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는 귀신이 산다. 사람들은 앉지 않고 귀신들이 앉아 노니는 정자가 즐비하다. 운동기구들은 마을 밖에, 귀신들이 오고 가기 편한 곳에 배치되어 있다. 사람들이 발견하기도 힘든 곳에 전망 의자가 있고 잠겨있고 물도 나오지 않는 번듯한 화장실이 설치되어 귀신을 기다린다. 그곳에 사는 사람도 혹은 여행 올 사람도 아닌 오직 귀신들의 천국이다.
지방에 직접 여행하고, 여행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데려가고, 여행에 사람들을 데려가기 위해서 답사를 가고, 여행에 사람들을 데려왔으면 하는 지방 공무원들을 만나다 보면 굳이 보고 싶지 않아도 보이는 것들이 있다. 한두 번은 그러려니 하고 보는데 반복되면 문제의식이 생기곤 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해외여행이 막히면서 지역 관광 활성화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실제로 지방에 여행 가는 사람이 늘었다. 코로나 재확산 시절을 제외하면 몇몇 여행지는 평상시에도 성수기 수준의 호황을 누리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그 양상을 보면 우려되는 지점이 있다. 잘못된 방향성이 오히려 이런 ‘묻지마 특수’를 자신의 공으로 돌릴까 하는 부분이다.
한때 한류 영향으로 한국을 찾던 중국인들이 발걸음을 일본으로 돌렸다. 발걸음을 돌린 데에는 ‘사드 배치’ 영향이 크지만 발걸음을 되돌리지 않는 데에는 일본과 우리의 관광 인프라 차이가 크다. 식민과 전란으로 우리는 일본보다 문화유산이 더 많이 파괴되었다. 급격한 산업화로 자연환경이 더 많이 오염되었다. 여행의 인문 조건과 자연조건 모두 불리하다. 그런데 진짜 원인은 따로 있다.
요즘 지방에 가보면 한옥 숙소 단지가 조성된 곳을 두루 볼 수 있다. 멋진 한옥이 군락을 형성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에 무척 멋지다. 그런데 속을 들여다보면 답을 찾지 못했다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런 한옥 숙소 단지는 평범한 한옥 펜션 단지로 전락하고 지역의 시그니처가 되는 모습은 좀처럼 볼 수 없다.
우리 한옥 숙소는 일본의 료칸과 대비된다. 둘의 결정적 차이는 식사 제공 여부다. 일본의 료칸은 가이세키 요리라는 정식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료칸 이용료는 식사비를 기준으로 책정된다. 비유하자면 밥을 먹으면 잠도 재워주는 것이다. 이 가이세키 요리를 바탕으로 지방의 음식문화가 발달했다.
일본 료칸의 가이세키 요리는 전통이 그리 깊지 않다. 근대에 기타오지 로산진이라는 걸출한 장인이 정립한 방식이다. 로산진이 평양 기생집에서 문화적 충격을 받고 ‘왜 일본에는 이런 아름다운 음식문화가 없느냐’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식기를 쓰고 그 위에 음식을 정성스레 담는 가이세키 요리를 개발했다고 알려져 있다.
로산진 이후 백 년 동안 일본 가이세키 요리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 고급 료칸 외에 일반 온천호텔이나 일반 호텔도 자기만의 요리를 개발해서 많은 것을 상품화했다. 일본 지방여행이 활성화된 데에는 이런 고급 숙소와 JR(일본 철도) 등 자본 그룹의 적극적인 투자가 있었다.
그래서 ‘해외여행보다 비싼 국내여행’ 임에도 불구하고 자국민들이 국내여행을 선택했고 그 덕분에 여행 인프라가 발전해서 외국인들도 일본 여행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졌다. ‘사드 배치’로 일본으로 발걸음을 돌린 중국 여행자들이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다. 이런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제주도 갈 돈이면 그 돈으로 동남아 간다’는 우리는 어떤가. 먼저 한옥 숙소를 보자. 그 많은 한옥 숙소 중에 료칸처럼 식사를 중심으로 구성된 곳은 거의 전문하다시피 한다. 맛의 고장이라는 전라도에서도 ‘식사가 맛있는 한옥 숙소’를 찾을 수 없다. 잠 따로 밥 따로 해결해야 한다.
숙소에서 식사를 할 수 없으면 식사를 나가서 해야 한다. 이런 한옥 숙소는 대부분 외진 곳에 있기 때문에 차를 타고 나가야 한다. 그럴 경우 자가 운전자는 술을 마실 수 없다. 반면 료칸처럼 숙소에서 식사를 할 수 있으면 숙소에서 머무는 절대 시간이 길어진다. 어느 쪽이 더 힐링이 되겠나?
또 하나는 욕장 유무다. 일본의 료칸과 온천호텔에는 대형 욕장이 있어서 여행의 피로를 풀 수 있다. 숙소에 들어오는 시간이나 나가는 시간도 욕장 이용 시간을 고려해서 여유 있게 잡힌다. 보통 저녁식사 전에 욕장에 다녀올 시간을 감안해서 숙소에 들어간다. 여행 일정이 숙소 중심으로 고려되면서 여유 있게 잡힌다.
우리 한옥 숙소는 ‘잠만 잘 분’을 위한 숙소 거나 아니면 한옥펜션 형식이다. 대학 때 MT를 자주 다녔기 때문인지 우리는 식사를 직접 만들어 먹는 펜션 문화가 발달해 있다. 지방 숙소도 호텔이 아니라 이런 펜션이 담당하는 부분이 크다. 그런데 그 펜션은 대부분 한 때의 유행을 따라 발달했다. 낡은 펜션은 지방의 대표적 흉물 중 하나다.
일본이 급증하는 중국 관광객을 수용할 수 있는 비결 중 하나는 버블 경제 시절에 만들어 놓은 지방의 대형 호텔이다. 관광업 성장을 막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숙박 시설인데 일본은 이런 대형 호텔이 웬만한 지방도시에 포진해 있어 단기간에 관광객이 늘더라도 이를 수용할 수 있다. 외국 관광객에게 펜션은 낯선 시설이지만 호텔은 익숙한 시설이다.
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우리나라 지방의 관광산업 정책은 10년 후가 없다. 1년 후만 있다. 왜 그럴까? 10년 후를 볼 수 있는 눈이 없기 때문이다. 경험이 적어서 안목이 없고 그런 안목을 만회할만한 적극적인 태도가 없다. 그래서 생각 없는 단기 정책이 남발되고 그런 1년들이 쌓이고 쌓여서 이제 지방의 얼룩이 되었다.
이런 공무원의 무신경을 파고드는 사람들이 있다. 지방의 개발업자들이다. 대체로 지방의 어이없는 시설들은 이런 개발업자들의 욕망을 반영한다. 대체로 방치되고 있는 지방의 관광 관련 시설에서 이런 개발업자들의 욕망을 본다. 이들이 ‘이런 것을 만들면 좋다’고 하면 무신경한 공무원들은 대충 속아준다.
분명 우리의 세금이 투입되었을, 지방에서 본 황당한 시설로는 대략 이런 것들이 있다. 먼저 섬에 가보면 가장 경치가 좋은 곳에 운동기구들이 앉아서 풍경을 관람하고 있다. 마을에 이미 설치한 운동기구를 더 설치하려고 마을 어르신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운동을 하게 하자고 개발업자는 꼬드겼을 것이다. 아니면 섬 트레킹을 하던 관광객이 운동기구를 발견하면 장애물 달리기처럼 운동을 하고 갈 수도 있지 않겠냐고 꼬드겼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방치된 운동기구에는 넝쿨식물이 자란다.
인적이 없는 섬 언덕에 운동기구보다 더 흔한 것이 있다. 풍경 좋은 곳에는 늘 정자가 있다. 그 정자에 앉아 있는 마을 어르신을 본 적은 거의 없다. 트레킹 하는 관광객을 위한 것이라면 그냥 전망 좋은 곳에 의자 하나 놓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아무튼 우리 섬은 정자 부자다. 그리고 그 정자와 정자 사이에는 쓸데없이 나무데크가 놓여있다.
요즘에는 정자 건설업체보다 더 고수들이 있다. 정자에 샷시를 설치해서 유리창을 달고 다니는 업자들이다. 아마 비를 피할 수 있게 하자는 명분을 내세웠을 것이다. 하지만 정자는 바람을 맞으러 가는 곳인데 유리창으로 바람을 막고 그 안에 전기시설을 해서 선풍기를 튼다. 바람을 막고 바람을 사는 셈이다.
눈여겨보면 고수들을 더 볼 수 있다. 게이트볼 장에 지붕을 설치하는 업자들이 있다. 이분들 역시 비를 피할 수 있게 하자는 명분을 내세웠을 것이다. 게이트볼 장에 어르신들이 있는 것도 거의 본 적이 없는데 비바람이 치는데도 게이트볼을 치는 분들이 있을까 의심스럽다. 아니면 비바람이 몰아칠 때 게이트볼을 쳐야 맛인 것인지. 지방은 업자들의 욕망으로 도배되어 있다.
그렇게 정자가 흔하고 나무데크가 골목길처럼 놓이고 정자가 유리창을 챙기고 게이트볼 장이 지붕을 챙긴 섬에 어르신들을 위한 공중목욕탕 하나가 없다. 바닷바람이 거센 섬은 목욕탕이 가장 필요한 곳이다. ‘말하는 건축가 정기용’은 면사무소 옆에 면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시설로 꼽힌 공중목욕탕을 지었다. 그런 혜안을 보여준 사람이 있었음에도 따라 하는 이들이 없다. 어르신들을 위한 공중목욕탕을 지어 놓으면 주말에 섬 여행자들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섬여행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개발업자의 욕망 다음에 들여다봐야 할 욕망은 선주의 욕망이다. 선주의 욕망도 섬여행을 위해 거쳐야 할 ‘넘사벽’이다. 섬을 오가는 항로 중 정부 지원금을 받는 항로가 있다. 그런데 운항 횟수에 따라서 받는 것이 아니라 연간으로 받는다. 선주 입장에서는 운항을 줄이는 것이 이득이다. 그러다 보니 핑계만 생기면 운항을 중단한다. 겉으로는 안전을 위해서 그런다지만 그 속내가 빤히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 이제 진짜 무서운 욕망이다. 바로 지자체 단체장의 욕망이다. 이 단체장의 욕망이 가장 잘 반영되어 있는 것이 지역축제다. 좋은 축제를 구성하는 요소는 세 가지다. 하나는 기원하는 바가 있어야 한다는 것, 다음은 일탈이 있어야 한다는 것, 마지막은 축제 주체가 스스로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범람하는 지역 축제 중에 이 세 가지 요소를 만족시키는 축제가 있나? 기원하는 바? 지역 농산물을 많이 팔겠다는 것 말고는 단체장의 재선밖에 기원하는 바가 없다. 공무원들이 주축이 되어 기획하는 행사에 어떤 ‘창조적 일탈’이 있겠는가. 그리고 공무원들이 업무로 하는 일인데 어떻게 즐길 수가 있겠는가.
이런 축제는 대부분 복작복작한 읍내에서 진행된다. 도시인들은 지방에 올 때 한적한 전원을 기대한다고 하면 돌아오는 답은 “산에는 표가 없죠, 들에도 표가 없고”라는 말이다. 그나마 그 축제의 주체가 되어야 할 지역주민들도 축제로부터 소외된다. 그들의 소외를 달래는 각설이패만 난립한다. 전국 축제를 도는 각설이패가 몇 년 전에 500팀 정도 된다고 들었으니 지금은 그 이상일 것이다.
지방 축제를 다녀보면 축제를 찍어내는 주물공장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들이 ‘축제란 이래야 한다’는 공식을 만들어냈고 그냥 생각 없이 따르는 느낌이다. 모든 성적표가 방문자 숫자에 좌우되니 그 사업이 진짜 잘된 사업인지, 미래에도 계속할 수 있는 사업인지 잘 따지지 않는다. ‘히트 앤 팔로우’다. 사람이 몰렸다고 하면 무조건 따라 한다. 그래서 전국에 성과가 누적되는 것이 아니라 적폐가 누적된다.
마지막으로 전문가들의 욕망이다. 치적을 남기려는 단체장의 욕망에 기생해 깊이 있는 고민 없이 흥행에 성공할 것 같은 사업만 추천하는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지방을 돌면서 ‘무턱대로 ‘드라마 촬영세트’ 건축, 각종 축제 남발, 채소아가씨(혹은 과일아가씨) 선발, 초라한 거리에 화려한 ‘루미나리에’ 설치, 흉물로 전락하는 초대형 상징물 설치, 일단 한 번 경관농업, 묻지마 케이블카/지프라인/출렁다리/모노레일 건설‘을 부추겼다.
이것이 우리 지방의 현실이다. ‘제주도 갈 돈으로 동남아 가던’ 시절을 지나 코로나19 창궐로 인해 ‘동남아 갈 돈으로 제주도 가는’ 시대가 왔는데 우리 지방이 드러내야 할 민낯이다. 1년에 해외여행을 하는 한국인 수가 일본인 수의 두 배다. 전체 인구를 감안하면 거의 5배 수준이다. 밖으로만 나돌던 우리 국민들의 눈을 국내에 돌릴 기회가 왔다. 하지만 그들의 발걸음을 돌릴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