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커웨이 여행을 하면서 내가 가장 골머리를 앓았던 문제 중 하나는 바로 이상화였다. 한국을 떠나고부터 나는 나도 모르게 여행지를 동화 속의 장소처럼 생각했다. 내가 버리고 싶었던 현실적 문제들을 모조리 한국에 두고 왔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알 수 없는 미래, 결정할 수 없는 진로, 늘어가는 학자금 대출, 가정 불화, 질릴 대로 질려버린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들은 한국에 남겨져 있었다.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은 현실의 문제들이 쌓이고 쌓여 벽을 이뤘고 나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은 채 그대로 도망쳤다.
경제적인 문제도 한 몫 했다. 한국에서는 돈 나갈 일 투성이였다. 평일에 학교를 다니면서 주말은 전부 아르바이트에 써도 항상 적자였다. 집에 생활비를 보태고 내 교통비, 식비가 나가고 나면 아껴 써도 남는 게 없었다. 5만 원짜리 적금도 들 수 없었다. 한국장학재단에서 제공하는 생활비대출은 매 학기 받는 게 당연했다. 이마저도 생활비에 보태야 해서 머릿속에서는 돈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반면 워커웨이 스테이를 하는 동안에는 돈을 쓸 일이 없었다. 나는 집세를 내지 않았고 관리비도 내지 않았으며 식비도 내지 않았다. 유럽 시골 구석에서는 무언가 살 일도 없었다. 배달도 못 시켜 먹는다. 여비를 제외하면 몇 달 동안 돈을 쓰지 않는 것도 가능하다. 여행 중이라 들어오는 돈도 없었지만 내가 책임져야 할 고지서가 없다는 것이 주는 안도감이 더 컸다. 가장 큰 고민거리가 사라진 것이다.
현실적인 문제들이 뒤로 밀리고 돈 걱정도 사라지자 바보같은 단순화 회로가 돌면서 내 머릿속에서 한국은 현실, 유럽은 동화가 되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고민도 없을 것 같고 갈등도 없을 것 같았다. 아름다운 곳이니 깨끗한 정부에, 착한 사람들, 완벽한 문화가 있을 것만 같았다.
특히 영국은 겉으로는 완벽해 보였다. 아마 영국에서 운이 좋았기 때문에 안 좋은 일을 한 번도 당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한 국가의 좋은 면만 보고 이상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게 반복되다보면 나의 현실은 더 비참해진다. 고국에 놓고 온 나의 현실은 내가 현재 있는 이 곳, 동화 속 세상과 완벽히 대비됐다.
한국에 돌아가지 않으면 내 문제들은 영원히 뒤로 미룰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다 언젠가는 마주해야 하는 문제들이었지만 완벽한 곳이 존재한다고 생각할 때면 내가 버리고 온 문제들을 그대로 카펫 아래로 밀어넣을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이대로 영국에 눌러앉으면 평생 걱정 없이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 존재에 대한 고민도, 진로 고민도, 돈 걱정도 없이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평생 워커웨이만 하며 살 것도 아니고, 결국 돈과 현실의 문제들은 내가 어디에 있든 끈질기게 나를 찾아올 것이다. 어디는 현실, 어디는 동화 속으로 이분화하는 사고는 나를 눈멀게 할 뿐이다. 이 지구 위에 동화 속 세상 같은 건 없다. 내가 그 곳에서 얼마나 행복하든 상관없다. 그 곳에도 범죄와 갈등과 노숙자와 이혼이 있다. 불평등과 가난과 폭력과 함께 살아간다.
내가 나의 현실에서 도피했기 때문에 지금 동화 속에 있는 것 같지만 결국 이것도 누군가의 현실이다. 그들의 문제는 그 곳에 실재한다. 내가 나의 문제들에서 멀어졌다고 세상 모든 문제들에서 멀어진 것은 아니다. 내가 이상화하는 공간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존중해주기 위해서라도 이상화는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멈췄냐고 물어본다면 아니다, 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멈추지 못했다. 나는 지금도 가끔 영국에 가면 평생 행복할 것만 같은 기분이 되곤 한다. 좋은 사람들만 있을 것 같고 나를 환영해줄 것 같다. 내 문제는 놓아둔 채 훌쩍 떠난 그 곳에서 평생 살아도 될 것 같다. 그러나 내가 무의식적으로 이상화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주의하고 있다.
내 삶이 한국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도 안다. 설령 이민을 가더라도 내게서 한국을 지우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나의 모든 것은 한국에서 기원했고 현실과 걱정 모두 이미 내 몸에 깊이 새겨져 있다. 어쩔 수 없다. 그냥 이렇게 살아야지. 내가 어차피 현실에 발붙이고 살아야 하는 처지라면 어딘가에 동화 속 세상이 있다 한들 다 무슨 소용일까. 이제는 내 머릿속에 동화가 존재할 필요성조차 사라졌다. 그 어느 곳도 동화가 아니고 내게는 동화가 필요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