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분의 일 May 01. 2024

통역 비서로 일하는게 어떠냐구요


우리는 온전히 사용자의 편의를 위한 사람일 뿐. 사용자는 당연히 사장님이다.

그 분의 말이 최우선 그 분의 생각이 곧 내 생각이다.

그래서 비서인 니가 사장이라는 거냐? 라고 현업자들이 느끼기 마련이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재수없어 보이겠지만 우리는 사장님과 같은 생각을 가져야만 사장님의 말을 통역할 수 있고 사장님이 시킨 일을 완수할 수 있으니까.

월급주는 사람이 바로 내 윗 상사인데 그 말을 어떻게 거역할 수 있겠나?


회의는 대부분 전쟁터다. 서로 한마디도 지지않는다.

우리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우리 팀이 조금이라도 더 편하기 위해서, 내가 좀 더 유리하기 위해서 그들은 첨예하게 대립한다.

“잠시만요 이해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싸움판인 회의 중에 이 말을 할 수 있는 통역사가 몇이나 될까?

나는 절대로 뜨는시간을 두지 않으려 한다. 말이 끝나는 순간 도착어로 내밷는게 나의 원칙이다.

절대 깨서는 안되는 잘하는 통역의 법칙이란 통역사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게 통역하는 것이다.

통역은 그림자처럼 해야한다. 마치 발언자들이 서로 직접 대화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통역하는 것이 좋은 통역이다.


발언자가 말을 하는 동안 그 말의 200% 이해해야 한다.

왜 100%가 아니일까? 발언자의 말뿐만이 아니라 그 이상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안에 숨어있는 뉘앙스와 회사 간의 이해관계, 팀의 현 상황도 알고 있으면 더 좋다.

배경 지식을 알면 발언자가 어떤 의도로 어떤 목적으로 이 말을 했는지 알 수 있다.

그 회의의 목적, 일의 히스토리, 전문용어, 이해관계를 알아야 통역이 쉬워진다.

회의의 서두를 들어보고 어떻게 회의가 풀어나갈지까지 그려지면 이제 회사 내 ‘통역 굇수’는 나라고 스스로 자칭하자.


가끔 뉘앙스가 다르면 그 언어를 알아듣는 연사의 경우 통역을 그자리에서 지적하기도 한다.

그럴 때에는 바로 말을 정정해서 다시 내밷는다. 죄송하다는 말도 필요없다.

통역이 끼면 회의 시간은 두 배로 늘어난다. 이 사람들은 시간이 금인 사람들이다. 그리고 성격도 보통 급한게 아니다.

통역 뿐만이 아니다. 잔심부름을 포함한 모든 시킨 일은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게 한다. 굼뜬 비서는 비서가 될 수 없다.


통역비서는 대부분 여성이다. 여성으로서 남성 임원들이 만들어 놓은 회사생활에 적응해야 한다.

내가 왜 이해하지 말고 적응하라고 말한 이유는 어차피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지금은 아주 많이 올라갔지만 임원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은 남성이고 현 회사를 만들어 놓은 장본인들이다.

그 사람들과 일하다보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온갖 접대, 이해관계 때문에 내리는 합리적이지 않은 선택들, 그로 인해 갈리는 아랫사람들

통역비서는 임원들과 함께 할 때가 많다. 그래서 뭐가 뭔지 모를때는 이해하려 하지 말고 일단 가만히 있자. 가만히라도 있으면 반이라도 간다.

쓸데없는 말을 줄이고 행동을 조심한다. 물론 그 와중에 센스와 눈치는 반드시 챙겨야 한다.


통역비서의 경우 윗 사람의 신뢰를 얻으면 회사생활은 편해진다.

초반에는 보통 개고생을 한다. 비서는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직업이다. 임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시킨 일은 다 한다. 통역도 기깔나게 해야한다.

자연스럽게 사장님의 온갖 히스토리를 안다. 말단 사원이지만 통역을 해야하니 중요한 회의에도 들어가는 기회가 주어진다.

정보도 알고 있고 사장님의 신뢰도 얻었으니 회사 내에서 나를 건드는 인간은 없어졌다.

물론 이건 모두 사용자, 즉 사장님의 마음에 들었을 때 이후의 시나리오이다.

맘에 들지 않았을 경우에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으니 넘어가도록 하자.

 




작가의 이전글 조금이나마 행복해지려고 내가 시도한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