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냈다는 성취감과 일 자체의 재미 사이
첫 직장에서 제가 맡은 업무 중 또 다른 하나는 해외 와이너리 서치, 컨택, 자사 전시회 홍보 그리고 전시회 부스 계약까지 성사시키는 업무였습니다.
자사 전시회 섹션 규모 중에서 해외 와이너리 존이 가장 작기도 했고, 영어로 메일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했던 직원이 아마도 저밖에 없어서였던 것 같습니다.
입사 후, 3개월 뒤에 전시회가 예정되어있어 준비는 이미 상당 부분 진행이 많이 되고 있어 같은 팀 대리님이 진행하시는 업무들을 서포트하기도 했습니다.
해외 와이너리 존도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한 섹션으로 구성하기에 적당한 규모를 점점 갖춰가기 시작했습니다.
팀장님과 대리님이 협회, 매체사 등에 미팅이 있으면 꼭 같이 데려가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전시회 도록이나 전시회 입구에 걸릴 현판 디자인, 초청장 인쇄 발주 등 파트너 커뮤니케이션도 조금씩 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한 가지 에피소드로 전시회 관련 디자인을 해주시는 분이 외부 프리랜서 작가님이셨는데, 도록 원고를 인쇄소에 넘기기 전에 오탈자 체크를 하기 위해서 혼자 가방 들쳐 메고 작업실로 쳐들어갔던 기억도 나네요. (체크해서 메일로 보내면 시간이 걸리니까 바로바로 작가님 옆에서 찾아내고, 수정하고, 반복...반복...)
작업실이 좁아 작가님 옆에 간이 의자에 앉아서 전체 페이지를 감리하고 꽤 늦게 퇴근했는데 그날 집에 가는 길이 무척이나 뿌듯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 나도 야근이라는 걸 하는구나...! (미친 거죠.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수많은 야근들이 기다리고 있을 줄 모르고 ㅋㅋㅋ)
첫 전시회는 전시장 2개를 쓸 만큼 큰 전시였고, 여러 나라의 대사관과 많은 협회, 매체사들이 함께 얽혀있는 규모의 행사로 전시 기간 동안은 정신없이 지나갔어요. 하지만 그 난리통에도 친구, 후배들을 제 첫 담당 전시회에 초대하기도 했었습니다.
스스로도 그리고 회사에서도 꽤 성과가 좋게 끝난 전시회였고, 이 전시회를 계기로 신입 허물을 조금 벗고 다음 전시에 담당자로 더 많은 업무를 받게 되었습니다.
1인분을 해냈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죠.
제 인생에서 몇 번 되지 않지만 강렬하게 남아있는 기억 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 뒤로 저는 2개의 전시회를 더 맡아서 진행했습니다.
전체 전시회 규모의 1/10 정도 되었던 해외 와이너리 존에서 그다음 전시에서는 전체 부스 영업 및 계약 담당으로, 그리고 그다음 전시회에서는 입찰부터 시작해 본 전시회보다 더 규모가 큰 부대행사 콘테스트 총괄을 맡았습니다.
업무 스콥이 점점 넓어질수록 야근 횟수는 자연스레 많아졌고, 책임감과 권한도 비례해서 커졌습니다. 제가 감당해야 할 몫도 점점 커지기 시작한 것이죠.
그래도 즐거웠습니다. 1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스스로도 많이 발전하고 성장한 게 눈에 보였거든요.
그런데 제가 정말 이 일을 좋아했었던 건지는 아직도 의문입니다.
신입 꼬리표를 떼고 제 몫을 척척 해내며 일이 쑥쑥 늘어가는 자체가 재미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일 자체가 재미있었던 것인지 그때는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그리고 직장 생활 10년 차를 맞이한 지금 두 번째 회사를 퇴사하기 직전에도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또 몰랐네요.)
세 번째 전시회를 일주일 앞두고, 저는 퇴사 의지를 밝히고 이직할 회사에 면접을 봤습니다.
그리고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면접 합격 전화를 받았고, 전시회가 끝나자마자 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퇴사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자세히 할 예정이지만, 퇴사의 이유는 더 이상 성취감을 못 느껴서도 일에 재미가 느껴지지 않아서도 아니었어요.
두 가지 감정을 구분할 새도 없이 그 기분을 그대로 간직한 채로 이직을 하게 되었고, 이제야 이 기분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며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올해 숙제는 이 기분의 답을 찾는 것입니다.
답을 발견하게 되면 또 글로 남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