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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우리 May 31. 2022

없는 게 콤플렉스예요.

고통 총량의 법칙

나는 강사가 되고 싶었다. 

서비스강사 아카데미에 등록했다. 


강사님께서

강사는 인생의 굴곡을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인생이 굴곡이 곧 나의 훌륭한 에피소드가 된다고......


나의 굴곡이 뭘까 생각했다. 

딱히 굴곡이라 느낄 만한 게 없었다.

아니. 사건 사고는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게 크게 힘들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왜 그런 순간들이 힘들지 않았을까?


그 순간마다 엄마가 있었다. 


초등학고 6학년 올라가는 해

친구들과 친구 집에 놀았다.

우리는 신나는 마음에 감자튀김을 해 먹자고 했다. 

기름을 불에 올리고 감자를 씻었다. 

그렇게 기름이 달궈졌고 기름에 불이 붙었다. 

몰랐던 우리는 그대로 물을 부었고

제일 앞에 있던 나는

얼굴의 절반 이상이 2~3도 화상을 입었다. 


90년대 후반이었던 그때는 화상병원이 흔치 않았다. 

엄마 아빠는 화상에 좋다는 약을 구하러 전국을 다니셨고,

엄마는 내가 병원이라도 가야 할 때면

눈이 쌓인 한 겨울에

여름 창 모자 위로 수건을 묶어 햇빛을 차단시켰다.

수건에 가려 앞이 보이지 않는 나를 엄마는 두 손을 꼭 잡고 

한발 한발 움직이셨다. 

화상이 나을 무렵 너무 가려워 밤잠을 설치는 나에게

"엄마랑 겜보이 할래?"

게임이라곤 해본 적 없는 엄마는 

그렇게 밤새 나와 게임을 하고

둘이 오전 내도록 잠을 잤다. 

엄마는 학교에 직접 찾아와 체육수업도 모조리 빼셨다.

한창 사춘기인 딸내미 얼굴에 흉 지면

평생 힘들어할 것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그렇게 6개월을 햇빛을 피해 가며 살았고

지금은 흔적조차 없이 잘 나았다. 


이처럼

나에게 벌어진 사건 사고에는 늘 

엄마가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일어난 모든 사건은

나의 굴곡이 아니고

엄마 인생의 굴곡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한창인 26세엔

이 세상은 모두 내 뜻대로였고

내가 바라는 건 다 할 수 있어고

그래서 이 세상이 만만했다. 


이 세상이 만만했던 나에게

굴곡 없는 인생이

강사로써 콤플렉스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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