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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다람쥐 Dec 19. 2022

학원을 보내니, 재시 문자도 따라왔다

밀려오는 불안을 막기 위해 나는..

| 이럴 줄은 몰랐다 | 

 내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단어시험 재시 정도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 그렇게나 많은 책을 읽으며 수련(?)해두었는데.


 아이도 저 정도일 줄은 몰랐다. 학원이란 곳에 첫발을 내디디며 처음이 주는 설렘(?) 때문에라도 열심히 공부해갈 줄 알았는데.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아이는 처음으로 영어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사교육 없이 키워보겠다는 원대한 포부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실컷 놀다 보면 공부하는 날이 오겠지 하며 대책 없는 헛꿈을 꾸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너무 어린 나이부터 시키는 대로만 하는 공부 일정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들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왜 공부하는지 생각해볼 여유 없이, 그냥 시키는 대로 꾸역꾸역 해오다가 공부에 진절머리를 내며 이상하게 변해버린 아이들을 너무 많이 봤다. 시켜서 하는 공부의 한계는 너무나 분명하다는 걸 알 수 있는 사례도 많이 봤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이를 속도전으로 내몰지 않기 위해 애썼다. 스스로 결정해서 행동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을 충분히 주기 위해 노력했다. 주도성을 기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에 무엇보다도 신경을 썼다. 그런데, 학원 재시 문자가 나를 흔들었다. 그건 마치 '애가 공부를 안 하는 방향으로 주도성을 가지면 어쩔 건데? 그래도 받아들일 수 있겠어?'라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 내가 안달 낸다고 될 일인가 | 

 대형어학원의 시스템은 생각했던 것보다 좋았다. 온라인 숙제도 구색 맞추기 느낌이 아니었고, 단어 플래시 카드가 들어있는 앱도 만듦새가 좋았다. 이 시스템을 잘 이용하여 일취월장해보겠다는 마음으로 다닌다면 정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마음을 도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냐는 거다. 학원 가는 날, 단어 외우기는 시작도 하지 않은 채 넷플릭스를 보고 있는 아이를 보며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다 못 외웠는데... 망했다." 

 현관문을 나서며 아이가 말했다. 학원 가기 전에 한번 훑어보는 것 같긴 했지만, 그런 식으로 단어 공부를 해본 경험이 없는데 쉽게 외워질 리가 있나. 결국 얼마 있지 않아 단어 재시험에 걸렸다는 문자가 도착했다.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오면 어떤 말을 어떤 식으로 꺼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아이가 먹다 남긴 과일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이는 학원 다니느라 놀 시간이 별로 없는 친구들에 비해 자기는 행복한 초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와 더불어, 미래를 위한 실력을 쌓아야 계속해서 행복할 수 있다는 말에도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다. 지금까지 행복했다면 앞으로도 계속 행복하기 위해 이제 조금 진지하게 실력을 쌓아가면 좋겠는데, 어떤 방향으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아직 없는 것 같았다. 원래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노력하는 초등학생은 다른 집에만 살고 있는 법이다. 우리집에 살고 있는 초6은 왜 그런 유니콘이 아닐까 한탄하기보다, 다음에도 재시 걸렸다는 문자 받지 않으려면 빨리 단어를 외우라고 닦달하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은 없을까 고민해보았다.


| 밀려오는 불안을 막기 위해 독후활동을 계획했다 |

 일단 아이에게 숙제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다음 달 수강료는 내주지 않겠다는 말부터 했다. 학원은 실력 향상을 위해 이용하는 곳이지, 실력을 향상시켜보겠다는 마음이 없는 상태로 왔다 갔다 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러고 나서는 엄마와 독후활동을 함께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다행히도 아이는 나와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좋아해 줄지는 알 수 없다. 뭐든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 더 소중해지는 법. 언젠가는 엄마와 이야기하는 시간을 꺼려할지도 모르니 대화가 가능(?)한 이 시간이 고맙다. 이 고마운 시간에 우리는 주로 두서없는 말장난을 하다가 가끔은 서로 읽은 책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런데 이 시간을 조금 더 짜임새 있게 만들어보자고 제안한 것이다. 


 아이는 흔쾌히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우리의 독후활동은 어려운 책을 읽고 나란히 앉아서 독서감상문을 쓰는 시간과는 거리가 멀다는 설명 때문이었다. 글쓰기도 좀 있겠지만 맛집 탐방과 여행도 다닐 거라고 했다. 아이는 맛있는 것도 먹고 여행도 다닌다는데, 그 타이틀이야 독후활동이든 뭐든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좋아한 것 같았다. 


 재미가 없으면 아이는 언제라도 심드렁한 태세로 전환될 것을 알기에 진지한 독서토론을 계획한 것은 아니다. 나부터도 그런 걸 해낼 능력이 없다. 그저 이야깃거리가 있는 책을 함께 읽고 약간의 독후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아이를 조금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래야 "난 공부가 싫어"라는 말이 들릴 때, 다른 집 아이가 아닌 내 아이에게 필요한 말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를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있어야, 학원을 보낼지 말지에 대한 내 생각도 정리가 될 것 같았다. 이것이 우리 독후활동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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