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가 들려주는 글로벌 기업에서 일 잘하는 노하우
직장인들은 네트워킹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소위 인맥관리를 하라는 건데, 나는 이게 그렇게 싫었다. 내게 네트워킹은 정치였고, 무능한 사람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실력으로 승부하면 되는데 왜 남들에게 잘 보이려 노력하며, 정치를 할 시간에 차라리 일을 더 하자는 생각이었다.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건, 관리자가 되고 나서였다. 당시 아시아 영업 이사였는데, 언젠가부터 다른 나라에 있는 우리 팀 직원들이 여기저기서 깨진다는 얘기가 들렸다. 싱가포르에 있는 직원은 싱가포르 지사장에게, 태국에 있는 직원은 다른 비즈니스 태국 상사에게. 처음엔 이게 뭐지 싶었다. 직원들에게 잘못한 게 없으니 당당히 맞서라 얘기했다. 그런데, 이게 계속되는 게 아닌가? 가만히 보니 결국 우리 비즈니스를, 나를 우습게 보는 거였다. 처음엔 괘씸하고 속도 상했다. 나한테 직접 그러면 대놓고 덤빌 텐데, 직급이 높은 다른 팀 상사들이 우리 팀 직원들을 괴롭히니… 딱 내 자식들이 다른 부모들에게 혼나고 오는 느낌이었다. 내 식구가 혼나는 걸 그냥 볼 수는 없었다.
우리 비즈니스의 힘을 키워야겠다는 싶으니 네트워킹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직원들 뒤에 내가 있다는 걸, 우리 직원들 건드리면 너도 힘들 거라는 걸.
회사의 아시아 조직도를 그렸다. 어떤 리더를 어떤 빈도로 만날 지 계획을 세우고 만나기 시작했다. 영향력이 큰 리더들과 좋은 관계를 만들려 노력도 했다. 그 관계 또한 다른 리더들이 볼 테니까. 노력을 한 지 6개월 정도 지나니 우리 직원들이 다른 리더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는 얘기는 차차 사라졌다.
네트워킹을 계속한 또 다른 계기는 비즈니스를 옮겨 Product Director가 됐을 때였다. 원래 텃세가 심한 조직에 남들이 원하는 자리를 다른 비즈니스 사람이 꿰차서 안 좋은 시선이 많았다. 또 내 일 자체가 영업팀, 마케팅, 등 여러 부서 사람들을 움직여야만 가능한 일이었고, 그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진행되지 않았다. 하루빨리 조직의 영향력 지도를 그리고, 내 일에 도움을 줄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들어야 했다. 그 관계를 보고 내가 시키는 일을 할지 말지 정하는 사람들도 많았으니 더욱.
세 번째 계기는 싱가포르에서 미국으로 발령이 났을 때였다. 경력자들이 많이 퇴사했고, 공장의 제품 수율은 최저였으며, 직원들 사기 또한 많이 저하된 상태였다. 당시 상사와 조직의 기대는 문제 많은 그 조직을 하루빨리 정상화시키는 거였다. 가장 먼저 한 일은 VCT (Value Center) 팀을 꾸리는 거였다. 영업, 마케팅, 연구, 기술 지원, 공장장 등 팀을 꾸리니 11명이었다. 멤버들은 각 부서의 리더로, VCT에서 정한 전략을 자기 부서에서 실행하는 방식이었다. 11명 중 나를 포함 8명이 새로운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한없이 막막했다. 다시 나만의 네트워킹을 시작했다.
나만의 네트워킹 노하우 첫째는 관점을 바꾸는 것이었다.
처음에 내가 본 네트워킹은 아래 그림처럼 윗사람들에게 잘 보이는 거였다. 직급별로 각 리더들에게 잘 보이는 것. 나를 낮추고 들어가는 일인데, 윗사람들이 하라니 또 해보기도 했지만 역시 나랑은 맞지 않았다.
어느 순간, 네트워킹 방식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 일을 한가운데 두고, 일과 관련된 사람들을 내 일과 가장 가까운 원부터 그려보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원을 다 그렸으면, 그 사람들 상사, 아님 다른 부서, 다른 지역 사람들로 나와 일하는 빈도가 더 적은 사람들을 그다음 원에 그린다. 이렇게 원을 키워나가다 보면 CEO도 만난다. 물론 CEO를 원에 넣을 필요는 없다. 원하면 그려도 되지만.
이제 네트워킹의 관점은 내가 잘 보여야 하는 상사들에서 내 일을 도와주는 사람들로 바뀐다. 나는 처음 이 원을 그릴 때 30명까지 원안의 사람들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30명을 찾은 후에는,
1. 사람들을 내 일을 잘하기 위한 중요도에 따라 A (가장 중요), B, C로 나눈다
2. 각 사람에게서 필요한 도움의 정도를 High, Medium, Low로 나눈다
3. 현재 그 사람과 나의 관계를 구분한다: 옹호자/지원자/중립/비평가/방해자 (Advocate/supporter/neutral/critic/blocker)
4. 각 사람에 대한 소통 방식을 정한다 (Manage closely / keep satisfied / keep informed / monitor)
5. 각 사람에게 전할 메시지를 정한다 (예. 공장 증설 지원받기, 인원 충원 승인받기 등)
6. 얼마나 자주 만날지, 어떤 방식으로 만날지 정한다. (예. 일주에 한번, 한 달, 6개월에 한 번 / 대면, 이메일, 화상, 전화 등)
7. 각 사람의 중요 관심사와 고민거리를 찾아본다 (예: 관심사 - 축구, 미술, 중국 시장 개척 등/ 고민- 직원 이직률, 이사 등)
8. 실행에 옮긴다
아래는 내가 사용했던 네트워킹 플랜이다. 업무나 조직이 바뀌었을 때는 플랜을 일주일에 한 번씩 검토했고, 적응 정도에 따라 한 달에 한 번, 분기에 한 번씩으로 검토 빈도를 줄였다.
전략적으로 네트워킹을 하면서 일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윗사람들에게 잘 보이거나, 내가 편한 정도에 따라 생기는 버섯들 모양의 네트워킹에서 미리 계획하고, 내 일을 잘하기 위한 조력자 관계를 만드는 걸로 바뀌었다.
돌아보니,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일을 하는 게 두렵지 않아 졌다. 네트워킹을 계속해 보면서 새로운 조직에서 조력자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배웠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네트워킹도 일이다'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