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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얼티밋 Mar 18. 2022

39. 내 하루가 호스트의 하루에 종속되지 않게


 워커웨이는 호스트의 일정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그들의 집에 살고 일을 도우면 어쩔 수 없다.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고 밥을 먹고 잠을 잔다. 호스트가 시내에 나갈 일이 있어야 나도 차를 얻어타고 나간다. 부탁을 할 수는 있지만 왕복 40분 이상인 거리를 계속 부탁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일을 같이 해야 하는 건 아니다. 같이 영화를 보자는 제안에 언제나 응할 필요 없다. 주말에 호스트가 집에서 쉰다고 나도 집에서 쉬어야 하는 건 아니다. 나는 한국의 친구들과 줌으로 취중 빙고 게임을 할 수도 있고 마을 탐방을 나갈 수도 있다.


 워커웨이를 하다보면 내가 호스트에게 너무 종속되지 않게, 내가 나의 자율성과 정체성을 지킬 수 있게 취미든 뭐든 혼자 하는 활동을 만들 필요가 있다. 그러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끌려가는 기분이 들고 워커웨이 스테이가 단지 얹혀 사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혼자 하는 게 독서든 공부든 뭐든 상관 없으니 호스트와 함께 하지 않는 자신만의 활동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워커웨이를 아주 좋아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었다. 남과 함께 산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데 거기다 일상을 같이 해야 한다면 나만의 시간을 갖기가 힘들어진다. 나는 사적인 사람이라 개인 시간이 없으면 금방 무너져 버린다. 실제로 처음 무너졌을 때, 뭐가 문제인지 몰랐다. 지내는 건 재미있었는데 기운이 자꾸 빠지고 힘이 없었다. 내 형편 없는 영어 실력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 줄 알았다. 그래서 다시 제대로 영어 공부를 하기로 했다. 조금이라도 내 영어 실력을 높여서 그들을 더 이해하고 싶었고 나를 더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한국어를 사용할 때의 나와 영어를 사용할 때의 나의 간격을 좁히고 싶었다. 내 진짜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혼자 하는 활동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오후 휴식 시간, 주방 통창을 통해 비 내리는 바깥을 내다보며 널찍한 테이블에 앉았다. 창밖으로는 젖은 정원과 옆집이 보였다. 공부하기 완벽한 날씨다. 호스트 가족들은 거실에서 각자 쉬고 있었다. 나는 영국에서 산 콜미바이유어네임 영문판과 한국어판(가족들에게 부탁해서 한국에서 공수했다)을 나란히 펼쳐두고 오른쪽에는 빈 a4 용지를 두었다. 그렇게 한 문장을 읽고 분석해서 오른쪽에 옮겨 적었다. 그리고 문장을 외웠다. 문장이 문단이 될 때까지 외웠다. a4 용지는 하나둘 늘어서 양면 빼곡한 10장이 되어갔다. 해석하다 막히는 문장이 있으면 앤드류에게 물어봤다. 앤드류는 비원어민에게 영어를 완벽하게 설명하는 재능이 있어서 영어 공부에 어려움은 없었다. 그 날 배운 단어 바로 써먹어 볼 수도 있었다. 그러다 발음을 틀리는 경우도 있었는데 미셸과 앤드류가 교정해주기 때문에 오히려 틀렸던 단어는 기억에 더 오래 남았다. 그렇게 하루에 두 시간 정도를 공부에 몰두했다.



 나는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영어 실력이 쑥쑥 늘어나는 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하고 있던 것은 영어 공부가 아니었다. 나는 내 하루의 주도권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크게 봤을 때 내 일상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여전히 호스트의 일정에 하루가 매여있었다. 그러나 그 사이 누구에 의해서도 건드려지지 못하는 시간이 생겼다. 내 하루는 나에 의해 굴러갔다.


 조깅도 마찬가지 효과를 주었다. 이어폰을 꼽고 달릴 때 나는 그냥 내가 되었다. 언어로 인한 스트레스도, 더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욕심도, 내가 충분히 도움이 되고 있지 않다는 미안함도 내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나는 공부하는 사람이었고 달리는 사람이었다. 그저 나였다. 누구 집에 얹혀 살고 있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때만큼은 외국에 나와 어리벙벙한 사람이 아니라 한국에서 보던 익숙한 나였다. 영어를 할 때의 나와 한국어를 할 때의 나 사이 간격에서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만큼 도움이 되는 게 없었다. 이 간격이 언어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혼자 공부를 시작했지만 내 영어 실력이 어떻든 이 둘 사이 간격은 점점 좁아져갔다. 나는 익숙한 나를 보며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듯한 친숙함과 자유를 느꼈다. 종속된 하루 속에서 나다움과 자유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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