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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May 31. 2024

배도 부르고 마음도 부른 하루


내가 쉬는 날 중학교 친구가 우리 집에 온다고 했다. 금주하고 글 쓰며 운동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다 보니 이렇게 누군가가 먼저 보자고 하지 않으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다.


수요일에서 목요일로 넘어가는 기나긴 새벽시간을 그냥 흘러 보내기가 아쉬웠다. 독서하며 글도 썼다. 긴긴밤 같지만 금세 지나갔다. 목요일 아침 6시에 잠을 청했다. 아이들 아침 먹을 것만 간단하게 챙겼다. 9시 15분쯤 눈을 뜨고 이때부터 바쁘기 시작한다. 빨래와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마쳤다. 지난주 둘째 언니와 조카부부가 집에 들렀기에 정리하는 데에는 손이 많이 가진 않았다. 물걸레 청소기도 돌렸다. 누군가 와야지만이 특별한 움직임이 이어진다. 그래서 가끔 초대를 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

  



친구와는 고요해질 틈이 없었다. 두 달 전 무기력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운동과 식단으로 다이어트에 성공한 친구는 자신감으로 가득 찼다. 독서를 하며 자기 계발에도 관심이 있어 우리의 대화는 예전과는 사뭇 달랐다. 중학생 때 HOT인형을 함께 만들며 잡지사에 보내던 소녀들(한 명 더 있다)은 아이와 가정, 나에 대한 관심으로 돌아왔다.


몇 년 전만 해도 우리의 관심사는 달랐다. 아무리 어렸을 때 친했다 하더라도 어른이 되고 좋아하는 분야가 다르면 대화의 흐름은 이어지기 힘들다. 친구와 각자의 책을 공유하며 바꿔 읽어보기로 했다. 나중에 글쓰기로 유도해보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오후에 도서관에 들러 다음 주 독서모임에 참여할 책도 대여했다. 발길 닿는 곳은 역시나 힐링장소인 두류공원으로 향했다. 마침 동네친구이자 오래된 술동무에게 전화가 왔다. 근처에 살지만 금주로 인해 최근 모임은 없었다. 단톡으로 매일 연락은 하지만 통화로 하는 수다는 막을 수 없었다. 주로 걸으면서 통화를 하는 편이다. 시간도 낭비하지 않고 상대에게 집중할 수 있다.

하루를 정리하며 가족과 저녁을 먹는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가지는 자리인 것 같지만 몸도 마음도 폭풍성장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지금 이 순간도 그리 길지는 않을 것 같다.


설거지를 하고 쉬려는데 남편이 냉동실에 얼려놓은 식혜를 꺼낸다. 입구가 손이 들어갈 만큼 넓은 통인데 그 안으로 꽤나 중대한 작업을 하고 다. 누가 보면 얼음조각으로 작품을 만드는 뒷모습이다. 얼린 식혜를 숟가락으로 긁고 있다. 그 와중에 기다리는 이가 있으니 두 딸들. 아빠 닮아 시원한 걸 좋아한다. 나도 아니라고는 못하겠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식혜 먹겠다고 열중한다. 각자의 컵에 식혜반 살얼음반 가득 담아 퍼먹는 모습을 눈에 담는다.


블로그에 오늘 읽은 책 서평을 쓰고 있었다. 앞에서 숙제하며 말문도 함께 터진 둘째는 평일이 너무 빠르고 오히려 주말이 지겹다고 한다. 어디 나가자는 소리다. 늘 가는 두류공원이 싫단다.

나중에 너 마흔 돼서도 싫다 소리하나 보자. 30년 뒤를 언급하는 어미를 딸은 이해할 수 없다. 잘재잘 떠드는 소리에 잠시만 조용해주었으면 하지만 언젠가 이 소리마저 사무칠 그날이 있을 걸 안다.




금봉산과 공원을 만보 넘게 걸었지만 저녁을 배불리 먹어 도로아미타불이 되었다. 커피를 먹고 식혜를 또 마셨다. 정신건강은 남겼으니 되었다.


하루를 돌아보니 그 어느 하나도 아쉬운 게 없다. 굳이 꼽자면 시간을 잡지 못한 것이다. 매일은 아니지가끔 친구의 안부를 묻고 나만의 시간을 보낸다. 하루의 마무리는 가족과 함께 한다. 오늘이 당연했으면 좋겠다. 평범한 일상 속에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만 하는 일넣는다. 글을 씀으로 현재도 남기고 미래의 나도 챙다. 늘 오늘만 같지 않은 날을 위해 소중한 일상을 남겨본다. 배도 부르고 마음도 부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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