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에서 허리케인을 제대로 맞았다. 허리케인이 오기 전부터 정전이 되었다. 정전이 되니 그나마 와이파이카드를 사서 연결했던 인터넷도 끊겼다. 현황 파악이 안 되었다. 유일하게 되는 것은 수도였다. 화장실은 이용할 수 있었다.
식당들이 모두 문을 닫았다. 까사에 있는 식사는 우리들을 위해 예정된 아침식사뿐이었다. 점심과 저녁식사를 위한 식자재는 없었다. 한 끼는 가져온 부식으로, 다른 한 끼는 동네 구멍가게에서 산 스파게티 면을 끓여 먹었다.
허리케인에 관광버스들은 올스톱. 쿠바는 국영여행사 독점이라 국가에서 스톱하라면 모두 스톱해야. 시엔푸에고스에 갈 수 없었다. 점심까지는 평온했지만 버스는 오지 않았다.
허리케인의 위세는 대단했다. 우리가 경험했던 태풍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창문을 열고 내다볼 엄두를 낼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다음날 아침에 나가보니 거리는 뽑히고 부러진 나무 천지였다.
우리도 수해를 입었다. 허리케인이 불어오는 쪽 방들은 창문 틈으로 물이 새서 바닥이 흥건했다. 이불 일부가 젖어 있었다. 대부분의 방이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내일을 위해 일단 자두었다.
하루가 지나고 허리케인은 지나갔지만 우리를 태우고 아바나를 빠져나가기로 한 버스는 오지 않았다. 온다는 건지 안 온다는 건지 확인하기 위해서 점심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확인 결과 그날도 운행하지 않는 날이었다. 운전사들은 아무도 출근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지인의 지인을 통해 그날 운행할 수 있는 운전사를 수소문해보겠다고. 그 여부를 기다리는데 또 몇 시간이 지났다.
‘사람이 여행이다’라는 것이 트래블러스랩의 여행철학인데, 이번 쿠바여행을 책임져 준 김춘애 작가님의 인맥이 빛을 발했다. 차량과 운전사 수배를 해주고 지인이 샌드위치 재료를 가져가 주어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샌드위치를 살 식당이 없는데, 가게를 하는 지인이 재료를 가져다주었다).
다행히 운전사가 구해졌다. 이제 아바나 외곽에 사는 그 운전사를 태워 버스가 있는 곳에 가서 우리를 태우고 오는 일만 남았다. 이 과정이 모두 끝나니 저녁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아바나를 출발할 수 있는 것에 모두 감사했다. 트리니다드에는 자정이 되어서야 겨우 도착했다. 그날 아바나를 벗어난 관광버스는 우리 버스를 포함해 단 두대였다고 한다.
허리케인으로 1박2일 일정이 완전히 날아갔다. 시엔푸에고스는 원래 숙박할 예정이었지만 트리니다드 가는 길에 화장실만 이용하고 지나쳤다. 허리케인에 도시가 모드 올 스톱 상태라 대안 일정을 진행할 수 없었다. 그저 기다리는 일 뿐.
그래도 일행 중 누구도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가장 짜증 나는 일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고 일이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지를 알 수 없을 때인데, 그런 상황이 1박2일 동안 지속되며 여행이 올스톱 되었는데 모두 묵묵히 지켜봐 주었다. 요즘 표현으로 하면, ‘어른의 여행’ 그잡채였다.
입 밖에 내는 말들은 모두 서로의 멘탈을 북돋우는 말이었다. 그렇게 자기 이야기들을 꺼내면서 허리케인의 낮과 밤을 지새웠다. 허리케인이 우리를 원팀으로 만들어 주었다.
일반 패키지였다면 누군가 불만을 토로했을 것이고 누군가 동조했을 것이고 시간이 갈수록 그 강도는 더해졌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런 상황이 더 싫었을 것이고, 후폭풍은 여행이 끝나고도 이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어른의 여행, 트래블러스랩’ 멤버들은 남의 나라에서 국난을 극복하며 원팀이 되었다. 위기의 크기만큼 추억이 커졌다. 트리니다드에 가서 쿠바의 밤을 제대로 불태웠다. 여행클럽을 만든 보람을 느끼는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