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첫 번째 퇴사 출사표
퇴사 욕구는 세 번째 전시회를 준비하던 중에 찾아왔어요.
제가 맡은 일 이외에도 여러가지 전시로 바쁜 시기여서 신입 사원을 한 명 더 채용했는데,
다른 팀이어서 같이 일하진 않았지만 이전에 몇 번 아르바이트를 왔던 친구였어요.
그 때 저는 정해진 6개월의 인턴 기간을 끝내고, 정규직 계약을 앞두고 있었죠.
얼마 남지 않은 전시회 준비로 한창 바쁜 와중에 팀장님께서 저를 회의실로 부르셨어요.
그때가 왔나 싶어서 회의실로 따라 들어갔습니다. (첫 연봉협상이라니!)
그런데 팀장님께서 가져오신 계약서를 들여다보다가 멈칫-했습니다.
월급이 인턴 때와 동일한 금액이더라구요.
제가 채용된 건 중소기업 채용 지원 프로그램 중 하나로 제 월급의 50%는 정부에서 지원해주고, 50%는 회사에서 내는 걸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은 6개월.
팀장님께서는 6개월이 지나면 100% 회사 부담으로 제 월급을 줘야하는데, 더 금액을 올리는 건 어렵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인턴 때 월급이야 수습 기간이기도 하고 말그대로 '인턴'이니까 정규직이 되면 월급이 더 오르겠거니 상상하고 그 기간을 버티는것 아닌가요?
심지어 최저시급에도 훨씬 모자라는 그 월급으로 정규직이라니...
그래도 첫 정규직 계약에 연봉 협상이라 알고 있는것도 없고,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제대로 말도 못한 채 그냥 설명을 듣고만 있었습니다.
선뜻 사인을 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데, 팀장님께서 해야하지 말아야할 말을 하신거예요.
"새로 들어온 ooo씨도 월급은 같아요. 군 가산점이 더 있긴하지만"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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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놀라운 포인트는,
새로온 신입 사원분은 인턴 기간 없이 바로 사원으로 채용이 되었다는 사실,
나는 6개월을 이미 일한 사람인데 월급이 똑같다는 사실,
그리고 심지어 군 가산점으로 나보다 실 수령액은 더 많다는 사실이었어요.
이 얘기를 듣고나니 뒷통수를 한 대 맞은 듯 얼얼하더라구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갑자기 나온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그럼 이번 전시회까지만하고 그만두겠습니다."라고 맞받아쳐버렸어요. (지금 생각해도 열받네요;;)
그러자 팀장님께서는 제 월급을 더 올리지 못하는 이유, 그 신입직원의 월급이 더 높은 이유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했지만 아무것도 귀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준비중이던 세 번재 전시가 끝나자마자 제대로 된 첫 번째 퇴사를 했고, 일주일 뒤 다른 회사로 이직하게 되었습니다.
(* 사실 찐 첫 번째 퇴사는 따로 있는데, 술먹고 뻗어서 무단 결근 되는 바람에 그 다음부터 출근을 못했다는 그런 부끄러운 얘기는 하지 않을께요....)
일이 한참 재밌어 진다,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이 잡혀간다 할 때쯤
제 능력이나 일의 성과와는 전혀 관련없는 사건으로 퇴사를 하게 되었어요.
사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좀 쉬면서 어떤 일을 할 때 재미를 느꼈는지, 또 다른 일은 없나 찾아보고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면 어땠을까 후회가 많이 되요.
그렇게 이직했던 회사에서 꼬박 10년을 일하고, 이제서야 휴식기를 가지고 있는데 너무 늦어버린건 아닐까 매일 매일 후련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시간을 보내고 있거든요.
그래도 정말 다행이예요.
10년 전, 그들과 같이 가지 않기로 결정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