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보 작가님 에세이 ‘애정 재단’을 읽고, 나의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사랑. 사랑은 이 세상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단어라고 생각이 든다. 모두가 사랑에 대해 노래한다. 오랜 역사 속에서 모두들 끊임없이 사랑한다. 다양한 모습을 하고 이 세상에 존재한다. 추상적인 개념이라 어디에도 존재하는 것 같으면서도, 어떨 때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이렇게나 어려워 보이는 개념을 사회에서는 꽤나 확고한 어떠한 형태로 정의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그렇게 명확하게 그려서 나에게 답으로 내놓는데도 나는 여전히 나의 사랑이 어렵다. 그리 단순하게 생각되지가 않는다. 여전히 궁금하다. 이 기회에 나의 사랑은 어떤 건지 면면히 살펴보고 싶었다. 사랑은 메타몽이다. 항상 모양을 바꾸고, 그에 따른 부산물들도 늘 다채롭다. 같은 형태를 띠는 것 같다가도 본질은 다르기도 하다. 책을 통해서는 내가 만난 사랑과 비슷한 사랑을 목격하기도, 새로운 사랑의 존재를 알아가기도 한다. 여러 형태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내가 책을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보 작가님의 사랑도 하나같이 순수하고 아름다웠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또 새로운 사랑을 보았고, 배웠다.
2.
낯간지러워 보일까 두려워 입 밖으로 쉽게 꺼내지 못하는 말이지만, 내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사랑이다. 나는 사랑을 사랑한다. 사랑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나는 모든 것을 사랑(정확히는, 사랑하고 싶어) 한다. 나를 제일 강하게 만드는 것도 사랑이고, 나를 가장 약하게 만들 때도 이유는 늘 사랑이다. 어릴 때는 마음 안에 넘치는 사랑을 어떻게 표출해야 할지 몰라 늘 어려웠다. 상대를 파악하고 상황을 파악하기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는 넘치는 사랑을 대뜸 내놓아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기도 하고, 내 안에 있는 사랑을 다 펼쳐서 보여주기도 했다. 이따금 그게 나의 약점이 되어 상대방은 나를 쥐락펴락하며 무기로 휘두르기도 했다. 적당한 정도의 사랑을 내놓는 것. 적당한 정도의 사랑을 하는 것. 나이를 먹으면서 더 이상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이제는 적절한 양의 사랑을 하고, 받고자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렇게 되니 혼자만 간직하는 사랑이 늘어나고, 더 이상 뜨겁게 내 사랑을 펼쳐 보일 용기가 사라진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그 대상이 무엇이 되었던) 뜨거운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멋져 보인다. 사랑이 많은 사람은 상처받기 쉬운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동경한다. 모든 것들을 사랑하고 싶어 하는 나의 욕심 때문에 내 머릿속은 늘 바쁘다. 이 사람을, 이 상황을 이해보고자 늘 끊임없이 노력한다. 어떤 것도 미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싫어할 때일수록 사랑하려고 한다. 불가능한 것을 알면서도 매일매일 무모하게 이 세상을 사랑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
3.
사랑을 받는 것도 예외는 아니다. 나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싶어 하면서도, 사랑을 받을 때에는 이기적이게도 내가 원하는 사람에게, 내가 원하는 형태의 사랑을, 원하는 정도만 받고 싶어 한다. 사랑을 줄 때 보다 받을 때 더 까다롭게 구는 사람인 것 같다. 원하는 사랑이 아니면 나를 사랑하지 않았으면 하는 이기적인 마음을 품을 때 도 있다. 나는 가끔 사랑을 받으면 빚을 진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이만큼의 사랑을 보답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있다. 어쩔 땐 그렇게 잠시 있다가 사라질 사랑일까 두려워 애써 받지 않으려고 할 때도 있다. 겁이 많은 나는 누군가가 주는 사랑을 함부로 받지 않으려고 한다. 사실은 누구보다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인데 사랑을 받을 때에도 나는 상처받지 않기 위한 계산을 하는 사람이구나. 사랑을 하는 것만큼 잘 받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4.
사랑은 다양한 형태로 모양을 바꾼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것들만 품을 것 같은 사랑은 가끔 가혹하고 잔인해지기도 한다. 과도한 사랑은 명백히 폭력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휘두르지 않도록 늘 경계해야 한다. 나의 것은 나의 것 대로, 상대의 것은 상대의 것으로 존중하는 마음. 그게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랑이더라도 그 결과가 폭력적이라면 그것은 폭력일 뿐이다. 그냥 폭력보다 사랑의 이름을 한 폭력이 제일 슬프고 악하다고 생각한다. 너를 너무 사랑해서, 다 너를 위해서라고 한다면 자꾸 그 마음을 이해해 보려고 하니까, 쉽게 미워할 수 없게 하니까 너무 잔인하다.
5.
사랑은 늘 아름다운 형태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나와 너의 사랑이 만났을 때 괴물을 만들기도, 지옥을 만들기도 한다. 분명 두 사람이 품고 있는 건 사랑인데, 사랑에게 잡아먹혀버리는 사랑도 있다. 나도 더러 해 본 적 있는 사랑이다. 함께 파멸하고 있음에도 끊어내지 못하는 사랑이 있다. 사랑의 달콤함에 기꺼이 속아 버리는, 사랑이 가진 힘은 강력하다. 나를 파멸로 이끄는 걸 알지만 거부하지 못하고 이끌려간다. 가장 비극은 그것도 사랑이라는 것이다. 사랑은 달콤하고 자극적이다.
6.
최근에 새로 알게 된 사랑. 고양이를 키우면서 느끼게 된 사랑. 단언컨대 나에게 이런 형태의 사랑은 고양이 이 외에 것에게 품을 수 없는, 가장 완벽한 상태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무한한 사랑을 주면서도 상대에게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랑. 이런 마음을 부모가 느끼는 사랑이라고 하던데, 상대가 인간이라면 이런 마음을 결코 가질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사랑하기에 너가 잘 되었으면 좋겠고, 사랑하기에 너가 행복했으면 좋겠고, 행복했으면 좋겠으니 이렇게 했으면 좋겠고 저렇게 했으면 좋겠고, 사랑의 이름을 한 사랑이 아닌 무언가가 자꾸만 끼어들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나를 사랑해 주지 않아도 되고, 그저 내 옆에서 숨 쉬고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마음이 드는 형태의 사랑은 아마도 내 인생에서 이 아이가 유일할 거란 생각이 든다.
7.
내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 처음 만났던 건 고등학교 2학년 일본 유학 준비를 하며 만났다.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국경을 넘어 함께하고, 멀리 있을 때도 가까이에 있을 때도 10년은 가뿐히 넘도록 함께 있는 매일이 즐겁고, 매번의 대화가 즐겁고, 나를 가장 깊게 이해해 주는 친구. 어떤 순간에도 기꺼이 이해하고 싶고, 옆에 있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친구. 너무 잘 맞아서 오히려 가끔 내 인생의 저주 같기도 한 친구. 이렇게까지나 잘 맞고 늘 만나면 재밌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알아버려서, 자꾸만 이 정도로 잘 맞는 사람을 찾게 된다. 내가 사람에 있어 곁을 쉽게 주지 않고 유독 까다롭게 구는 이유는 너를 만나서가 아닐까. 이게 사실은 엄청난 행운인 건데, 또 다른 행운을 당연하게 바라는 사람이 되어버린 거라면 저주가 아니고 무엇일까. 항상 기꺼이 나의 안전지대가 되어준 너에게 감사하다.
요새 내가 느낀, 또 목격한 다양한 형태의 사랑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나는 아직 사람에게 사랑에게 있어 겁이 많은 사람이구나 싶다. 나 꽤나 강력해진 줄 알았는데..!
하지만 나는 나처럼 적당히 약하고 여린 사람들과 각자의 몫을 함께 보태고 더해 다채롭고 풍부한 삶을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미숙한 사랑의 방법으로 적당히 나누고 지금처럼 그래왔듯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아야지. 별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