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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으로 남기는 사람

by SeonChoi

한 번만, 꼭 한 번만이라도 만나보고 싶은 사람. 그런 사람이 있음은 사랑인가, 고통인가.


"그리워하는데도 한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

피천득의 <인연>에 나오는 유명한 문장이다. 차라리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며 사는 것이 나을 것이라 말한다면, 그리움을 품고 사는 사람에게 위로가 될까?


고려 말, 조반(1341-1401)이라는 문신은 몽고어에 능하여 원나라에서 벼슬을 하였다. 그때 한 여인을 사랑하여 함께 지냈다. 그러나 원나라가 망하는 혼란기에 조반은 돌아와야 했다. 조반이 어찌나 그 여인과 헤어지기를 어려워하는지 주변 사람이 모두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그 여인은 고려로 떠나가는 조반의 행렬을 울면서 밤낮으로 걸어서 따라왔다. 며칠 밤낮을 쉬지 않고 걸어 두 발이 얼어 터져 걸을 수 없을 지경이어도, 힘을 다해 걸어왔다. 결국 조반이 압록강을 건너자, 그 여자는 그만 강에 뛰어들어 자결하였다.


그 뒤 조반은 정식으로 혼인하여 여러 아들을 얻고 고위 관직에도 올랐다, 그러나 늙어서까지도 그녀와 헤어진 비통함을 내내 이야기하며 그리워했다. 평생 그녀의 기일이 되면 눈물을 흘리며 제사를 지내주었다.


가슴 깊은 곳에 품고 여전히 이름을 부르게 되는 사람, 비 오는 날이면 빗물이 가슴으로 스며들게 만들고,

화창한 날에는 햇살을 핑계로 눈물 한 방울 떨어지게 만드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잘 있냐고 허공에 안부를 전해 보게 하는 그런 사람이 있음은 저토록 평생의 눈물이며, 영원히 남기는 수필 한 조각이다.


만날 수 없는데 당최 가라앉지 않는 그리움, 만날 수 있지만, 만나지 않는 절제, 그래야 하는 운명.

사실 그런 사람이 있음은 아직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건 인간이 고통 속에서 피워내는 사랑일 것이다.


'그러니 울지 말자. 비는 찬란한 무지개를 품고 있음이니...'


. 그림 출처는 최선혜, 『슬픔도 미움도 아픔도 오후엔 갤 거야』, 2021, 흐름, 185쪽, 조반 일화는 같은 책,

268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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