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섭섭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직장에 다니는 딸이 출근할 때면 방문을 꼭 잠그고 나간다는 것이다. 집에 있을 때도 방문을 꽉 닫아두어, 말이라도 걸려면 반드시 노크를 해야 한다고 했다.
한 번은 그냥 문을 열었다가, "프라이버시"를 운운하며 무식한 엄마 취급을 받고 딸에게 한참 훈계를 들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문득 나의 사춘기 시절이 떠올랐다. 내가 없을 때면 짓궂은 오빠들이 내 방을 드나들곤 했다. 책상 서랍을 뒤적이고, 책꽂이를 뒤져 일기장을 찾는 시늉을 하거나, 정돈해 둔 인형들을 어지럽히고 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학교에서 돌아와 울먹이며 엄마에게 하소연하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엄마, 나 없을 때 오빠가 내 방에 못 들어오게 해 줘요."
그 시절엔 노크 같은 건 있지도 않았고, '방'은 그저 문 달린 공간일 뿐 나만의 세계가 아니었다.
그런데 기록을 읽어보면 사람의 사적인 공간을 존중하는 예의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옛 가옥은 댓돌에 신을 벗고 마루를 지나 방으로 들어갔다. 이때 마루에 발을 디디기 전 일부러 기침을 하거나 발소리를 내는 등 안에 있는 이에게 인기척을 알리는 것이 기본이었다.
불쑥 문을 열어 안의 누군가와 사적인 모습을 마주치지 않기 위함이었고, 그것은 단순한 예절이 아니라 타인을 배려하는 일이었다. 방에 들어설 때도 시선을 아래로 두고 섣불리 돌리지 않는 것이 예의였다. 그 또한 방 안에 있던 사람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었다.
어느 날 맹자가 인기척 없이 방에 들어섰다가 마침 웃옷을 벗고 있던 아내의 모습을 보고 불쾌해했다고 한다. 그는 아내를 외면했고 다시 찾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오히려 그런 아들을 꾸짖었다. 예의를 갖추지 않은 것은 아내가 아니라 바로 아들이라고 나무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엄마로서 딸의 방 앞에서 노크를 하며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사적인 경계를 지키려는 그 아이의 마음속에도 어쩌면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조용히 존중하기'의 예가 깃들어 있는 것인지 모른다. 우리는 이야기 끝에 우리 아이들을 그렇게 이해해 주기로 했다.
"똑똑!! 뭐 하니? 문 열어봐라!"
'아...
청소하기 싫어............'
읽어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