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상상했던 모습들이 새삼 현실에 가까워져 있음을 때때로 느낀다. 무르익은 봄은 볕이 좋아도, 비구름에 흐려도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다. 일 년에 일주일 정도일까, 가장 반짝이는 계절이다.
십 년을 넘게 동고동락했던 홍대와 연희동을 벗어나 새로 생활할 집을 찾고 있다. 익숙하지 않은 동네와 계약 조건 같은 것을 며칠째 보고 있다 보니 처음부터 글을 다시 배우는 것 같은 초심자의 기분이 들기도 한다. 미지의 세계는 때때로 두려움을 동반한다.
분주한 이사 준비로 일과 멀어진 생활을 하다 보니 불안한 마음이 하루하루 커진다. 카메라를 들고 사람들과 마주하는 순간이 역시 가장 행복하다. 잘 해내고 싶다.
행복의 형태와 사랑과 가족에 관한 생각을 최근 들어 자주 한다. 머지않아 시간은 나의 삶을 삼켜버릴 것이다. 더는 지난 일을 후회하고 싶지 않다.
짧은 틈이 나면 도시의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본다. 다들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 이렇게 수많은 사람이 어떻게 사랑을 하고, 일을 하고, 행복을 찾아가고 있는지 한명 한명 인터뷰라도 해보고 싶은 심정이다.
거대한 흐름 안에 있는 먼지 같은 존재의 자신이 너무나 작게 느껴진다.
아름다웠던 기억을 숨겨 두었던 간식처럼 하나씩 꺼내보며 산다. 아마도 이 순간도 언젠가 꺼내보며 웃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