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재열 여행감독 Aug 19. 2024

취향 세탁

취향의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사람들


취향과 허영은 한 끗 차이다. 로맨스와 불륜의 관계처럼, 내 생각엔 취향인데 남이 보기엔 허영인 것이 많다.


한국 중장년층에서 자주 보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취향 세탁’이다. 좀 더 있어 보이기 위해 자신의 취향을 세탁하는 사람들이 왕왕 눈에 띈다. 좀 더 있어 보이고 싶어서.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누리는 척 하는 사람.   


취향 세탁을 위한 취향의 엘리베이터는 돈이다. 자본주의 상술은 취향의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라고 끝없이 유혹한다. 그 유혹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바로 한국인이 아닌가 싶다(또 있다면 중국인 정도?).


와인을 마실 때, 보이차를 마실 때, 싱글몰트를 마실 때 한국인만큼 하이엔드로 빠르게 직진하는 민족은 없는 것 같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가 취향의 격이라고 착각하는 듯.



그래서 취향의 하이엔드만 나불거린다. 그리고 그 하이엔드를 향한 취향의 피라미드가 그려진다. 하이엔드로 가는 취향의 엘리베이터가 잘 재편되어 있다. 이를테면 인천공항 면세점의 싱글몰트 매장처럼(전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싱글몰트를 볼 수 있는 곳이다).


가향 커피인 바샤커피가 고급 커피로 둔갑하는 것이나, <신의 물방울>이 취향의 동앗줄이 되는 현상을 이런 '취향 세탁'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럭셔리 매장 제품 가격의 격이 판매원의 격이 아니듯, 만나는 취재원의 격이 기자의 격이 아니듯, 자신이 소비하는 취향의 격 또한 자신의 격이 아니다.


만한전석 한상 받는다고 하루아침에 미식가가 되는 게 아니다. 짜장면 맛에 감탄하던 어린 시절, 탕수육 추가에 부자 된 느낌이 들고, 깐풍기의 세계를 알게 되고, 오향장육의 맛에 익숙해지는 ‘과정’에 취향의 묘미가 있다.


‘취향 세탁’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는 ‘취향의 일관성’이 없다는 점이다. 스스로의 맥락을 형성하지 않고 자본의 맥락을 따르기 때문에 그렇다.



‘취향의 일관성’이란 이런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소고기를 먹을 때와 회를 먹을 때 일관성 있게 혀를 기준으로 한다. 소고기의 마블링 기름맛, 숙성회의 감칠맛을 즐긴다. 그런데 한국인은 소고기를 먹을 때는 혀로 평가하다가 회는 이빨(씹힘성)로 평가한다.


취향 세탁은 헛돈 뿌리는 일이 아닌가 싶다. 비싼 와인을 마시면서도 그 와인이 그 와인 같다,라고 말하는 것. 스스로 맥락을 형성하지 못해서 하는 말이다.


진정한 자기만족을 위해서는 자기 취향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필요하다. 나는 닭다리살을 좋아하는지 가슴살을 좋아하는지, 그에 따라 추구해야 할 닭고기의 맛이 다르듯이 취향의 영역에서도 자신의 지향성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취향은 소비보다 허비의 영역이다. 없어도 사니까. 하지만 허비에도 질이 있다. 취향 세탁은 무의미한 허비다. 취향은 최고가 아니라 최고로 가는 과정을 즐기는 게 허비의 묘미다. 내일 죽을 것도 아닌데 서두를 필요가 없다.


주) 3리터 벌크와인 생수병에 넣어 다니면서도 마냥 행복한 고 아무개 씨. ㅋㅋ 저 화이트 와인 덕분에 노르웨이 해산물을 더 맛나게 즐길 수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혐오와 연민 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