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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명 Apr 04. 2024

계속 작가의 고양이로 살 수 있기를

정작 고양이는 관심 없는 집사의 직업

얼마 전 이직을 했다. 가까운 사람들은 내 이번 이직 소식을 듣고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에 옮긴 곳이 나에게는 10번째 직장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자소서도 면접도 지긋지긋해서 더는 못하겠다고 선언해 놓고, 슬쩍 다시 직장을 옮긴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이었다.

20대 때는 아무렇지 않았던 왕복 3시간 반이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점점 버거웠다. 특히 지금 나에게는 돌봐야 할 고양이도 있어서 하루의 절반 이상을 밖에서 보내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다. 내가 깜깜한 새벽에 출근하고 나서 최소 13시간 뒤 다시 집에 돌아올 때까지 여명이는 계속 혼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퇴근할 때마다 방묘문에 매달려 통곡하는 여명이도 짠하고, 길에 3시간 반을 버리는 나도 짠해서 결국 나는 입사한 지 그렇게 오래 지나지 않았음에도 선택의 기로에 섰다. 집을 옮길 것인가 회사를 옮길 것인가. 지난한 고민 끝에 나는 회사를 옮기기로 결정했다.

왜 이제 와아아아

이번에 새로운 직장을 찾을 때 내 조건은 3가지였다. 가까울 것, 내 경력을 이어갈 수 있는 곳일 것, 근무 시간 외에는 일과 내가 완전히 분리되는 곳일 것. 이렇게 입맛에 딱 맞는 곳이 있을까 의심하면서 찾았는데, 마침 적당한 타이밍에 거짓말처럼 공고가 났다. 집에서 아무리 천천히 가려고 애써도 30분이면 도착하는 곳에서 전시 콘텐츠를 담당하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마지막 조건도 문제없이 지켜지고 있어서 정시 퇴근 이후 회사로부터의 연락은 하나도 없다.

저런 조건을 내세웠던 이유는 글을 쓸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글을 읽고 다듬는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쓰는 일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깊어져서, 4년째 쓰고 있는 여명이 일기를 유지하면서 다른 장르의 글을 추가로 더 쓰고 싶었다. 글재주가 뛰어난 것도, 딱히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한참 고민했다. 가까운 사람들은 이직에 대한 책을 내는 게 어떠냐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권했고, 괜찮은 아이디어라서 언젠가는 쓸지도 모르겠지만 당장 퇴근 후에 쓰고 싶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고민 끝에 숨쉬듯이 공상과 망상을 하는 적성을 살려 이야기를 만들어 써보기로 했다.

아 그럼 사냥놀이는 언제 해주는데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이디어를 모아놓는 것과 그것을 엮어서 기승전결이 있는 완결된 이야기로 만드는 건 아예 다른 차원이었다.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이 어떤 글이든 완결을 반드시 내보라고 조언하는 이유를, 시놉시스를 짜면서 실감했다. 퇴근 후에 조금씩 이야기의 뼈대를 세우고 써나가는 과정이 즐겁기는 했지만, 내가 쓰는 이야기가 나한테만 재미있을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읽는 사람의 반응을 알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꽤 오랜 시간 읽어온 웹소설들이 떠올랐다. 무료 연재도 비교적 자유롭게 할 수 있으니 한번 도전해 보면 어떨까 싶었다.

결국 나는 쓰고 있던 이야기를 유지하면서, 새롭게 웹소설 연재를 시작했다.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매일 연재는 어려웠지만 적어도 일주일에 세 편은 업로드할 수 있도록 호흡을 조절했다. 독자였던 기간이 길었으니 나름 익숙하지 않을까 했는데, 1화를 완성하는데 거의 한 달이 걸렸다. 1화를 업로드하면서 걱정했던 건 악플이 아니라 무플이었다. 머리를 싸매고 썼는데 아무도 안 읽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고맙게도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독자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내가 예상했던 지점에서 예상했던 댓글이 넘실대는 걸 보면서 나는 매번 도파민이 터졌다. 강제성이 전혀 없는 무료 연재였는데도 도파민 중독 덕분에 단 한 번의 휴재나 지각 없이 계속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고, 독자 반응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렇게 평화롭게 연재를 이어가던 중 내 소설이 출판사의 간택을 받아 계약을 하게 되면서 내 창작 활동은 또 다른 국면을 맞게 되었다.

오올...

그동안 브런치나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혹시나 출판사와 계약을 하게 된다면 고양이에 대한 글로 하게 되지 않을까 하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웹소설 쪽이 먼저라서 놀랐다. 이번 계약으로 나에게 소름 끼치는 글 재주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만드는 작은 재주와 꾸준히 이어나갈 수는 있는 성실함은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처음으로 담당 편집자가 생긴 것도 그 편집자가 나를 작가님이라고 불러주는 것도 그렇지만, 늘 출판사 입장에서 쓰던 계약서를 작가가 되어 쓰고 있다는 게 제일 신기했다. 계약을 한 날 여명이한테 너네 집사 이제 작가라고 자랑하는, 제법 오글거리는 짓도 했다.

계약 자체는 신기하고 두근거렸지만, 이후에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여전히 나는 일을 하고 여명이와 시간을 보내며 글을 쓰고 독자 반응을 살피며 두근두근한다. 여기에 출간을 위한 출판사와의 작업이 추가되었을 뿐이다. 나중에는 또 어떻게 생각이 바뀔지 모르겠지만, 우선은 지금처럼 생계유지 수단을 따로 두고, 쓰고 싶은 글을 쓰며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웹소설도 그렇지만 내가 맨처음 쓰기 시작했던 이야기도 올해 안에는 완성해서 이번에는 투고를 해보고 싶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여명이라는 고양이의 ‘집사’지만 언젠가는 여명이가 ‘작가’의 고양이로 알려지면 좋겠다는 소박한 욕심이 있다.

소박한 거 맞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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