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민낯과 가면이라는 이중주, 우리의 그 선율은 잘 연주되고 있는가. 어느 순간 삑사리가 나지는 않았는가.
조선시대 숙종이 빈첩(嬪妾)을 뽑아 왕자를 늘리려 할 때, 대신 김수항(1629-1689)이 말했다.
“가정에서 며느리를 간택하는 기준으로 온화하고 양순함이 가장 중요하고, 미모는 말단적인 것임을 그 누가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처음에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외모이기 때문에 취사선택하는 데에 있어 늘 미모를 중시하는 잘못을 면치 못하니, 이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몸가짐과 말투에서 덕스러움과 복스런 성품을 알 수 있다.’ 하였으니, 참으로 이것을 가지고 살펴보면 덕을 기준으로 사람을 뽑을 수 있을 것입니다.”
왕은 김수항 말을 받아들여 김창국의 딸을 간택했다. 그러나 왕자를 늘려야 하는 왕실의 목적과 달리 그녀는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여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하튼 이 혼사는 지켜졌다. 물론 이 선택은 정치적 이해관계가 깊게 얽힌 결정이었다.
김수항의 말은 사람을 택하는 기준은 외모보다 몸가짐과 말투에서 드러나는 ‘덕’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삼백 년도 더 된 오래 전 글 귀가 오늘의 세상에도 여전히 새겨 들음직한 가르침으로 남는다. 그 사이 세상사에 사람을 택할 때 인격을 중시하는 풍조가 자리 잡았다면 역사 뒤편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을 늙은 유학자의 말이다.
하지만 오늘의 사람들도 저 말에 저절로 끄덕끄덕 해진다. 이는 외모를 중시함은 이 땅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래 한 번도 중단하지 않고 도도하게 흘러온 강물임을 보여준다.
외모는 드러나는 모습이다. 또한 철저하게 감출 수 없는 요소이다. ‘화장발’ ‘조명발’이라는 말도 있지만, 다른 이의 시선을 완벽하게 속이기는 어렵다. 어느 정도 형성되면 사실상 크게 변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인격’은 어떠한가. 속내가 가면으로 철저히 가려져 있기도 하고,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게 변해 버리기도 한다. 얼마나 많은 위선에 우리는 속아 왔던가!
외모에 사용되는 민낯과 가면은 인격에도 적용된다. 오늘도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들추어진 수많은 사람의 ‘민낯’을 목도한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의 가면만을 보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부부나 부모 자식 사이에조차 흔한 세상사인지 모른다. 상황에 대상에 따라 민낯과 가면을 지혜롭게 오가는 능력이 오히려 인격인지도 모르겠는 세상이다.
아. 모두 서툰 나는 세상 살아내려면 아직도 멀었나 보다. 가리기 힘든 나의 민낯이여, 어설프기 짝이 없는 나의 가면이여.
그림출처 : 단편소설 "엄마의 담장", 2023, 117쪽 삽화.
인용문출처 : 김창협, "농암집" 속집 하권 / 행장 / 선부군 행장 하, 한국고전종합DB.
서술의 편의상 필자가 쉽게 풀어 인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