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당할 뻔할 썰
보이스피싱 뉴스를 볼 때마다 ‘저거 딱 봐도 이상하지 않나? 왜 당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요즘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기력이 많이 약해져 있음을 느끼곤 했다. 저번 주에는 배탈이 나서 화장실에서 설사하다가 쓰러져서 조퇴하고 119 실려갈 뻔한 썰 + 인공수정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아서 점점 나도 모르게 초조하고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나 보다. 항상 신경이 다른 곳에 곤두서 있으니, 회사 일에도 집중을 잘 못하고 그러다가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고,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고 거의 당하기 직전까지 갔었다.
직장에서 점심을 먹고 치우고 있는데 모르는 휴대폰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았는데 본인을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의 이현우 경위라고 소개했고 지금 서울 중앙지검에 파견을 나와있는 형사라고 했다. 내 명의로 된 통장이 사기 사건에 연루되었고, 사기를 친 사람의 진술에 의하면 내가 통장을 판매해서 그 통장을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문래동 우리은행에서 2020년 3월 16일 개설된 통장이라고 했고, 사건번호는 2020 조사 517호 1심 형사 안건이라고, 사건번호를 알려주며 적으라고 했다. 지금 금융감독원이랑 합동수사 중이고, 내 계좌가 위험하니 나의 다른 계좌들을 예금자보호 등록을 한다고 어느 은행 계좌에 얼마가 있는지 다 이야기를 하라고 했다. 거기서 조금 의심이 가서 좀 머뭇거리니까 전화한 사람이 계좌번호나 비밀번호를 물어보는 게 이상한 거라고, 계좌에 얼마 있느냐고 물어보는 것은 이상한 게 아니라고 해서 그 말을 또 믿고 그냥 술술 얘기해줬다. 그리고 이 사건의 검사님이 옆에 계신다고 몇 가지 물어보면 대답하면 된다고 하고 바꾸어주었다. 검사가 전화를 받고 본인을 서울 중앙지검 특수 1부의 유민종 검사라고 소개를 했다. 내가 약식 조사 대상이어서 전화로 녹취를 진행한다고 후에 이 통화 내용이 재판일에 객관적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갑자기 카카오톡으로 아이디를 알려주며 친구 추가를 하라고 했고, 피해자들이 나를 고소한 고소장과 관련 문서들을 보내주었다. 내 명의로 개설된 통장이 범죄에 사용되었다면, 내가 무고한 피해자라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면 나는 개인정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것이 인정되어 피해금액을 보상해줘야 하는 것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쉴 새 없이 나를 몰아치는데 너무 두려움이 생겼고, 빠르게 이 일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과 여기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시키는 데로 다 했던 것 같다. 다른 것도 다 이상했지만 제일 중요했던 것은 ‘권고조치’로 약식 조사에 지켜야 할 의무로 약식 조서 중아 연락두절이나 제삼자에 발설을 하면 안 된다고 했고, 이는 가해자가 도피 혐의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했다. 만약 이를 지키지 않을 시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송환조사를 해서 내가 서울구치소에 이감되어 조사를 받게 될 것이고, 직계가족의 계좌를 동결할 수 있으며 다음 주 그 사기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의 재판에 가서 스스로 해명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나는 회사에서 휴가를 쓰는 중에도 전화를 끊지 않고 계속 통화를 하면서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는 상대방이 말을 안 하고 있었음) 밖에서 전화를 받았다. 어쨌든 휴가를 썼고, 그래도 배터리가 없고 당장 밖에 나가서 할 게 없어서 여전히 회사 내에서 통화를 했다. 그래서 오늘 내가 5시 전까지 처리해야 할 일은 첫째, 금융감독원에 직접 방문하여 거래내역 조사를 받아야 한다. 이는 범죄자에게 받은 입출금 내역이 있는지에 대해서 조사를 하고 둘째로는 내 자산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는지 전수조사를 한다고 했다. 이는 동산, 부동산 모두 해당된다. 세 번째로 피고인에 대한 지폐 일련번호를 검수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사실 이 내용이 무슨 말이지 조금 생소했다. 그래서 그냥 시키는 대로 했던 것 같다. 내 자산 대부분이 미국 주식이기 때문에 당장 현금화하기 어려웠던 점이 있었고, 입출금 계좌에는 돈이 얼마 없었다. 그래서 갑자기 태세를 바꿔 지금 사용하고 있는 신용카드가 뭐가 있냐고 물어보더니 그거의 대출한도를 물어봤다. 그리고 한국투자 저축은행 어플을 깔아서 한도를 알아보라고 했으나, 내 휴대폰에 공인인증서가 없어서 대출한도를 알아볼 수는 없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 증권계좌에서 지금 팔 수 있는 주식을 다 팔라고, 나중에 이게 무죄임이 밝혀지면 금융감독원에서 원래대로 돌려놔줄 거라고 했다.
그래서 그냥 그 말을 듣고 현재가로 다 매도를 했는데 펀드 매도가 생각보다 잘 안돼서 지금 전화를 끊고 증권사에 전화해서 매도를 할 수 있냐고 물어보라고 했다. 그래서 전화를 끊고 계속 카톡을 하면서 증권사에 전화를 하고 있는데 대기시간이 너무 길어서 ‘대기시간이 길어서 통화를 못했다고, 조금만 기다려주세요’라고 했다. 실제로 통화를 하고 다 팔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금을 담보로 얼마까지 대출받을 수 있냐고 물어보라고 했다. 그래서 거기서 갑자기 정신이 번뜩 들었다. ‘어, 이건 아닌 거 같은데’ 해서 알겠다고 일단 얘기하고, 경찰청 182에 전화해서 혹시 영등포경찰서 형사부에 이현우 경위님이 계신지 여쭤봤더니 처음엔 알려줄 수 없다고 하다가 혹시 전화를 받았냐고 해서, 내가 ‘아무래도 보이스피싱인 것 같다’고 했더니 검색을 해주셨는데 그런 분은 없다고 해서 그럼 혹시 이형우 경위님은 안 계시냐고 했더니 그분도 안 계신다고 했다. 보통 계좌 묻고 경찰은 그런 거 안 하고, 약식 조사도 전화로 안 하고 녹취도 안 한다고 이상하다고 보이스피싱인 것 같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내가 거기서도 정신을 못 차리고, 이번엔 검찰청에 전화를 해서 혹시 서울 중앙지검 특수 1부에 유민종 검사님이 계시냐고 어쭤봤더니, 그런 사람은 없다고 보이스피싱 전화받으셨냐고 했다. 뭔가 마음에 안도감이 훅- 들면서 눈물이 났다. ‘아, 내가 4-5시간 동안 무슨 뻘짓을 한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무실로 들어와서 ‘저 보이스피싱당할 뻔했다.’고 얘기하면서 뭔가 극한의 안도감과 나의 모습이 너무 한심해서 욕을 하면서 얘기했던 것 같다. ‘아 나 진짜 병신인가..’ 라면서 112에 신고를 좀 해야겠다고 했더니, 그러라고 해서 전화를 했는데 경찰관이 출동을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아무래도 하루 종일 전화를 받느라 일도 못했고, 경찰이 갑자기 회사로 오면 너무 이상하고 주목될 것 같아서 저 그냥 퇴근 후에 가면 안 될까요 했는데 그 전화를 받으신 경찰관 분이 ‘그런 것도 이해 못해줄 상사는 없을 것이다.’라고 얘기해서 알겠다고 위치를 알려주고, 팀장님께 말씀드렸더니 팀장님이 잠시 나갔다 와도 된다고 하셔서 경찰관이 출동했고 사건에 대해서 설명을 했더니 계좌를 다 거래 정지해두고, 휴대폰을 초기화하라는 얘기를 해주고 돌아갔다. 여기서 내가 살짝 아쉬웠던 부분은, 난 피해 사항이 따지고 보면 없기 때문에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는 점과 결국 내가 보이스피싱을 당했더라도 ‘잡기 어렵다’라는 말밖에 들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정말 나에게 기나긴 하루였다. 보이스피싱을 당하는 동안에는 ‘뭔가에 홀린 듯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정말 나는 그 당시에 뭔가에 홀린 듯이 그 사람이 하라는 대로 다 했다. 이건 한번 빠져들면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보편적인 현상일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마지막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것은 기적으로 밖에 볼 수 없고, 이 모든 것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 일을 겪고 나는 다음 날 병원에 가서 인공수정을 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이렇게 아픈 게 어쩌면 환경오염과 전혀 관련이 없지 않다는 점과, 이 세상은 점점 악해지고 더 악해질 텐데 이런 환경에서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좋은 세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지만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아이를 허락해주신다면,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지금보다 나은 세상이기를’ 오늘도 나는 그렇게 기도한다.
“아가야, 네가 살아갈 세상이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이기를 엄마가 기도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