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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May 02. 2024

요똥이 요똥이에게


요리 똥손이다. 누구도 자진해서 요리를 못하고 싶은 사람은 다. 하기가 싫으니 정이 안 간다. 요리보다 다른 곳에 관심이 많을 뿐이다. 혼자 사는 것도 아니고 아예 손을 놓을 수도 없다. 저녁은 먼저 퇴근하는 사람이 준비를 한다. 남편이 당다. 가끔 내가 하는 날은 부담이 크다. 혼자 먹었다면 라면이나 김치, 쥐포, 김만 있어도 한 끼 뚝딱이다. 달걀만 추가해도 든든하다.


저녁 일곱 시만 되면 두 딸내미들이 저녁 메뉴에 대해 궁금해한다. 아빠가 늦을 시 나의 퇴근 시간에 맞춰 전화를 한다. 백 프로 묻는 질문은 뻔하다. 본인들이 원하는 맛있는 메뉴가 아닐 시 이제는 대놓고 그건 아니라고 거부한다. 내가 하는 메뉴는 한계가 있기에 선택권이 없다. 빠르고 간결영양은 또 챙기고 싶다. 샐러드를 좋아하지만 이것만 내놓았다가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더 커질지도 모른다.




애호박 전을 좋아한다. 아이들도 크게 싫은 내색은 없다. 믿고 보는 반찬이다. 간단하면서 영양가도 있다. 한 개에 천 원 간혹 초특가바겐세일로 세 개에 이천 원하는 날이 있다면 몸을 던져서라도 쟁여두어야 할 필수 채소다.

애호박 하나에 달걀은 넉넉히 세 개를 준비한다. 자른 애호박은 하나씩 달걀물에 넣는다. 한꺼번에 넣으면 딱 달라붙어버려 떼는데 애를 먹는다. 달걀물도 고르게 안 묻히고 프라이팬으로 옮길 시 빨리 떼어지지 않아 굽는 속도가 달라진다. 달걀물은 아끼지 말고 한판씩 구울 때마다 조금씩 부어준다. 애호박만 구웠더니 마지막에 달걀물이 많이 남아 따로 구웠다. 훗, 이런 섬세함이란, 해본 자의 여유다. 사실 이 모든 과정을 이번에 구우면서 알았다. 빨리 굽고 먹을 생각에 다 생략했더니 번거로웠다.


달걀물에 폭 안겨 노릇하게 구워진 애호박이 부드럽고 맛있다. 케첩까지 찍어 먹으니 더할 나위 없다. 아이들도 손이 분주하다. 막판 달걀물이 많이 들어간 애호박이 제일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덜 익었네


역시나 내부의 적은 그냥 넘어갈 리 없다. 처음으로 하나 집어 먹은 남편이 말했다. 아니 얇은 거 다 놔두고 하필 제일 굵게 잘린 걸 콕 집어 먹다니. 그 뒤로 둘째 딸이 요리조리 살피더니 얇은 것만 골라 먹는다. 덜 익어서 식감이 살아있다는 생뚱맞은 칭찬 따위를 바라선 안된다. 현실은 덜 익은 거다. 다음에 더  구우라는 말이다. 바삭 구우면 달걀이 타버릴 것 같다. 불을 낮추고 그윽하게 구워내야 한다. 정작 구울 때는 생각나지 않았던 것이 글을 쓰며 알아간다. 말캉한 느낌 아니면 간혹 서걱댈 수 있다. 그때마다 식감이 다른 이유는 내가 구웠기 때문이다. 씹을 때마다 새롭다. 각자의 개성은 요구하면서 왜 음식은 하나의 맛을 선호하는지. 만드는 입장과 먹는 입장은 다르다. 먹어 보면 안다. 음식도 글도 가족과 독자를 위한 거니까.

구나 할 수 있다. 내 손으로 애호박을 사기만 하면 반은 한 거다. 양파와 당근을 넣으면 더욱 풍성하겠지만 요똥은 애호박도 버거울 수 있다. 애호박과 달걀만 있어도 한 끼 든든히 해결할 수 있다. 안주로도 안성맞춤이지만 아쉽게도 알코올과 거리두기 중이다. 반찬 하나정도 숨 쉬듯 만들어 낼 수  불시에 찾아오는 당번이라도 부담은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애호박조차 자신이 떨어질 뻔했지만 주부도 요똥일 수 있다. 일 다닌다고 다 뚝딱 해치울 수 없다. 반찬가게가 비는 이유는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내 손 내(애호박) 전으로 만드는 맛을 안다. 애호박 전으로 한 접시 푸짐하게 내어놓으니 뿌듯함은 덤이다. 요똥들이여 힘을 내자! 아쉬운 게 있다면 손이 느려 식기 전에 먹는 게 또 하나의 미션이긴 하다. 다음에 조금 더 잘해보고자 하는 마음 하나면 충분하다. 아예 손 놓고 있는 것보다는 낫다. 요 어미도 배달비를 줄이고 싶다. 쉬운 것부터 하나씩 정복해 나가보려 한다. 하다 보면 다음엔 애호박을 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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