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총량의 법칙
나는 강사가 되고 싶었다.
서비스강사 아카데미에 등록했다.
강사님께서
강사는 인생의 굴곡을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인생이 굴곡이 곧 나의 훌륭한 에피소드가 된다고......
나의 굴곡이 뭘까 생각했다.
딱히 굴곡이라 느낄 만한 게 없었다.
아니. 사건 사고는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게 크게 힘들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왜 그런 순간들이 힘들지 않았을까?
그 순간마다 엄마가 있었다.
초등학고 6학년 올라가는 해
친구들과 친구 집에 놀았다.
우리는 신나는 마음에 감자튀김을 해 먹자고 했다.
기름을 불에 올리고 감자를 씻었다.
그렇게 기름이 달궈졌고 기름에 불이 붙었다.
몰랐던 우리는 그대로 물을 부었고
제일 앞에 있던 나는
얼굴의 절반 이상이 2~3도 화상을 입었다.
90년대 후반이었던 그때는 화상병원이 흔치 않았다.
엄마 아빠는 화상에 좋다는 약을 구하러 전국을 다니셨고,
엄마는 내가 병원이라도 가야 할 때면
눈이 쌓인 한 겨울에
여름 창 모자 위로 수건을 묶어 햇빛을 차단시켰다.
수건에 가려 앞이 보이지 않는 나를 엄마는 두 손을 꼭 잡고
한발 한발 움직이셨다.
화상이 나을 무렵 너무 가려워 밤잠을 설치는 나에게
"엄마랑 겜보이 할래?"
게임이라곤 해본 적 없는 엄마는
그렇게 밤새 나와 게임을 하고
둘이 오전 내도록 잠을 잤다.
엄마는 학교에 직접 찾아와 체육수업도 모조리 빼셨다.
한창 사춘기인 딸내미 얼굴에 흉 지면
평생 힘들어할 것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그렇게 6개월을 햇빛을 피해 가며 살았고
지금은 흔적조차 없이 잘 나았다.
이처럼
나에게 벌어진 사건 사고에는 늘
엄마가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일어난 모든 사건은
나의 굴곡이 아니고
엄마 인생의 굴곡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한창인 26세엔
이 세상은 모두 내 뜻대로였고
내가 바라는 건 다 할 수 있어고
그래서 이 세상이 만만했다.
이 세상이 만만했던 나에게
굴곡 없는 인생이
강사로써 콤플렉스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