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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름 Jun 28. 2021

하루 종일 우주 생각

플라이 투 더 문/사피엔스/재밌어서 밤새 읽는 천문학 이야기/떨림과 울림

[에세이] 플라이 투 더 문. 마이클 콜린스.

[인문]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과학] 재밌어서 밤새 읽는 천문학 이야기. 아가타 히데히코.

[에세이] 떨림과 울림. 김상욱.     






세계일주를 하겠다는 꿈은 마음속에 언제나 얕게 깔려 있다. 아무 때나 그 꿈이 튀어나오는 건 아니고, 아직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운 것도 아니지만, 그건 그냥 마음 안에 있다. 무대 위에 낮게 깔린 드라이아이스처럼 의식의 발목 정도를 항상 감싸고 흐른다. 세계일주 책을 사서 그 안에 있는 세계지도를 벽에 붙여 놓은 지도 몇 년 됐다. 지도를 붙이면서는 이 지도를 항상 보면서 꿈을 잊지 말자, 언젠가 떠날 날을 위해 준비하자, 이런 생각이었던 것 같다. 가끔, 정말 가끔, 지도 앞에 서서 어떤 나라들이 어디에 있나 볼 때도 있지만 이제 대부분의 시간을 거기에 지도가 붙어있다는 사실도 잊고 산다. 벽에 붙여 놓고 나니 벽지와 하나가 되어 사라져 버린 것 같다. 거기에 지도가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볼 필요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아이러니다.


최근 읽은 몇 권의 책과 우연히 접한 콘텐츠들 때문에 우주에 관한 호기심이 나날이 증폭하고 있다. 그동안 어떻게 이런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올 수 있었지? 싶을 만큼 우주의 모든 것이 신비롭다.


천문학 서적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라고 권유한다. 그곳에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온 과거가 있고 우리가 무엇인지 말해줄 비밀이 있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미래가 있다고. 일상에 부대끼며 눈앞과 발밑만 쳐다보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휴식과 사색의 시간을 선물하고 싶다는 바람이 담긴 권유다. 그런 글을 읽으면 몇 번 하늘을 보다가도 며칠 지나면 다 잊는다. 밤하늘이 거기 있는 건 알지만 다른 볼 것들이 너무 많다. 하늘이 맑아 달이 밝게 비치는 날에는 꽤 오랫동안 눈길을 주고 한 마디(와! 달이 밝네!) 하기도 하지만 보통 몇 초 이상은 아니다. 하늘을 뿌옇게 뒤덮는 미세먼지도 없고 하늘가에서부터 희부윰하게 물들이는 도시의 빛도 없는 이상적인 자연 속에 산다면 왜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보며 우주의 신비를 탐구하고 싶지 않겠나. 우리에게도 밤하늘을 올려다보지 못하는 나름의 이유가 다 있다.


우주에 대한 기초 상식 수준의 정보를 하나씩 알아갈수록 그저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어이없는 웃음이다. 우주는 그냥 어이없다. 대체 이게 뭔지 모르겠다. 그전에는 외계인의 존재에 대해 그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글쎄, 잘 모르겠네, 정도로 두루뭉술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다. 외계인은 무조건 있다(있었거나, 있을 것이거나). 지금까지 인간이 관측한 우주가 전부 거짓이 아니라면, 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은하와 항성과 행성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지구 이외에 생명 비슷한 것이 있는 별이 없다고 생각하는 게 더 어이없다. 과학자들은 그 어이없음을 수학으로 계산해 멋지게 증명한다. 그런 것이 있다 해도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에 시간이 겹치지 않아 만나지 못할 확률까지도.


180억 광년 떨어진 별이라니. 빛의 속도로 180억 년 가야 닿을 수 있는 거리라니. 그 말은 인류가 관측한 그 별에서 나온 빛이 180억 년 전의 빛이라는 건데, 이런 얘기들을 읽고 있으면 아찔해진다. 내 작은 머리로는 상상도 잘 되지 않는다. 실재하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한다니. 좌절할 만도 한데 그렇지는 않다. 나는 현재 살아있는 78억 사피엔스 중 지극히 보통인 하나일 뿐이다. 하나의 개체로서 내가 가진 상상력의 한계는 조상들이 머리 빠개지게 확장시켜 온 결과이고 후대로 전수되기 전의 평균치이다.


지구가 지금과 비슷한 형태로 존재한다고 가정할 때만 사피엔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사유하는 것에 의미가 생긴다. 우주를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과 아무리 용을 써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인간의 절망도 지구가 지금과 비슷한 형태로 존재해야만 의미가 있다. 물론 우리 사피엔스에게만 의미가 있다. 나는 사피엔스고 의미를 찾는 존재다. 지구가 망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구가 이제는 손 쓸 수 없는 지경이라는 우울한 뉴스를 보며 내가 뭘 할 수 있나 생각해 보다가도, 그 뉴스를 소비하는 방식조차 지구를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몸에 힘이 빠진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우주를 생각하다 보면 인간이 신을 상상하고 종교를 만들어 그것에 몰두하게 된 것도 이해가 된다. 우주만 생각하다 보면 허무주의에 빠질 우려도 있다. 우주는 너무 넓어서 지구나 사피엔스 따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가 의미를 상실했을 때 얼마나 끔찍한 존재가 될 수 있는가.


우주를 향한 관심은 씁쓸함으로 귀결된다. 지구를 생각하면 그렇고, 사피엔스의 행태를 생각하면 그렇고, 너무나도 광활한 공간과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생각하면 그렇다. 내가 가진 상상력의 한계는 다른 차원이나 가능성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이번 삶의 경험이 전부라고 내 작은 뇌를 옥죈다. 죽음과 소멸에 대한 공포로 이어진다.


그런데 다행히 선대 사피엔스로부터 받은 선물이 있다. 망각이다. 공포는 잊힌다. 언젠가 세계일주를 하겠다고 벽에 붙여 놓은 세계지도가 벽지와 구분되지 않는 것도, 밤하늘에 밝게 빛나는 달이 있어도 흘깃 보고 달이 밝군 하고 마는 것도, 180억 광년 거리에 엄청나게 큰 은하계가 있다는 걸 알고도 유튜브를 보고 게임을 하면서 하루하루 그냥 살아가는 것도, 전부 망각하기 때문이다. 고통, 후회, 짜증, 분노, 기쁨, 슬픔 같은 감정도, 배기가스, 온난화, 플라스틱 섬, 공장식 도축, 산업적 어획의 폐해, 인권유린,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는 크고 작은 전쟁 같은 끔찍하고 치명적인 일들도, 전부 망각하기 때문에 살 수 있다.


그럼 모든 걸 잊고 속 편하게 사는 게 답인가. 망각은 선물이니까.


나는 이런 질문을 오래전부터 했다. 답은 구하지 못했다. 답은 없으므로, 당연히 구할 수 없다.


다만 기억하는 능력도 선대 사피엔스가 준 선물이라는 걸 잊어선 안 된다. 플라스틱 섬을 보고 난 후에는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한다. 공장식 도축의 참혹함을 알게 된 후에는 비건이 되어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플라스틱을 아예 쓰지 않거나 고기를 완전히 끊지는 못한다. 그러나 기억은 언제나 나의 의식에 얕게 깔려 있다. 무대 위에 깔린 드라이아이스처럼 발목 높이로 흐르고 있어서 나는 그것들이 거기 있다는 걸 안다. 플라스틱 대신 종이 용기를 달라고 하거나 고기 대신 샐러드를 주문할 때도 있다. 아주 예민하지도 너무 무심하지도 않은, 평균적인 사피엔스 중 하나인 나는 종종 잊고 종종 기억하며 산다. 이 모든 것들이 우주의 한 귀퉁이, 점점 망가져 가고 있는 작은 별에 사는 사피엔스에게만 의미가 있다는 것도, 알고는 있다.


벽에 세계지도를 붙여 놓았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꼭 세계일주를 하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너무 늦지 않게 할 생각이다.


(2021.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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