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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분의 일 Jan 21. 2024

스스로 인생을 내 던진 경험이 있다면

영화 와일드 리뷰

너무 좋아하는 영화가 넷플릭스에 최신 등록이 되었길래 다시 보며 써보는 리뷰..

삶을 내던지고 싶을 때, 혹은 그런 경험이 있더라면 꼭 봐야 할 영화.


4000km 이상을 도보로 걸을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란 PCT 하이킹이 라고도 불리는 극한의 도보여행이다. 한국의 국토 대장정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국토대장정은 도보로 500km를 한 달 안에 걷는 다면 PCT하이킹의 경우 3개월 이상 4000KM 이상을 걷는 여행이다. 산맥을 타기 때문에 일반 등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하이킹 난이도가 높다. (이걸 과연 여행이라고 할 수 있는지?)


프렌즈의 레이첼 여동생으로 유명한 '리즈 위더스푼' 인 지금까지 했던 캐릭터와는 완전히 다른 미친 연기력을 보여주어서 화제가 된 영화. 리즈 위더스푼의 감정변화 연기과 주인공 셰릴의 현재와 과거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줌으로써 자칫하면 정적이고 지루해질 수 있는 영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몰입 100% 영화로 만들었다.


많은 미국인들의 버킷리스트이기도 한 PCT트레킹은 검색해 보면 관련 영어정보가 정말 많다.

극한의 체력을 요하기 때문에 사전 트레이닝이 반드시 필요하고 하이킹 팁을 소개하는 영상이나 블로그 글도 많다. 요즘에는 SNS을 통해 일주를 기록하고 실시간으로 구독자들의 응원을 받기도 하는 것 같다.


여성 혼자서 PCT 트레킹을 하면 얼마나 위험할까? 영화 속 주인공의 경우 하이킹을 하며 사람들을 만나기는 하지만 대부분 혼자서 트레킹을 한다. 실제로 여성을 위한 PCT 팁 중 하나로 완전히 홀로 되는 것보다는 하이킹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동행을 하거나 가족 친구들과 끊임없이 연락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주인공 셰릴은 그녀의 전부였던 엄마의 죽음 후 인생을 내던져 버린다.

마약중독, 바람, 이혼 등으로 인생의 밑바닥으로 치닫으며 후회만 쌓여갈 무렵 마트에서 우연히 PCT 하이킹 팸플릿을 보고 하이킹을 결정한다.  


배낭을 메고 걷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 마르고 작은 그녀가 과연 이 하이킹을 완주할 수 있을까. 당연히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쓸모없는 물건을 너무 많이 가져와서 몬스터라고 불리는 가방, 어리숙하게 텐트를 치는 모습, 연료를 잘못 챙겨 불을 쓰지 못해 건조식만 먹는 모습 등 초반에는 미숙할 수밖에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어 나는 좋은 애였잖아”

영화에서는 이렇게 하이킹을 하는 주인공의 모습과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보여주면서도 교차적으로 그녀가 떠올리는 과거를 보여준다.

걷다 보면 끊임없는 하게 되는 과거에 대한 생각들. 불우했던 어린 시절. 누구보다도 힘든 상황이었지만 세상을 사랑했던 엄마의 모습. 부끄럽고 잘못된 나의 행동들. 그리고 눈앞에 나타나는 엄마의 환영. 자연과 풍경은 너무나도 아름다운데 그녀의 과거는 너무 방탕했다.


주인공은 이 여행이 슬픔을 잊기 위해서 인지, 아니면 과거를 더 선명하게 기억하기 위해서 인건지도 모르겠다. 근데 몸은 죽도록 힘들다.

체력적으로도 너무 힘든데 순간순간 마주하는 위협적인 순간들로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쌓인다.


그녀가 하이킹을 하며 만나는 사람들은 그녀에게 위협이 되기도 하고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그 어느 때보다도 솔직하게 일기를 쓰며 자신의 감정과 마주한다. 절대 고독의 PCT에서 그녀는 자신의 감정과 과거에서 도망칠 수도 없기에.


거친 등산로와 예기치 못한 순간들이 계속 그녀를 괴롭힌다. 발톱이 빠지고 신발도 잃어버렸지만 그녀는 슬리퍼에 덕테이프를 감고 다시 하이킹을 한다. 실제로 PCT를 완주하는 건 정말 어렵다고 한다. 재해나 부상뿐만 아니라 고독함과 외로움도 중간에 그만두는 큰 이유 중 하나라고 한다.


영화 후반부 그녀는 우연히 산행을 하던 할머니와 손자를 만난다. 아가의 위로에 감동을 받을 셰릴은 결국 엄마에 대한 그리움에 무너져 울음을 쏟는다. 셰릴은 이 순간 진정으로 자신의 내면과 마주한다.


종착지에 도착한 후 흘러나오는 그녀의 감동적인 내레이션은, 하이킹이 끝난 후에 그녀가 다시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실화 바탕의 영화로, 엔딩 크레딧에는 주인공 셰릴의 실제 하이킹하는 모습들의 사진을 보여주면 영화는 끝이 난다.


삶이란 건 정말 그런 것 같다. 어렵게 행복을 쌓아 올려도, 한 순간에 무너진다. 그 정도로 우리는 연약한 존재이다. 잘못된 선택들로 인해 후회로 점철된 인생. 그렇다고 해서 과거가 지워지진 않는다. 그래서 인간들은 자연에 기댄다. 범접할 수 없는 무언가를 경험하면서 치유한다. 그리고 주인공 셰릴처럼 아무리 힘들어도 고통을 받아들이고 주어진 삶을 다시 살아가는 게 사람이다.



* 영화 마지막 장면 내레이션

엄마가 자랑스러워할 딸이 되기까지 4년 7개월 하고도 3일이 걸렸다.
엄마 없이… 슬픔의 향연에서 자신을 잃어버린 후에야 숲에서 빠져나오는 법을 알았다. 종착점에 닿기 전까지 어딘지도 모르고 걸었다. 수도 없이 감사하다고 되뇌었다. 길이 준 가르침과 나도 모를 미래에 대해. 난 4년 후 다시 이 다리를 건너고 여기서도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한 남자와 재혼을 하고 9년 후 그 남자와 카버라는 아들을 낳고 1년 후 엄마 이름을 딴 바비라는 딸을 낳는다. 이젠 공허한 팔을 뻗을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안다.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내 인생도 모두의 인생처럼 신비롭고 돌이킬 수 없고 고귀한 존재이다. 진정으로 가깝고 진정 현재에 머물며 진정으로 내 것인 인생. 흘러가게 둔 인생은… 얼마나 야성적(Wild)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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