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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 멜랑쥐 Nov 22. 2023

오늘만 살아보자

4일_1 우울증 그리고 정신과

아무도 없었다. 

나를 보는 사람도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다.

괜한 걱정만 잔뜩 했구나.

간호사 선생님의 친절한 지시에 따라 처음 방문자 프로필을 적고 선생님이 부를 때까지 소파에 앉아 초조하게 기다렸다. 지금의 나의 상황을 어떻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내가 조리 있게 설명을 할 수 있을까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버벅 거리다가 정작 나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못 하고 선생님도 형식적인 말로 나를 위로하다가 아무 도움도 못 받지 않을까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생각들의 뭉터기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드디어 내 이름이 불리고 노크를 하고 친절히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마스크를 쓰고 계신 선생님의 첫인상은 곰돌이 푸우 같았다. 푸근했다.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다. 

나는 과거의 나와 현재의 상황들 나의 성격 나의 결혼생활과 지금 느끼는 두려움과 공포 불안들을 침착하게 그리고 천천히 울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이야기했다. 하지만 내 말에 호응을 해 주시는 모습에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부드러운 말투와 다정한 눈빛으로 다 이해한다는 무언의 무엇인가를 느꼈다. 

크게 한번 숨을 쉬고 나니 진정이 돼서 다시 천천히 말을 이어 나갔다. 상담은 40분 동안 이어졌다. 그렇게 시간이 빨리 지나갔는지도 몰랐다. 모두 토해내듯 말한 것도 아니고 선생님이 해결방법을 제시해 준 것도 아니지만 뭔가 후련한 것이 좋았다. 전문가이기에  내가 말하는 단어 하나하나와 표현들로 나를 진단하실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첫 진료는 눈물이 범벅이 된 채 끝이 났다. 일주일분의 약을 받고 예약을 미리 하고 병원을 나왔다.

대화만 했을 뿐인데 조금 나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첫 약을 아침에 먹고 난 뒤 변화는 없었다. 여전히 불안했고 가슴이 두근거렸고 걱정이 됐고 무기력했다.

그리고 잠이 많이 왔다.


퇴근을 했다. 자기 전 약을 먹고 내일 아침에는 뭔가 달라져 있을 것이라 믿고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이 뜨였다. 새벽에 몇 번이고 눈을 떴어야 하는데 아침에 일어나게 된 것이다. 약효가 있는 것인가?

하지만 가슴은 여전히 두근거렸고 오늘 하루를 또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이 숨통을 틀어막았다.


아침 약을 먹었다.

오후 3~4시가 되니 손님도 더 이상 오지 않고 거리는 한산하고 기분은 울적했다. 잠이 쏟아졌다. 혼자 꾸벅꾸벅 졸았다. 잠들지 않으려고 일어나서 걷기도 하고 잠시 밖에도 나가서 찬 바람도 쐬고 했는데 의자에 앉으니 또 잠이 쏟아졌다. 그냥 집에 가고 싶어졌다. 따뜻한 방에서 한숨 푹 자고 나면 기분이 좋아질 것만 같았다.

그 고비를 넘기니 다시 밤이 되었다. 해는 졌고 거리는 더 컴컴해졌고 추운 날씨 탓인지 다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10시 '그냥 집에 갈까? 꼭 이렇게 간 다음에 손님이 와서 어제 일찍 집에 갔어?'하고 물어본다. 

드디어 시간을 채우고 11시 마감을 하고 집으로 향했다. 잠이 쏟아졌다.


저녁 약을 먹었다. 

신랑이 옆에 없는데도 잠이 왔다.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늦게 잠자리에 든 신랑을 깨우기 싫어 살며시 침대에서 나와 똥강아지 두 놈을 산책시키고 밥을 주고 씻고 조용히 출근 준비를 했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뭐지? 공포감과 우울감이 적어졌다. 움직일 수가 있어졌다. 

병원에 가기를 잘했다. 약을 먹은 것이 잘한 일이다. 


아침 약을 먹었다.

낮에는 약간 졸렸다. 그러나 나아지고 있는 과정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이라도 해야 하고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의지가 조금 생긴 것 같다. 


손님이 적었다. 

'다른 방법을 또 찾아보자 바로 좋아지지는 않는 것이 정상이지.. 내일은 더 잘해보자'

생각이 들었다. 숨이 막히지 않았다.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았다.

며칠 약을 먹었다고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을까?? 


만약 나와 같은 일을 겪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용기를 내어 병원의 문을 열고 들어가 보라고 말하고 싶다.

두렵겠지만 문을 열어야 한다. 약을 먹어야만 힘을 낼 수 있다면 먹어야 한다. 그리고 나아야 한다.

감기가 걸린 것처럼 나는 정신이 아픈 것일 뿐이다.


모든 직업과 처해진 상황이 힘들지 않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누가 더 힘들고 덜 힘들 고의 문제가 아니라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만석꾼은 만 가지 걱정을 천석꾼 천 가지 걱정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모든 사람은 힘듦이 있는 것 같다.

혼자 해결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고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번에 나는 후자에 속했다. 그렇다면 혼자 힘들어하지 말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 

결과적으로는 내가 만든 어려운 경제적인 상황이 나를 병들게 만들고 아프게 하고 있지만 약 몇 알로 갑자기 드라마틱하게 빨리 나아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노력해서 해결을 해야 한다. 그 과정에 힘을 낼 수 있도록 도움을 받아야 한다. 


당분간 다가오지 않은 미래까지 생각하지 말고 오늘만 생각하자 한 시간만 생각하고 하루만 생각한다면 어느 순간 좋아져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일주일 약으로 많이 긍정적으로 바뀐 나를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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