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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훈 Apr 19. 2024

드라마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제4번

“나는 이 작품이 연주되는 동안 총에 맞은 것처럼 꼼짝 못 하고, 아니 숨조차 쉬지 못하며 자리에 앉아 있었다.”


베토벤의 5개의 피아노협주곡 가운데 제4번은 파격적인 독창성으로 협주곡의 새로운 길을 연 작품입니다. 또한 곡 전체에 흐르는 따뜻한 서정성은 베토벤의 한 여인을 향한 사랑의 감정을 반영합니다. 1804년 가을부터 1806년에 걸쳐 베토벤은 자신의 피아노 제자이자 다임 백작의 미망인 요제피네와 사랑에 빠집니다. 이 시기에 작곡된 <교향곡 4번>, <바이올린 협주곡>, <라주모프스키 현악 4중주> 또한 부드럽고 낭만적인 서정성을 지닌 것은 당연한 연애의 결과물입니다. 하지만 이 사랑은 1807년 가을에 끝나고 요제피네는 1810년 슈타켈베르크 남작과 재혼합니다. 피아노협주곡 제4번은 1806년 완성된 후 1807년 3월 로프코비츠 후작의 저택에서 비공개 초연 후 1808년 12월 22일 안 데어 빈 극장에서 베토벤의 피아노 협연으로 공개 초연 되었습니다. 이 날의 연주가 청각장애로 인해 베토벤이 연주자로 대중 앞에 선 마지막 무대가 되었습니다. 


협주곡 제4번은 이전 베토벤 협주곡의 관현악 편성과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드라마틱한 파격은 곡의 첫 시작부터 시작됩니다. 당시 협주곡은 오케스트라의 긴 서주 후에 협연자가 등장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피아노협주곡 제4번은 협연자가 마치 시를 읊듯 서정적인 심오함으로 홀로 연주를 시작합니다. 흥미롭게도 1악장의 주제는 <교향곡 제5번>의 ‘운명의 동기’와 일맥상통하며 1악장 전체를 지배합니다. 


2악장은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대화로 진행되는 한 편의 드라마와 같습니다. 오케스트라는 거칠고 강하게 연주되는 반면 피아노는 절제된 부드러움과 조용함으로 연주됩니다. 이런 극적인 대비는 묘한 긴장감으로 만들어 내는데 음악학자 베른하르트 마르크스는 “아내를 구하기 위해 지옥에 내려간 오르페우스가 지옥의 정령들을 잠재우기 위해 하프를 타며 부르는 노래 같다”라고 표현합니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오케스트라로 표현되는 세상의 소란함 속에 청력을 잃어가지만 내면의 평온함을 되찾아가는 베토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낭만적인 성격이 강한 2악장은 후대의 낭만파 작곡가들인 멘델스존, 슈만, 쇼팽, 리스트에게 큰 영향을 줍니다. 


3악장은 밝고 상쾌한 하이든 풍의 론도로 힘차고 화려한 피아노의 기교와 민첩한 오케스트라의 반응이 상승감을 고조시키고, 피날레를 향한 질주는 1802년 청각장애의 고통으로 유서까지 썼던 베토벤의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으로 느껴집니다.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제4번 첫 출판본 표지


피아노협주곡 4번이 발표된 후 당시의 연주가들과 청중들은 시대를 앞서가는 베토벤의 독창성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로 인해 베토벤이 사망한 후 이 작품은 오랜 시간 잊혔다가 1836년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공연한 멘델스존에 의해 다시 부활하게 됩니다. 이날 연주에 참석했던 26세의 슈만은 그때의 충격을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 작품이 연주되는 동안 총에 맞은 것처럼 꼼짝 못 하고, 아니 숨조차 쉬지 못하며 자리에 앉아 있었다.”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제4번

임윤찬 피아노 / 정명훈 지휘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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