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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훈 Aug 26. 2024

베토벤 합창교향곡의 위대함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

항상 연말이 되면 세계 곳곳에서는 송년 음악회를 통해 지난 1년을 마무리하는데 그 음악회를 통해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이 있다. 바로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합창’이다. 해가 바뀌어도 이 합창교향곡의 연주는 변함이 없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무엇이 이곡을 불멸의 곡으로 만든 것일까?


베토벤은 1823년 말에서 1824년 초에 이 곡을 완성했다. 보통 교향곡과 다름없이 총 4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 곡에는 몇 가지 특이한 사항이 있다. 우선 고전 교향곡의 2악장은 느린 음악으로 3악장은 빠른 음악으로 작곡하는 것이 일반적인 통례이나 베토벤은 9번 교향곡에서 순서를 변경했다. 2악장을 빠른 음악으로 3악장을 느린 가요적인 악장으로 배치한 것이다. 그리고 4악장에 사람의 목소리를 넣은 것이다. 교향곡에 인성(人聲)을 넣은 것은 이 곡이 처음이며 그 후 말러, 쇼스타코비치 등의 작곡가들이 큰 영향을 받는다. 4악장에 도입한 합창의 가사는 독일의 대 문호 쉴러의 시 <환희의 송가>를 인용한 것이다.


베토벤은 청년 시절부터 괴테와 쉴러에 대해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특히 쉴러에 대한 존경심은 각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쉴러가 사랑과 평화와 기쁨을 주제로 <환희의 송가>를 쓴 것이 1875년, 베토벤이 16세가 되던 해였다. 언제 베토벤이 이 시를 읽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그가 24세였던 1793년 그의 친구이자 법률교수인 루트비히 피세니히가 쉴러의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 "이곳(본[Bonn]: 베토벤의 고향)에는 장래가 유망한 청년작곡가가 있습니다. 저의 소견을 말씀드리자면, 이 청년은 위대한 것이나 숭고한 것에 아주 심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쉴러의 <환희의 송가>에 곡을 붙이려 하고 있습니다."라고 쓴 것을 보면 이미 베토벤은 이 시에 흥미를 가졌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곡이 완성된 것은 그로부터 30년 후이니 매우 긴 시간을 이 곡에 투자했던 것이다.


쉴러의 <환희의 송가> 자필


우리가 합창교향곡을 들을 때 꼭 염두에 둘 것이 있다. 그것은 이 곡을 작곡할 당시 베토벤은 어떠한 소리도 들을 수 없는 청각장애자였다는 것이다. 20대 후반부터 발생한 청각 장애는 계속 악화되었고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쓸 만큼 그에게는 절망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곧 불굴의 의지와 노력을 통해 인간의 고통을 예술에 의해 극복해 내었던 것이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합창 교향곡의 4악장 <환희의 송가>의 멜로디는 베토벤 당시에 여기저기 널려있는 자갈 같은, 그리 특별하지 않은 소재였다. 멜로디 자체만을 보아서도 약간 유치한 감까지 드는 그런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흔한 자갈을 빛나는 보석으로 만들어 낸 베토벤의 재능, 더군다나 아무것도 들을 수 없던 상황과 가난과 건강의 악화로 고통받고 있던 그가 보여준 능력은 이미 지상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이 곡을 통해 전 인류의 화합과 환희를 노래하고 있다. 정작 자신은 여러 가지 면에서 불완전한 인간이었지만 후세에게 자신의 음악을 통해 화합과 사랑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영화 <불멸의 연인>


지금은 스트리밍에 밀려 거의 사라져 가고 있는 CD에 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1979년 소니와 필립스가 공동으로 CD를 개발할 당시 필립스는 60분 분량을 담을 수 있는 11.5cm 크기를 표준으로 내세웠고 소니는 74분 분량에 12cm를 주장했는데 오랜 논의 끝에 소니의 표준이 채택되어 상용화되었다. 사실 60분이라는 시간은 한 시간이므로 여러 가지 정보의 처리 면에서 유용한 단위였다. 그러데 왜 70분도 아닌 74분이라는 녹음시간을 규격화한 것일까? 지휘자 카라얀은 소니의 모리타 아키오 회장, 오가 노리오 부회장과 친분이 깊었는데 CD 개발당시 그가 소니 회장단에게 74분을 제안했다고 전해진다. 그 이유는 베토벤 합창교향곡이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였기 때문이었다. 60분을 표준으로 하면 합창교향곡을 2개의 CD로 나눠 담아야 하고 음악을 감상할 때 중간에 CD를 교체하면 음악의 감동이 줄어든다는 이유였다. 그렇게 해서 소니가 주장한 규격이 표준화가 된 것이다. 카라얀이 그 많은 곡들 중에서 굳이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을 기준을 삼았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많은 생각을 남긴다.


(왼쪽부터) 소니 회장 모리타 아키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필립스 오디오 대표 조프 반 튈뷔르흐.


포옹하라! 만민들이여! 온 세상에게 이 입맞춤을 주리.
형제들이여! 푸른 하늘 위에는 사랑하는 주가 꼭 계시리.
땅에 엎드려 비나니 만물들이여 창조의 하나님을 믿는가?
푸른 하늘 위에서 주를 찾으라.
많은 별 위에 그분께서는 꼭 계실 것이다.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

베를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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