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님이반짝 May 29. 2024

인라인 위에서 인생을 보았다


중2딸이 인라인을 타고 싶다고 했다. 어릴 때는 조카가 타던 것도 받았고 중고로도 사주었다.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깥 활동이 잦아 차에 늘 인라인과 보드를 싣고 다녔다. 폭풍 성장한 아이는 키도 몸무게도 어느덧 나를 넘어섰다(엄마가 크지 않아 빨리 따라잡았나 보다) 첫째는 운동화도 나와 같은 사이즈를 신는다. 제 발이 더 클 일은 없겠지 하며 인라인을 주문했다. 


랜만에 인라인을 탈 수 있는 전용공원에 왔다. 아이들도 한동안 타지 않아 많이 조심하는 눈치다. 생각보다 오래 타진 않았다. 40여분 뒤 꽤 지친 기색이었다.

이제 정리하고 가려는데 나도 한번 타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금까지는 사이즈도 안 맞았기에 타볼 수도 없었다. 언제 마지막으로 타봤는지 기억조차 안 난다. 헬맷과 무릎보호대를 찼다.


인라인을 신고 일어서는데 보호자가 필요했다. 두 딸을 붙잡고 간신히 일어섰다. 전용 길까지 나가는 동안 바닥이 울퉁불퉁하여 부축을 받았다. 아이들은 엄마가 인라인을 타보려는 게 신기하면서도 불안해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라인을 신고 걸어 나가는데 오랜만에 타보려니 긴장되면서 설렜다.




트랙 위로 올라섰다. 이제 막 걸음마 하는 아기처럼 조심스레 한 발씩 걸었다. 적응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한발 한발 앞으로 쭉쭉 내밀었다. 오른 밀고 발 밀었다. 허리는 꾸부정하니 자세는 볼품없으나 나아가고 있었다. 속도가 조금 난다 싶으면 발을 밀지 않았다. 두발을 땅에 대고 그대로 중심을 잡으며 속도가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서서히 줄어들 다시 한 발씩 밀고 나갔다. 바람을 가로질렀다. 머리카락이 휘날린다. 시원했다. 마음 같아선 더 빨리 달리고 싶지만 움찔했다. 내 의지대로 멈추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출발하는 건 된다. 멈추기 위해선 속도를 줄여야 했다.


딸들이 말했다. "어머니 왜 이래 잘 타?!"

그랬다. 아이들보다 내가 더 잘 탔다. 남편이 어릴 때 자전거 타던 걸 배워두면 커서도 바로 탈 수 있는 거와 같다고 했다. 내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엄마가 된 나는 아이들만 태워주려고 했다. 늘 의자에 앉아 폰을 보거나 주위를 걸었다. 딱히 탈 의욕도 없기도 했었다.




인라인을 타 봤더니 살아가는 것과 닮았다. 중심을 잘 잡아야 했다. 앞으로 잘 나아간다고 조금 더 욕심내어 속력을 내면 자칫 넘어질 수가 있다. 몇 번을 휘청거렸지만 버텼다. 허리를 살짝 숙여야 해서 찌뿌둥하기도 했다. 앞을 주시하면서 내가 나아가는 방향대로 한발 씩 내딛으면 된다. 내 속도에 안정감을 느끼면 불어오는 바람도 만끽할 수있다. 편안함도 잠시 한시도 긴장을 놓아선 안된다. 가끔 허리도 펴가며 하늘도 바라본다. 그렇게 나아가며 버티기도 하고 속력도 내어본다. 마침 이곳엔 우리 가족외엔 아무도 없었다. 비교하는 이 없이 나만의 속도로 나아갈 수 있어 즐길 수 있었다. 인라인 위에서 인생을 보았다.


오랜만에 새로운 경험을 였다. 배울 때는 적극적으로 넘어지고 다치고 부딪혀봐야 하는데 한 살씩 먹을수록 모든 게 조심스러워진다.  틈도 없이 몇 바퀴를 돌았다. 아이들이 가자고 하지만 들리지 않는다. 한 바퀴만 더를 연이어 내뱉은 다음 겨우 멈추었다. 달리기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다시 생각난다. 새로운 취미가 생긴 듯하다. 다음엔 아이들보다 내가 먼저 인라인을 꺼낼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빠르게 실패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