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로 알아야 나에게 편안한 관계의 적정선을 맞출 수 있는 것이다.
제가 예전에 정신건강의학과 초진 상담을 받은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렸었는데요. 제 이야기에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셔서 얼마나 많은 분들이 우울증 치료 및 회복에 관심이 많으신지를 알 수 있었어요. 저는 현재 상담과 자가치유를 꾸준히 병행하여 우울증을 회복한 상태이고요.
우울증을 치료해나가는 저의 경험담들이 누군가에겐 위로가 누군가에겐 조그마한 희망이 되었으면 해서, 저의 상담 기록을 우울증 치료 일지라는 콘텐츠로 다시 연재를 이어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의 우울증 치료 일지에서는 단순히 상담 내용만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그때 이런 감정을 느꼈구나... 그래서 내가 이런 행동을 했구나... 등 우울증을 회복한 현시점의 심리학적인 인사이트도 함께 소개 드리려고 해요.
자 그럼, 우울증 치료 일지 두 번째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정신과 의사 : 오늘은 좀 어떠세요?
나 : 이번 주에 다니던 직장에서 퇴사를 했거든요. 그 직장에서 먼저 퇴사하신 직장 선배와 저녁을 먹었는데요. 그 분하고의 에피소드 중 제가 선생님께 객관적으로 의견을 여쭤볼 부분도 있고, 제가 그때 느낀 복잡했던 제 감정이 잘 이해가 안 돼서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려고 해요.
정신과 의사 : 네,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나 : 그 직장 선배분은 예전에 저의 회사를 다니시다가 퇴사하신 부장님이시거든요. 이성적인 마음 전혀 없었고 다른 회사 추천도 받을 겸 순수한 의도로 만난 것일 뿐인데, 자꾸 저에게 선을 넘는 말을 하시는 거예요. 본인 여자친구분하고 요즘 사이가 안 좋다고 하시고, 다른 이성과 같이 밖에서 밥을 먹는 게 오랜만이라고 하시면서 자꾸 이상한 농담들을 하셨어요.
나 : 그러면서 저는 왜 남자친구가 없냐고 물어보시면서, 외롭지 않냐, 수녀원이나 가라고 하시길래, 저는 이성적인 그런 외로움보다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외로움과 감정들에 더 관심이 많다고 말씀드렸더니, 저의 의견을 무시하시고 저를 사회적으로 트렌디하지 못하고 뒤떨어져 있는 사람으로 몰아가시는 거예요.
나 : 순간 많은 생각들이 들었어요. 분명히, 선을 넘은 건 그 직장 선배인데, 내가 진짜 트렌드에 뒤처진 사람인가? 나도 가벼운 만남을 추구하는 그런 트렌드에 따라가야 되나? 내가 문제가 있나? 하며, 지금 이 상황이 그리고 나의 중심이 혼란스럽고 헷갈리기 시작했어요. 제가 그 직장 선배한테 느낀 그런 생각과 그런 감정들이 보편적인 건가요? (내가 느낀 나의 감정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해 선생님께 질문을 함)
정신과 의사 : 어쨌든 그분이 연애관에 대한 나의 반응을 조금 더 세심하게 배려해 줬으면 더 이상 얘기까지는 진행 안 갔을 것 같거든요. 이분은 자기 의견대로 그쪽의 얘기로 많이 이끌고 가면서 나한테 호감이 있어서 그렇지 않았나 싶은데, 그 00님이 말해준 그 에피소드는 물론 00님의 중심으로 서술되었기 때문에, 제가 느끼기에는 그분이 되게 부적절하게 나에게 접근한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어쨌든 그 에피소드에서는 나는 같은 마음이 아니고,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의 그런 그 경직된 부분을 오히려 그분이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내가 문제다 식으로 몰아가는 느낌. 그렇게 보여요. 00님이 잘못하는 건 없는 것 같고, 조금 부적절한 그런 접근을 시도했던 분이라도 그렇게 느껴지네요.
나 : 그리고 뭔가 다들 저한데 연애를 왜 안 하냐고. 연애를 안 하면 그것들을 많이 물어들 봐요.
정신과 의사 : 안 하는 게 아니고 못하는 거죠. 내가
나 : 근데 이 말을 하면 다들 이해를 못 하더라고요.
정신과 의사 : 근데 이해 못 해요. 그 부분을 온전히 이해받을 수도 없고, 아, 그래, 그냥 그렇게 말해주고 이해를 너무 기대하지 말아요. 나는 원래 그래, 모를 수도 있어 하고, 다른 화재로 넘어가면 돼요. 내 안에 내 감정에 대한 숙제가 해결되야지 사실 제대로 사귈 수도 있는 거거든요. 물론, 진짜 좋은 만남을 하면 진정한 관계를 만들면 나에 대해서 더 많이 치유적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 감정의 변화도 더 빨리 올 수도 있어요. 그것도 맞는 말인데. 근데, 내가 준비되어 있을 때 만난다면 더 상승효과가 되겠죠.
어쨌든 그분이 뭔가 작업 걸려고 했던 걸로 느껴지네요. 근데 나는 너무 철벽 치고, 오히려 모르는 척 아닌 척하는 스타일로 하니깐, 비집고 들어 올려고 하는데 틈이 안 보여서, 그 남자분이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나 싶거든요. 그리고 어떻게 보면은 오히려 내가 화를 낼 수도 있는 상황인데요. 됐다고 저 그럼 내리겠습니다. 해도 요즘 같은 자기 성주체성이 굉장히 중요한 시기에 그렇게 불쾌하게 하면 성추행이라도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에요.
나 : 약간 제가 그런 게 있어요. 이게 너무 너무 억울한 일을 당하고 그러면, 그 상황을 피하고 말지 바로 반문을 못하거든요. 이게 저도 큰 숙제에요. 이게 나중에 자존감이 회복이 되면 할 수 있는 거겠죠?
정신과 의사 : 그럼요. 뭐 또 배워야 하는 부분도 있고,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안 해야 되는지 몰라서 못하는 부분도 있고...
나 : 너무 큰 충격을 받으면 이게 어떠한 감정으로 해석해야 되는지, 이게 머릿속이 멍해져 가지고, 그때 순간에는 아무 말 못 해 버리고, 집에 와서 생각해 보면, 아 내가 그때 화냈어야 맞는 상황인데 약간 이렇게 돼버려요.
당황스럽고 불편한 인간관계를 마주할 때 그때 그 상황에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다가, 집에 와서 속앓이를 하고 곱씹으며 화를 내는 것. 소위 말하는 '과거 곱씹기' 현상이라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나는 특히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상사를 마주하면 이러한 현상이 더 자주 발생한다.
나는 이러한 현상들이 내 감정과 나에 자신에 대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관계를 편하게 하려면 먼저 나에 대해서 가장 잘 알아야 한다. 샤워기의 온도를 조절할 때 조금 더 차갑게와 조금 더 따뜻하게를 반복하다 내게 맞는 적당한 온도를 찾아내듯이, 내가 어떤 스타일의 사람인지, 내가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나를 바로 알아야 나에게 편안한 관계의 적정선을 맞출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사회적으로 나다움과 고유성보다는 정답과 오답에 대한 교육만 받아왔다. 내 머릿속에는 다른 사람과 다르면 틀리고 잘못된 거라 인식이 뿌리 깊이 자리 잡았나 보다. 이 지독한 관념은 내가 마땅히 화를 낼 상황조차도 그것에 대한 나의 생각과 감정이 사회 통념적인 것인지 아닌지 눈치를 살펴보고 있었다...
내 마음속 1순위는 바로 나인데, 나는 왜 내 인생의 주인 자리를 누군가에게 줘버린 채 인생의 조연으로 살아가는 걸까?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해서 그것에 대해 죄책감과 의구심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다. 다른 사람이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무너지거나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나는 본래 나만의 스타일을 가진 그런 사람이고, 그 사람은 그 사람만의 스타일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니 바꿔나가려고 맞춰나가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이제,
스스로를 위로해도 된다. 이해해도 된다.
그런다고 한심해지지도 도태되지도 않는다.
오랫동안 너무 애써온 당신에게
삶에서 스스로를 소외시켰던 당신에게
이제는 다정해도 괜찮다.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내용 中, 김수현>
내가 나에게 인정하고 내가 나에게 너그러워질수록 내 감정에 대한 의사 표현도 좀 더 유연하고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그렇기에 중요한 건 지금 관계의 온도를 내가 편하게 느끼는지, 나의 마음을 아는 일이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온도 사이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편안한 관계의 온도를 찾아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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