠의 토끼 같은 귀가 공격당했다. 사정없이 잡아당기는 이 아기에게서 처음에는 또띠도 잽싸게 도망 다니더니 지금은 조금 체념하고 그냥 귀를 잡혀주는 착한 아이다. 그러다 주체가 안돼서 조금 심하게 잡아당기면 비명을 지른다. 아무튼 또띠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같이 있을 때 항상 잘 지켜보아야 한다. 지금은 별일 없이 지내니 대수롭지 않은 일일수 있지만 아기가 공격한다고 판단이 되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는 게 또 개의 본능 아니겠는가. 어찌 됐든 내 눈은 쉴 수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개육아는 굳이 추천하지는 않지만 나의 자랑거리이자 내가 버티고 살아가는 이유이기까지 하다. 나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이 두 마리의 내 강아지 내 새끼가 주는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강아지의 작은 행동에도 순수하게 즐거워하는 아이의 웃음을 보면 정말 같이 키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엄마 걱정에 하루 종일 눈물로 지낼 때도 강아지가 있어서 아기는 그래도 많이 웃을 수 있었다. 이 웃음에 나도 웃음이 난다.
이들을 지켜내야 하기 때문에 나는 또 하루를 버티게 된다. 다소 진부한 내용이지만 또 이렇게 기록하며 지난 근 1년을 되새겨본다. 비록 지금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행복해야 할 이유는 내게도 많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