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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다람쥐 Dec 31. 2022

이야기는 힘이 세다

맛있는 것도 힘이 세다

| 이런 책, 어디 없을까? |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는 미끼로 아이와 함께 읽은 책이 여러 권이다. 어디 내놓기 자랑스러운 방법은 아니지만 우리집에선 꽤나 효과가 좋은 방법이다. 보통은 약간의 도전이 필요한 책을 다 읽은 뒤 이를 기념하며 맛있는 간식을 먹는 정도이지만, 방학 기간에는 스토리가 있는 먹거리를 찾아서 독후활동으로 연결해보고자 했다.


 역사책에서 볼 수 있는 한 장면에서 잉태된 먹거리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의 탄생 배경을 잘 이야기해주는 책이 존재해야 했다. 그런 책을 찾는다면, 그 책을 읽고 책에 나오는 음식을 먹는 것으로 겨울방학의 한 장면을 장식하고 싶었다.


 이런 책을 쉽게 찾을 수 있을까 고민했었다. 그런데 괜한 고민이었다. 도서관에서 <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 튀김소보로 삽화에서 멀지 않은 페이지에 피난민 사진이 |

 대전에 유명한 빵집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빵집의 시작을 이야기하기 위해 한국전쟁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 <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의 첫 챕터에서는 유엔군을 맞이한 함흥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철수하는 수송선에 승선하려고 흥남부두에 몰려든 피난민 사진도 나온다. 한국사 책에서 이 사진을 봤다면 참고사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겠지만, 튀김소보로 삽화에서 멀지 않은 페이지에 피난민 사진이 있으니 생경한 느낌으로라도 더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엄마가 읽어보니 재밌던데, 너도 한번 읽어볼래? 이 책 읽으면 성심당이 있는 대전 여행 한번 계획해 보려고."

 아이에게 책을 건네며 말했다. 아이가 이 책을 읽는다면 성심당 빵을 먹으며 한국전쟁, 지역 소멸 위기,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와의 차이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나의 원대한 포부(?)는 살짝 숨긴 채 성심당에는 맛있는 빵이 많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아이는 3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두께에 살짝 흠칫하는 듯 보였지만 '맛있는 빵을 먹으러 간다는데, 이쯤이야' 하는 마음을 먹은 것인지 이내 첫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 빵 먹는 시간을 이야기하는 시간으로 바꾸어준 것은 |

 "헉! 일주일에 1억 5,000만 원어치를 팔았대!"

 아이는 성심당 팝업 스토어 매출액에 감탄했다. '중간에 책을 덮어버리지 않는 걸 보니 역경을 이겨낸 성공 스토리에는 역시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나 봐'라고 생각했었는데, 중간중간에 나온 놀라운 매출액이 마지막 페이지까지 이끌어준 역할을 했나 보다.


 우리는 기차를 타고 대전역에 도착했다. 성심당 본점은 대전역에서 가까운 거리였다. 평일 오전인데도 매장에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놀라며 책에서 본 빵들을 트레이에 담았다. 빵으로 가득 채워진 쇼핑백을 들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성심당 문화원으로 가서 음료를 주문했다.


 "엄마는 성심당 책에서 이 문장이 가장 기억에 남거든. 이야기를 가진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생존 가능성이 높다는 문장. 너는 책의 어떤 부분이 기억에 남아?"

 뽀얀 밀크쉐이크를 빨대로 휘저으며 아이에게 말했다. 

 "나는... 음... 튀김소보로!"

 아이는 싱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튀김소보로는 맛있었다. 굳이 책을 읽지 않고 먹어도 맛있었을 빵이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읽은 성심당 책은 그냥 '빵 먹는 시간'에 그칠 수 있었던 시간을 '이야기하는 시간'으로 바꾸어주었다. 문득 나는 아이의 기억 속에 튀김소보로의 맛이 더 오래 남을지, 우리가 나눈 이야기가 더 오래 남을지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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