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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Oct 24. 2024

좋은 예술여행이란

예술여행의 3단계


내 생애 최고의 여행 중 하나는 '뉴욕 예술기행'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백만장자도 누리기 힘든 경험의 호사를 누리고 왔다. 당시는 초년병 기자 시절이라 '기자를 하면 이런 경험도 할 수 있구나'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엄청난 인복이었다.


20년 전 뉴욕에 출장 갔을 때의 일이다. 소설가 성석제 선생의 동생이기도 한, 이제 본인도 당당히 작가 대열에 들어선, 성우제 선배가 뉴욕에 가기 전에 연락해 보라며 '김정석'이라는 친구분을 연결해 주었다.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은 어떤 사람? 그건 그냥 '모르는 사람'이다. 이역만리 떨어진 친구의 후배를, 다시 만날 기약도 없는 사람을(실제로 김정석 선배는 그 후 다시 뵙지 못했다), 그는 살뜰히 챙겨주었다. 정말 인복은 타고났다(그래도 나는 돈복 있는 사람이 부럽다).


당시 김정석 선배는 뉴욕에서 아시안 음악 전문 레코드 가게를 하고 있었다. 나름 아시안 뮤직 씬이 형성되던 시점이라 운영이 잘 되는 편이었다. 뉴욕과 뉴저지에 세 곳 정도 점포를 운영하고 있었다. 김선배는 ‘문화부 기자로 크려면 뉴욕을 뉴욕 답게 경험해야 한다’며 스스로 '뉴욕예술기행'을 스스로 기획해 주었다.


1) 아는 재즈 기타리스트 동생을 불러 그날 밤 뉴욕에서 열리는 최고의 재즈 공연에 데려가게 하고,

2) 아는 성악가를 불러 메트로폴리탄 극장에서 함께 오페라를 보게 하고,

3) 아는 화가를 불러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함께 전시를 관람하고 미식 투어를 하게 했다.


하루하루가 엄청났다. 공연이 끝나자 그 재즈 기타리스트는 나를 대기실로 데려가 그날 공연한 연주자와 인사를 시켜주었다. 당시 그 재즈 기타리스트는 뉴스쿨에 다니고 있었는데 나중에 내한공연 할 때 보니 자신의 교수들을 세션으로 쓰고 있었다.


성악가는 공연 뒤에 어느 바로 나를 데려갔다. 메트포폴리탄 극장에서 언더스터디로 출연하는 성악가들이 알바 삼아 무대에 오르는 '오페라 펍'이었다. 맥주 병나발을 불면서 아리아를 들으니 느낌이 신선했다.


화가와 함께 했던 구겐하임 미술관 관람은 전시보다 그가 들려주는 뉴욕 화단의 정글스토리가 더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가 구석구석 안내해 준 소호의 맛집들도 너무나 인상적인 곳들이었다.

 

돌이켜보니 엄청난 경험의 호사를 누리고 왔던 것 같다. 누구나 뉴욕에 갈 수 있지만 그런 경험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들려주는 뉴욕 이야기는 남달랐다. 덕분에 뉴욕을 압축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어른의 여행, 트래블러스랩'에서 예술기행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떠오른 건 그때 뉴욕에서 한 경험이었다. 20년 전 뉴욕에서 내가 누렸던 호사를 다른 사람과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예술을 여행에 끌어들이는 방식'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내 생각에 예술기행은 크게 세 가지 단계가 있다. 하나는 예술품을 감상하는 것. 다른 하나는 예술가와 함께 여행하는 것. 마지막 하나는 자신이 직접 예술가가 되어 보는 것.


예술여행이라고 하면 보통 예술품을 감상하거나 공연을 관람하는 것을 생각한다. 가장 기본적인 단계다. 그래서 유명 도슨트나 해설사 역할을 할 사람을 헤드라이너로 내세워 예술기행을 기획하는데, 일반 여행보다 훨씬 비싸다. 하지만 나는 이런 예술기행은 초보적 단계라고 생각한다.


이것보다는 여행지를 예술의 관점에서 접근한 책을 한 권 읽고 가는 것이, 현지에서 설명을 듣고 나서 적극적으로 검색해 보는 것이, 돌아와서 관련 영화/영상을 찾아보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왜? 이게 바로 ‘자기 주도 학습’이니까.


다음은 예술가와 함께 여행하는 방법이다. 기회가 된다면 이 방법을 추천하고 싶다. 예술가들은 뛰어난 감상가다. 왜? 본인이 영감을 얻기 위해 사력을 다해 관찰한다. 자기 옆의 여행자가 이렇게 적극적 읽기를 하면 옆에서 줍줍 하는 게 생긴다. 예술가들이 사고하는 패턴을 직접 접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예술가를 모시고 가고 싶지만 여력이 안 되어 현지에서 예술가를 만나는 시간을 두려고 노력한다. 술자리에 예술가가 끼면 마치 미꾸라지 사이에 메기가 한 마리 있는 것처럼 생기가 돈다. 일상이 아니라 일탈을 논하게 된다.  


마지막 방법은 직접 예술가가 되어보는 것이다. 네 생각에 최고의 예술기행은 바로 이 방법이다. 최고의 희열은 창작의 희열이다. 우리가 여행지에서 느낄 수 있는 감상을 창작으로 재구성하는 것은 멋진 일이다. 그림을 그려볼 수도 있고 시를 지어볼 수도 있다. 겸재 정선처럼, 송강 정철처럼.


다소 도식적인 이야기지만 여행은 우리는 파토스를 일깨워준다. 여행지에 가면 일상을 거세시켰기에 비로소 오감이 열린다. 이 열린 오감을 창조로 연결시켜 본다면 의미 있고 가치 있고 재미있는 여행이 될 것이다.



이번 규슈 소도시인문기행에 함께 해주신 소프라노 권혜준 쌤이 여행지에서 ‘선물같은 순간’을 안겨주셔서 겸사겸사 예술여행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이 지면을 빌려 권쌤에게 감사의 인사를 다시 전하고 싶다. 자신이 돋보이는 곡이 아니라 이 자리의 의미를 되새기는 곡을 선곡하신 멋진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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