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 교향곡 제8번 “미완성”
이 곡은 양식적으로는 분명히 미완성이지만 내용적으로는 결코 미완성이 아니다.
1797년 빈에서 초등학교 교장의 아들로 태어난 프란츠 슈베르트 (Franz Schubert, 1797-1828)는 평생을 빈곤하게 살았지만 그는 가난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탐욕도 출세욕도 없었다. 오로지 자신은 그저 작곡하기 위해서만 세상에 태어났다고 친구들에게 말하곤 했다. 번듯한 집은 물론 피아노도 없어서 친구 집 다락방에서 기타를 치며 작곡을 하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겸손하고 온화한 성품으로 주위의 많은 유명 예술가들이 그의 재능을 인정하고 아꼈으며 “슈베르티아데”라는 음악모임을 통해 그의 음악을 세상에 알리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156센티미터의 작은 키에 통통한 몸집을 가진 슈베르트에게 친구들은 ‘맥주통’이란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는데, 실제로도 맥주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소탈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 슈베르트는 31살이란 젊은 나이에 요절했는데 그가 일생 동안 작곡한 곡은 무려 1000여 곡에 이른다. 그중 가곡이 600여 곡이나 되는데 그는 모차르트와 더불어 음악사상 최고의 속필가로 꼽힌다. 작품을 머릿속에서 완성하고 곧장 악보에 적는 작업방식도 서로 비슷했다. 그는 가난 때문에 체계적인 음악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항상 끊임없이 샘솟는 악상과 자신의 예리한 감성과 영감으로 아름다운 서정적 음률의 낭만적인 가곡을 작곡했다. 이 것은 선배인 베토벤이나 베버도 아직 눈 뜨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조금만 더 살았다면 더 많은 주옥과 같은 작품이 나왔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슈베르트의 교향곡 제8번 (요즘은 제7번으로 분류되기도 한다)은 그의 작품 중 가장 널리 대중에게 알려진 곡이다. 이 작품에는 ‘미완성’이란 부제가 붙어있는데 그 이유는 4악장으로 구성되는 일반적인 교향곡과 달리 단지 2악장만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슈베르트가 25세 때인 1822년에 착수되었으나 3악장의 20마디 정도에서 작곡이 중단되어 있다. 이 것에 관한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여러 가지 추측에 의한 설이 있는데 건망증이 심한 슈베르트가 2악장의 작곡을 끝마친 후 여러 다른 일 때문에 이 곡의 마무리를 잊어버렸다는 설, 그리고 건강의 악화로 곡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는 설, 단지 2악장만으로 충분하여 더 이상 다른 악장을 쓰지 않았다는 설 등이 있다. 실제로 이 곡은 슈베르트 생전에는 연주되지 못하고 40여 년간 잊혀 있다가 1865년에 비로소 초연되었다. 초연 당시 이 작품을 들은 한 평론가는 그때의 느낌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알레그로의 악장이 시작되고 도입부 뒤, 바이올린의 조용한 선율에 곁들여서 오보에와 클라리넷이 감미로운 노래를 연주하자 객석의 사람들은 저마다 '슈베르트다' 하고 속삭였다. 슬픈 노래와 감미로우면서도 유연한 선율이 마음을 흔들고 지나가자 청중들의 가슴에는 마치 슈베르트가 오랜 여행에서 돌아와 우리들 사이에 서 있는 듯한 기쁨이 충만해졌다."
미완성 교향곡의 특징은 너무나 아름다운 유려한 선율에 있다. 기악음악 속에 이런 성악적인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많은 가곡을 작곡했기 때문이다. 또 이 작품을 들은 작곡가 브람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
"이 곡은 양식적으로는 분명히 미완성이지만 내용적으로는 결코 미완성이 아니다. 이 두 개의 악장은 어느 것이나 내용이 충실하며, 그 아름다운 선율은 사람의 영혼을 끝없는 사랑으로써 휘어잡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라도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온화하고 친근한 사랑의 말로써 다정히 속삭이는 매력을 지닌 교향곡을 나는 일찍이 들은 적이 없다."
이후 후세에 많은 작곡가들과 음악학자들이 슈베르트가 남긴 스케치로 나머지 2악장을 복원하여 완전한 4악장의 ‘완성본’을 발표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곡은 2악장의 ‘미완성’ 일 때 가장 완벽한 ‘완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또한 이 작품은 낭만주의 교향곡의 훌륭한 표본이 되었으며 후배 작곡가중 브루크너에게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슈베르트 교향곡 제8번"미완성"
빈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카를로스 클라이버 지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