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밸리 / 한자와 나오키
[HBO 시리즈] 실리콘 밸리
[TBS 시리즈] 한자와 나오키
체감상 몇 년 전부터 퇴사 관련 콘텐츠가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다. 글이든 책이든 영상이든 가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퇴사 경험을 공유하며 동질감과 위안을 얻고, 행동의 원동력을 얻는다. 마치 퇴사라는 개인적인 이벤트가 요즘 세대에게는 공통의 테마이자 카테고리로 자리 잡은 느낌이다. 사직서를 항상 가슴에 품고도 참으며 회사를 다녔던 세대에게는 당황스러운 일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퇴사할 때 전체 메일로 퇴사 인사를 하고 떠나는 게 관례였는데 언젠가부터 경영자가 그걸 금지했다. 다른 직원들이 영향을 받는다는 이유였다. 기성세대의 당황스러움이 느껴지지 않는가. 애석하게도 전체 메일을 금지했다고 해서 퇴사자의 수가 줄어들 리 없다. 퇴사를 결심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굉장히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퇴사라는 테마가 열풍처럼 이 시대를 휩쓰는 건 요즘 세대에게 기존의 회사 시스템과 그것에 기반한 라이프스타일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회사는 관리자들을 닦달해가며 MZ 세대를 잡아둘 방법을 찾으라고 난리지만, 거대한 시스템의 변화 없이는 90년대생이 어떤 애들인지 아무리 공부해봤자 소용없다. 52시간제 도입이나 유연근무제 적용 등 산업적이고 정책적인 변화는 환영할 일이다. 그에 더해 비합리적인 의사결정 방식 등 구시대적인 유물도 함께 파괴되어야 한다. 갑 회사의 경직된 의사결정 구조와 최고경영자의 ‘취향’에 좌우되는 전근대적 경영 시스템은 그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사소한 결정 혹은 판단 미스는 무수한 을·병·정 회사의 직원들의 삶의 질을 좌우한다. 젊은 직원들은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는 야근이나 주말 근무를 참지 않는다. 갑 회사 회장의 변덕으로 인한 급작스러운 일정 변경은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니다. 무슨 수로 그들을 잡아두겠는가. 그런 건 안 하겠다는데.
첫 회사에서 12년 차를 맞은 직장인으로서 나는 왜 지금까지 퇴사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돌이켜 보면 몇 번의 위기는 있었다. 가슴에 돌덩이를 얹고 다녔던 때도 있었고, 갑질 하는 클라이언트 때문에 담배를 연달아 피웠던 기억도 있다. 2주 내내 새벽 총알택시에 실려 퇴근하면서 ‘이건 사람이 사는 게 아니다’ 하고 생각한 적도 많다. 이런 경험은 너무 평범해서 누구한테 말할 만한 일도 아닌 것 같다. 이런 위기를 겪으면서도 회사를 그만두지 않은(혹은 못한) 이유는 사실 심플하다. 돈을 벌어야 하는데 더 나은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회사를 그만두지 않기로 매일 선택하며 우리는 (그 일에 필요한)능력과 시간이 대입된 방정식으로 산출된 만큼의 돈을 얻고, 그 돈을 각자의 방정식에 대입해 삶이라는 문제를 해결해 간다. 원대한 꿈과 포부가 있어서 회사를 다니는 사람도 있겠지만, 일단 나는 돈을 벌겠다는 심플한 이유 하나만 갖고 회사를 다녔다. 애초에 직업에서 자아를 실현할 생각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회사 생활에 크게 기대하는 바가 없었고, 큰 불만 없이 다닐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무리 불만이 없다 해도, 내가 하는 일이 신념에 반하거나 부도덕하다면, 혹은 사회적으로 무용한 일이라면, 오랫동안 그 일을 하기는 쉽지 않을 거다. 그러니까 눈곱만큼일지라도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주관적 만족은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가 회사에서 하는 일이라는 게 보통 매우 촘촘하게 세분화되어 있고 분업화되어 있어서, 공동으로는 사회적 가치를 생산할지라도 개인이 하는 일은 그 사회적 가치와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는 경우가 많다. 보람 따위 개나 주라는 농담은 직업을 대하는 젊은 사람들의 인식을 대변하는 말일뿐 아니라 분업화된 현대 직업 특성을 반영하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하는 일이 사회와 연결되어 있고 세상이 나로 인해 나아지고 있다는 보람 따위는 정말이지 느끼기 쉽지 않다.
그런데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그렇지 않다. 보통 회사원인 나와는 뭔가 다르다.
<실리콘 밸리>는 장장 여섯 시즌에 걸쳐, 혁신적인 IT 기술을 개발한 너드미(Nerd美) 넘치는 프로그래머들이 회사를 키워나가는 내용이다. 어느 순간 우리 삶을 지배한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IT 스타트업 신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배경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신념이 현실적인 벽에 막히거나 욕망의 덫에 빠져 비틀거리는 모습을 아주 가까이에서 포착하고, 협잡과 비리가 난무하는 거대 기업들의 이전투구를 실감 나고 유머러스하게 그린다. HBO 답게 약물과 F word가 난무하니, 애들은 부모가 알아서 관리해야 한다.
이 시리즈는 몇 가지 이야기할 포인트가 있다. 특별히 뛰어난 소수가 세상을 이끌어가고 평범한 절대다수는 그들이 바꿔 놓은 세상을 좇을 뿐이라는 생각. 그러므로, 뛰어난 소수와 평범한 다수는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 과연 이 생각이 타당한가 하는 것이다. 이 시리즈에서는 회사를 설립한 CEO가 평직원들에게 놀림거리가 되거나 거대 IT 기업의 창립자가 이사진에게 쫓겨나는 등 평등주의 기업 문화를 보여주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내가 다니는 회사의 창립자이자 회장인 사람에게 그렇게 하는 걸 상상해보니 잘 그려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꽤 신선하게 다가온다. 또한 기업의 제품이 세상에 미칠 영향과 그에 대한 책임의 범위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CEO 리차드는 기업을 키워가는 과정에서 때로는 부도덕한 길로 빠지거나 잘못된 결정을 내리기도 하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신념을 끝끝내 굽히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시리즈를 완벽하게 마무리하는 마지막 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자와 나오키>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은행원이 된 한자와 나오키가 엄청난 능력을 발휘해 내외부의 적들을 쳐부수고, 결국 은행과 자신을 지켜낸다는 얼개의 복수극이다. 일본 드라마 특유의 선명한 선악 구도와 그것을 지탱하는 평면적인 캐릭터들, 말도 안 되게 비현실적이고 유치한 캐릭터의 등장과 작위적인 대결 구도 등 전체적으로 너무 극적으로 꾸며져 있긴 한데, 마치 사무라이의 진격을 보듯 적을 한 명 한 명 쳐부수는 과정이 비장하고 통쾌해서 다음 화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드라마 자체의 재미는 그렇다 치고, 이 드라마를 보면서 놀랐던 포인트는 일개 은행원일지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함으로써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소명 의식을 끝없이, 거침없이 드러낸다는 점이다. ‘우리는 나사 하나에 불과할지 몰라도, 이 세상을 우뚝 서게 하는 밑거름이다.’ 이런 대사를 직접 입으로 한다. 더 놀랍고 무서운 건, 은행은 돈을 빌려줌으로써 세상 사람들에게 엄청난 도움을 주고 있고 나아가 국가의 성장에 굉장한 기여를 하고 있다는 가치관이 필터 없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점이다. 세상을 구성하는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함으로써 세상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심어주고, 그만큼의 책임감을 느끼도록 고안된 메시지다. 일본의 역사와 일본인 특유의 사고방식을 떠올리면 정말 무서운 메시지 아닌가. 은행원으로서 열심히 일하는 것은 돈이 필요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선량한 행위이고 나아가 국가 경제를 발전시키는 애국적인 행위가 된다.
세상을 나아지게 한다는 신념을 갖고 일하는 실리콘 밸리의 스타트업 CEO와 일본의 은행원. 완전히 다른 문화에 기반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 두 사람의 직업의식은 회사를 다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로 뛰어난 기술을 개발해도 그것을 뒷받침하는 인력과 자본 없이 기업은 성장하지 못한다. 물론 그것을 이용하는 소비자 없이도 안 된다. 리차드 혼자서는 세상을 달라지게 할 수 없다는 거다. 그렇다고 한자와 나오키처럼 은행원으로 열심히 일하는 것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엄청난 기여를 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세상은 워낙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이해관계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그냥 그렇게 꿈틀꿈틀 조금씩 달라지는 거다. 항상 더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항상 나빠지는 것도 아니다. 페이스북이 세상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변화를 가져왔고 그로 인해 특정 산업이 발전한 면도 있을 거다. 하지만 그로 인해 기존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축소되고 어떤 산업은 망했다. 그렇게 변한 거다. 그게 세상을 더 ‘낫게’ 만들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직업 효능감이 있어야 그 일을 지속할 이유가 생긴다. 위에서 말한 두 사람만큼은 아닐지라도 세상에 기여하고 있다는 내적 만족도 적당히 필요하다. 우리는 기계나 로봇이 아니다. 감정도 있고 추구하는 가치도 있다. 그렇다고 자신을 부풀려서 생각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세상은 내가 없어도 굴러가지만, 내가 없으면 세상은 사라져 버리므로 그 이후의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든 아무 의미 없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각자 한 명분의 몫을 한다. 한 명분의 생산과 소비를 하다가 한 명분의 공백을 남기고 세상에서 사라진다. 우리는 언제나 세상을 각자 한 명분만큼 달라지게 하고 있다. 그것들이 전부 모여서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2021.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