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 중학교에서 '크리스마스 리스 만들기' 프로그램을 한다고 문자가 왔다. 다른 요일이었으면 일하는 시간이라 본체만체했을 텐데 마침 쉬는 날 목요일이다.중2첫째가다니는 학교에 아는 엄마가없다. 일부러 알려고는 하지 않았다. 이번 기회로다른 엄마들에게 말이라도 건넬까 싶어 본 행사보다 다른 흑심을 품었다.
당일 30분 전에 집에서 출발했다. 학교 담벼락 옆으로 곧게 뻗은 거리를 걷고 있는데 어디서 많이 본 아이가 걸어온다. 우리 애 아닌 줄. 너도 나도 눈이 나빠 서로 가까운 거리에 와서야 알아보았다. 지난주에학교에는 왜 가냐며 가지 말라고 할 땐 언제고 3-3 교실이 어딘지물으니 그림까지 그려가며 입구 두 군데와 2층이라고 알려준다.
10분 전에 도착했는데 학부모는 아무도 없다. 선생님께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출석 명단에 이름을 적고 선생님이 잘 보이는 교실 문 옆 첫 번째 자리에 앉았다.
두 명씩 앉을 수 있도록 재료가 준비되어 있었다. 맞은편에 한 명 더 와도 되는데라고 생각하던 찰나 급하게 학부모 한 분이 내 앞에 앉았다. 내심 반가웠다.간단히 눈인사를 하고 선생님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설명하던 중 앞에 어머니가 잎을 모아 만드는 둥 마는 둥 선생님 한번 시계 한번 쳐다보며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선생님께 뭐라고 말하더니 이내 자리를 떠났다.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
만드는 데에 열중해야 했다.초록 잎 세 종류를 길이가 맞도록 여러 겹 모아 동글동글 통통하게 배치를 한다. 손으로 잡을 가지 부분의 잎은 다 떼어낸다. 그곳을 엄지손가락으로 풀어지지 않도록 한데 모아 꼭 잡은 후 철사로 흐트러지지 않도록 돌려가며 맺음을 짓는다. 겨우 하나 완성. 총 14개를 만들어야 한다. 자리배치가 꽤나 까다롭다. 선생님은 분명 힐링되는 시간일 거라고 했는데.
30분, 한 시간이 그냥 지났다. 속으로 어느 세월에 다 만드나 진도가 안 나간다. 손이 느린 것도 있지만 어떻게 하면 삐져나오지 않고 키를 맞추어 조금 더 통통하게 할까. 재료 하나 고르고 잎 떼고 몇 번을 조몰락거렸다. 시간은 가고 속도는 안 나고 힐링이 아닌 스팀이 올라왔다. '내 다음에 다시는 오나 봐라' 여섯 개쯤 만들었나 벌써 리스틀에다가 연결하는 이도 등장했다. 하나 둘 완성된 작품을 들고 사진을 찍는다. 조급해지기 시작하니 처음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크기고 머고 그냥 막 모으기 시작했다. 먼저 완성한 순서대로 조기 퇴근(?)을 하였다. 몇 명 남지 않았다. 나의 간절한 눈빛을 읽으셨는지 보다 못한 선생님께서 리스틀에 연결하는 부분은 도와주었다.
"어머니, 제일 일찍 오셔서 맨 마지막에 가시네요"
다 만들어 놓은 크리스마스리스를 보니 제법 그럴듯하다. 한 땀 한 땀 이어놓은 작품을 보니 절로 입꼬리가 움직였다. 비록 마지막 연결은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지만 나도 선생님도 집이 그리웠다.
솔방울과 리본은 집에 와서 달았다. 이제야 온전한 완성품이 되었다. 크리스마스리스를 과정 없이 돈 주고 샀다면 이런 애틋함이 있을까.
LED보다 더 밝은 표정으로 큰아이에게 자랑했다.
"어머니 오늘 1시간 40분 동안 이거 만들었다. 예쁘지?
".............."
만든 결과물보다 교실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혼자 떠들었다. 큰아이도 누구누구 선생님 계셨느냐며 궁금해했다.
말동무를 만났더라면 아예 재료를 들고 집으로 올 뻔했다. 집중해도 모자랐던 시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일은 하나도 없다. 작은 잎들을 모아 서로를 연결시켰다. 솔방울을 걸고 빨간 리본까지 달아주니 저 어때요? 하는데 만들면서 불평했던 마음이 그새 사그라들었다. 아, 이래서 만드는 거구나. 그냥 하는 건 없었다. 처음으로 만들어 본 크리스마스 리스에 혼자만의 의미를 담아본다.
현관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서는데 생화의 은은한 풀향이 나를 반긴다. 재료도 소진되어 뒤적뒤적 더 예쁜 아이를 고르려 했다. 벽에 걸어놓고 보니 만들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오른쪽으로 갈수록 조급했던 마음이 그대로 투영된다.올 겨울 크리스마스 기다리는 마음은 너를 볼 때마다 뭉클할 것 같다. 하루 한번 혹은 눈에 띌 때마다 미소 짓는다면 오늘 1시간 40분의 가치는 그 이상이다.
그래서 내년에 또 신청해 말아? 흑심 품지 말고마음의 온기를 위해서라도 목요일이면 슬쩍 신청서를 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