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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훈 Nov 01. 2023

저 위에서는 좋은 날이 되겠지..

말러 교향곡 9번

파리 유학 시절이었던 2004년 4월 29일, 하이팅크의 말러 교향곡 9번 공연을 보고 적어놓았던 글입니다.


오래전부터 기다리던 하이팅크가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의 말러 교향곡 9번 연주를 보기 위해 샹젤리제 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에도 표를 예매하지 못한 터라 1시간 전에 도착, 예매창구에는 complete(매진)라는 문구만이... 원래 샹젤리제 극장은 공연 30분 전부터 남은 표를 할인해서 팔기 때문에 그것을 노리고 왔는데.. 오늘은 직원조차 없다. 하지만 다행히 한 청년으로부터 가장 싼 가격의 티켓을 구할 수 있었다. 가장 저렴하기 때문에 자리도 제일 위층 박스의 맨 뒷자리.. 앉아있으면 무대가 보이지 않아 음악만 들어야 하는 자리이다. 결국 연주 내내 서서 관람해야 했다. (몇 번 자리를 옮기려 시도했지만 덩치 좋은 흑인 직원에 번번이 걸림)


개인적으로는 하이팅크의 연주를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다. 거기다가 그의 장기인 말러 교향곡을 말러의 악기였던 빈 필하모닉과의 연주이니... 시작 전부터 가슴이 설렌다. 우렁찬 박수소리에 하이팅크가 등장하고 희미한 심장의 두근거림을 표현한 불규칙한 리듬으로 시작하는 1악장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공연이 끝난 후 커튼콜


미완성인 10번 교향곡을 제외하면 그의 마지막 교향곡.. 말러 그 자신이 이 9번 교향곡에 주석을 달지는 않았지만 이 곡에는 죽음과 이별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말러 자신도 악보의 초안에 “오 젊음이여! 사라진 것이여! 오 사랑이여! 흘러간 것이여! 안녕히! 안녕히!”라는 문구를 적어 놓았고 그래서 음악학자 파울 베커는 이 교향곡에 표제가 있다면 “죽음이 내게 말하는 것”이 될 것이라 말을 했고, 열광적인 말러 팬이었던 윌리엄 리터는 이 교향곡의 의미를 “죽음과 정화”로 해석하며 “그 안에서 모든 사람들은 죽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가장 완벽한 표현을, 그 감미로움을 발견하게 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말러는 항상 죽음에 대해 강박관념과도 같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가 9번째로 작곡한 '대지의 노래'에는 9번이라는 번호를 붙이지 않았다. 베토벤을 비롯한 많은 선배 작곡가들이 9번 교향곡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작곡가 쇤베르크는 말러를 의식한 듯 1912년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9번이라는 것은 하나의 한계로 보인다. 그 너머로 가려고 하는 이는 반드시 그 숫자를 통과할 수밖에 없다. 이는 마치 우리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알 필요가 없는 무엇이 10번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질 것처럼 보인다. 9번을 쓴 사람은 내세에 이미 너무 가까이 서있는 셈이다."


하지만 결국 말러는 자신이 9번이라는 번호를 붙인 이 교향곡을 작곡하고 세상을 뜨고 말았다.(물론 미완성인 10번 교향곡이 있기는 하지만)




1악장이 흐르고 있다. 하이팅크의 지휘를 처음 직접 본 느낌은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는 세계 최고의 빈 필하모닉을 자신의 수족 다루듯이 완전히 장악하며 이별의 노래를 연주하고 있었다. 정말 거장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그런 깊이 있는 지휘였다. 하이팅크와 빈필은 알반 베르크가 자신의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한 모든 것을 증명하려 하듯이 연주하고 있었다.


"말러의 9번 교향곡의 1악장을 한번 더 연주하게 되었다. 1악장은 말러가 쓴 것 중에서 가장 천상의 것이다. 이 세상에 대한 특출한 사랑, 평화로운 삶에 대한 갈망, 자연의 향유에 대한 갈망이 표출되어 있다. - 죽음이 오기 전까지."


말러 교향곡 제9번 3악장의 필사보


그리고 이어진 2악장 "죽음의 무도"와 3악장 부를레스크(농담)에서는 빈필의 진가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특히 3악장의 후반부 Eb클라리넷의 비명은 멩겔베르크의 지시처럼 “사탄” 또는 “공포의 찡그림”을 느끼기 충분한 것이었다.


드디어 마지막 4악장 말러의 세상과의 이별, 하이팅크의 지휘는 우리를 가슴 벅찬 이별의 순간을 느끼게 해 주었고 그 슬프도록 아름다운 빈필의 현소리는 우리의 눈시울을 적시게 만들었다. 4악장의 종결부. 현악기만이 남아 말러가 악보에 적어놓은 ‘죽어가듯이’(ersterbend)라는 말처럼 점차 힘 없이 사라져 갈 때 우리는 말러의 고백을 들을 수 있다. 그의 가곡집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중 네 번째 곡의 선율이 들리는데 제1 바이올린은 다음의 가사 부분을 조용히 노래한다.


"저 위에서는 좋은 날이 되겠지."


공연이 끝나고 극장 밖을 나오니 보슬비가 쓸쓸히 내리고 있었다.

이별을 이야기하듯이...




말러 교향곡 제9번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지휘 /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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