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책상은 사치다?
어쩌면 아이들보다 엄마의 책상이 더 필요한 지도
모른다. 엄마의 책상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밥상이라도. 그곳에서 엄마의 꿈이 피어나니까.
안으로 접힌 짜리 몽땅한 상다리를 딸깍 소리가 날 때까지 펼쳤다. 정사각형 나무 밥상은 캔맥과 쥐포를 뜯어먹던 애착 술상이었다. 책상보다 술상이 더 친숙했던 때가 있었다.
첫째가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거실에 있던 텔레비전을 안방으로 옮겼다. 거실 전면에 책장을 넣고 6인용 식탁을 들였다. 이때만 해도 아이들이 어려서 큰방에서 네 식구 같이 자고 거실에서 생활했다. 6인용 식탁은 넓었지만 늘 아이들의 책과 색종이, 그림 그리던 도구들로 가득했다. 치우면 또 어질러졌다. 나도 내 책상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창고로 쓰던 작은 방에 책상과 책장을 넣고 나만의 공간을 만들었다. 김미경 강사님이 이끈 514 챌린지에 참여했다. 14일 동안 새벽 5시에 일어나 강의를 듣고 인증했다. 3월부터 시작하여 10개월을 블로그에 짧은 글도 올렸다. 나도 무언가 하고 싶은 마음이 꿈틀대던 그 해 겨울, [슬기로운 초등생활 TV] 이은경 선생님이 주최한 브런치 작가 모집에 참여하게 되었다. 6수 만에 붙었지만 엄청난 일을 해낸 것만 같았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작은 공간에서 나만의 책상이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다. 책상에서 고민하고 책상에서 작가의 꿈을 키워나갔다.
일 년 뒤 지금 있는 곳으로 이사를 왔다. 방은 세 개지만 내 방은 없다. 두 딸은 초등 고학년과 중학생이 되었고 각자의 방을 만들어줬다. 6인용 식탁은 내 차지가 되었다. 좋은데 번거롭다. 분명 내 책상인데 모두가 사용하는 공간이었다. 저녁이면 책상이 밥상이 되었다. 두 딸은 숙제를 하다가도 그대로 두고 밥만 먹으면 되는데 왜 나는 밥 먹을 때마다 다른 곳으로 치워야 하는지. 여기저기 펼쳐져 있는 내 책과 노트북, 필기도구를 보며 빨리 치우라는 눈치가 보였다. 언제까지 이래야 되는지 어떡해서든 내 책상 놔둘 곳을 만들어야 했다. 안방은 남편이 실내자전거를 타며 텔레비전을 본다. 결국 거실밖에 없다.
거실에 피아노, 6인용 식탁과 내 책상, 3단 책장을 놔두니 공간이 좁아졌다. 어쩔 수 없다. 이제 아이들도 각자 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다. 둘째가 세 명이 쓸 만큼 큰 책상을 사용했는데 넓은 만큼 어질러져서 내가 쓰기로 했다. 둘째는 예전에 내가 쓰던 검은 책상으로 바꿔주었다. 돌고 돌아 나만의 책상을 가지는 데 성공했다.
하나를 가지면 더 바란다고, 내 방도 가지고 싶다. 거기까진 무리다. 이사를 하는 수 밖엔. 만남의 광장인 거실은 남편, 두 딸이 냉장고 문을 한 번만 열어도 세 명이 돌아가며 드나든다. 화장실을 가더라도 고개가 돌아간다. 온라인 강의를 듣다가도 손톱깎이가 필요하면 대답해 준다. 안 들리는 척해봐도 다 들린다.
분가를 하기 전까지 의도치 않게 아이들에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 엄마가 거실에서 무얼 하는지 다 안다. 2년 간 독서하고 글 쓰면서 출간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출간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다.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재촉하는 엄마보다 내가 먼저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둘째가 다가와 나도 엄마처럼 나중에 내 일하면서 저녁에 글 쓰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나중으로 미루지 말고 지금 해도 되는데 말이다. 엄마 본능;)
두 딸이 자라서 다른 건 몰라도 엄마처럼 나만의 시간, 나만의 책상을 당연하고 당당하게 사수하여 자신만의 꿈을 키워나갔으면 좋겠다.
꿈의 가장 좋은 교과서는 바로 엄마다.
<꿈이 있는 아내는 늙지 않는다>중에서
'엄마처럼 살지 마라'가 아닌
'엄마처럼 살아도 괜찮아'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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