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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가 나쁜 거라 하자

by 햇님이반짝


중3, 중1 사춘기 절정일 때다. 돌아오는 말이 곱지 않아 마음 곪아 문 들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나마 둘째는 자주 대화도 하고 여전히 자기 전에 꼭 안아주고 간다. 문제는 큰 딸이 현재 진행 형이다.




며칠 전 설거지 끝내고 앉아있는데 뒤늦게 텀블러를 꺼내와 씻어달라는 큰 딸. 나는 못 씻어준다 했더니 아빠를 부른다. 그전에 둘째 텀블러를 씻어준 아빠는 할 수 없이 일어나 큰딸 텀블러를 씻어준다. 그러곤 화장실 가는 길 눈에 들어온 큰 딸의 처참한 방 상황. 옷걸이가 하는 역할이 없다. 방바닥이며 침대 위 프린트기 위까지 옷으로 덮여있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법한 상황이다. 방 청소를 하라고 하니 "왜?"라는 대답에 말문이 막혔다. 어떻게든 안 할 핑계만 둘러대다 결국 아빠에게 당장 치우라는 소리를 듣고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해졌다.


정작 본인이 필요한 물건이나 원하는 일이 있을 때만 세상 친한 척을 한다. 외출할 때면 팔짱을 낀다. 미운 말과 행동이 일상이지만 바깥에서 팔짱을 낄 때면 굳이 뿌리치지 않는다. 이때만 붙어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내가 먼저 안기라도 한다면 옆집사람 볼 때도 그런 눈초리는 아니겠다. 자존심도 상한다. 이미 지고 있는 걸 알지만 먼저 살갑게 다가오면 뿌리칠 수도 없다.


요 며칠 거실에서 음악을 틀고 춤을 춘다. 이쯤에 여자애들 일곱 명이 나오고 남자애들은 옆에서 대기한단다. 안무를 보라고 하는데 내가 보면 아나? 평소 하는 행동을 생각하면 어이없지만 환하게 웃으며 여기까지 외웠다고 같은 동작을 반복할 때면 세상에서 제일 착하고 예쁜 딸인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크리스마스이브날 학교에서 뮤지컬 공연이 있단다. 덕분에 나는 딸아이의 공연을 미리 볼 수 있다. 학교에게 감사하다.




백번 밉게 행동해도 한번 살갑게 다가오는 모습에 스르르 녹는다. 그러다 또 언제 비수 꽂히는 말로 뒤통수 칠지 모른다. 그럼 그렇지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엄마는 그런가 보다. 이제 우리 같이 붙어 있는 날 짧으면 3년이라 생각하니 또 쓸데없이 눈가가 뜨거워진다. 엄마 딸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아직까지는 너의 생떼를 받아줄 여력이 된다. 그러려고 책도 읽고 글도 쓰는 거니까. 사춘기가 나쁜 거라 하자. 성인 되어도 지금과 같이 들쑥날쑥 변덕 심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도 된다. 그때는 엄마도 지금보다 조금 더 성숙해지길 바란다. 엄마의 내공이 부족해서 너를 다 담지 못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그냥 어제 우리 딸 춤추는 게 너무 예뻐서 끄적여본다. 이런 날도 있었구나라고 돌아볼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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