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녀 Seon
우리 역사에서 쌍벽을 이루는 효녀라 하면, 신라시대의 지은과 조선시대의 심청이 있다. 그 가운데 지은의 이야기는 『삼국사기』 열전 효녀지은과 『삼국유사』 효선 빈녀양모에 실려 있다. 같은 인물을 두고 전해지는 이야기지만, 지은의 나이를 비롯해 기록마다 적잖이 다른 부분이 있다. 아동·청소년 문고를 비롯해 세간에 나온 효녀 지은의 이야기는 두 기록을 적절히 합성한 형태다.
지은 설화에는 누가 들어도 애잔한 어머니의 말이 남아 있다. 너무 가난해 홀어머니를 봉양하기 어려웠던 지은이 쌀 10여 석에 자신을 팔아 부잣집의 종이 된 지 3~4일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예전에는 밥이 거칠어도 맛이 좋았는데, 지금은 밥이 좋아도 맛은 예전과 같지 않고, 속을 칼로 에는 것 같으니 무슨 일이냐?”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촉은 예나 지금이나 꿰뚫어 보는 능력이 있다. 둘러댈 겨를도 없이 눈물이 터진 지은과 어머니는 부둥켜안고 큰소리로 울었다. 길가는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함께 가슴 아파했다고 한다.
그런데 기록에 따르면 지은이 소리 내어 운 까닭은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부드러운 얼굴로 어머니를 섬기지 못했다거나, 어머니의 얼굴빛을 살펴 그 뜻에 맞게 봉양하지 못했다는 자책이었다. 지은이가 종이 된 처지를 서러워했는지, 그 심경이 어머니에게도 전해졌는지 어떤지는 독자가 짐작할 뿐이다. 다만 이 짧은 설화에서 지은이 콕 집어 보여준 효심의 하이라이트는 물질적 봉양도 봉양이지만, 어버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있었다.
지금 내 모양새는 어떠한가. 엄마와의 관계에서 내 코가 석자라는 핑계로 평생 부산만 떨었지, 마음을 헤아리고 기색을 살피는 일은 늘 엄마의 몫이었다. 피곤하지는 않은지, 밥은 제대로 먹었는지, 어쨌는지...
이제 엄마가 구순이 되셨건만, '치사랑', '엄마를 향한 되돌림의 사랑'을 올리지 못한 채, 거꾸로 흘러온 노모와 딸의 소통은 여전히 거꾸로 흐르고 있다.
'엄마, 미안해요. 그리고 정말 사랑해요.'
어설픈 변명만 입안에서 맴돈다. 이 불효를 어찌할 것인가.
조금 전, 엄마가 집에서 출발하셨다고 전화가 왔다. 딸의 마음에 환한 빛이라도 드리울 요량인지, 언제나 엄마는 밝은 목소리다. 한 시간 정도 뒤면 우리집에 도착하실 것이고, 또 한동안 머물 것이다. 아..정말 잘해보련다. 늦었지만, 늦은 만큼 더 따뜻하게.
그림출처: 최선혜, 『엄마의 담장』, 북랩, 2023, 8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