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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엘 May 31. 2024

반가워, 도쿄

월요일에 이삿짐과 함께 추억이 도착했다. 짐을 풀자, 자신도 잊고 있었던 이전에 살던 집의 그리운 냄새가 났다. 마치 잃어버리고 있었던 그림자를 되찾은 기분이었다.


주변의 의견으로는 모두 버리고 새것으로 사면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있었는데, 그대로 가지고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많은 물건들에, 생각보다 많은 추억들이 남겨져 있었다.


공간은 이제서야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다. 며칠간 짐들과 씨름을 했더니 온몸 구석구석이 욱신거린다. 양손의 지문이 반질거리게 될 정도로 손을 많이 썼다. 새로 산 소파는 지금까지 산 가구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고, 선물 받은 파자마가 너무나 편하고 귀여워서 매일 입고 있다.


평화로운 날들을 보내고 있다. 거실에선 강과 바다가 만나는 풍경이 보이고 반대편엔 둥글고 큰 숲의 공원이 보인다. 직접 요리를 하게 되면서 먹는 음식들은 이전보다 깨끗해졌다. 오랜만에 먹은 인스턴트라면은 이게 원래 맛이 이랬나 싶을 정도로 맛이 없었다. 그간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식사를 해왔던 걸까. 신선한 재료로 만든 식사는 제법 큰 행복이었다.


지갑을 새로 샀다. 안쪽이 다 망가져서 카드며 돈이며 자꾸만 빠져나와 떨어질 정도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필요한 카드나 현금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한 번 사면 오래 쓰는 물건이라 고민이 길었다. 짙은 녹색에 안쪽은 검정에 가까운 감색으로 된 반지갑으로 결정했다. 여담이지만 지갑을 구매하고 면세 처리를 해주었던 직원의 밝은 응대가 기억에 남았다.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긴 행렬들이 이어져 있었는데도 그 밝은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건지 신기할 정도였다. 말 한마디에 사람의 마음은 충분히 따뜻해진다. 아직 몇 가지 절차가 남아서 많은 분께 제대로 연락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불러 주신다면 언제든 갈 준비가 되어있다.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들이 가득하다. 무덥지만 다가올 여름이 이제 조금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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