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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WeeklyEDGE

인재 확보만큼 치열한 AI 프로덕트 경쟁

그래머리는 왜 코다와 슈퍼휴먼을 인수했나

by CapitalEDGE

AI 인수합병의 또다른 한 축, 프로덕트 합종연횡


AI 인재 확보를 둘러싼 쩐의 전쟁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GPU 확보와 인프라 구축에 사활을 걸었던 기업들이 이제는 인재 확보 경쟁으로 무게중심을 이동한 모습입니다.


메타는 스케일AI 창업자를 새로 설립 중인 슈퍼인텔리전스랩스의 수장으로 영입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였으며, 오픈AI를 나와 세이프슈퍼인텔리전스를 설립한 일리야 서스케버 영입이 무산된 후에는 공동창업자인 다니엘 그로스를 영입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오픈AI 전 CTO 미라 무라티의 스타트업에는 구체적인 제품도 없는 상황에서 20억 달러의 자금이 몰렸다는 소식입니다.


https%3A%2F%2Fsubstack-post-media.s3.amazonaws.com%2Fpublic%2Fimages%2F254e8050-14f8-479f-8951-48876b77944d_2048x1311.jpeg 메타 슈퍼인텔리전스 팀 바이오 일부 (출처: @deedydas)


물론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대규모 투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최근에는 M&A를 통해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새롭게 플랫폼 생태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차별화 전략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AI 시대에 걸맞게 사용자 경험을 향상시키고 제품 사용에 대한 체류 시간을 늘리기 위한 '프로덕트 중심 M&A’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사례는 바로 그래머리(Grammarly)입니다. 2009년 설립 이후 15년간 글쓰기 보조도구로 4천만 일일 사용자를 확보해온 이 회사는 작년 말부터 급격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1년 사이 코다(Coda)와 슈퍼휴먼(Superhuman) 두 건의 전략적 M&A를 완료했고, 2025년 5월에는 10억 달러 규모의 고객 확보 자금 조달까지 마쳤습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 모든 움직임이 비교적 조용히 진행되었다는 것입니다. AI 스타 영입전이 미디어의 주목을 받는 동안, 물밑에서는 신흥 유망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검증된 프로덕트를 통해 사용자 기반을 확장하려는 소리 없는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머리의 전략 변경과 공격적 M&A


그래머리는 2009년 설립 이후 15년간 글쓰기 보조도구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해온 기업입니다. "맞춤법 검사 = Grammarly"라는 공식으로 4천만 일일 사용자를 확보했으며, 브라우저 확장과 플러그인 형태로 50만 개 이상의 애플리케이션에서 동작하는 광범위한 접근성을 갖췄습니다. 2021년에는 15조 원의 기업가치 평가를 받으며 데카콘 기업에 등극하기도 하였습니다.


https%3A%2F%2Fsubstack-post-media.s3.amazonaws.com%2Fpublic%2Fimages%2F99126348-43d3-4c75-b3b8-0e3b8308a16d_1200x630.jpeg 그래머리는 설립 8년 만인 2017년 처음으로 외부 자금을 유치하며 본격 성장 가도에 진입


하지만 챗GPT로 대표되는 대규모 언어 모델의 등장 이후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복잡한 자연어 처리 기술이 진입장벽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그래머리의 핵심 기능들이 범용 AI 모델에 의해 잠식될 위험에 직면한 것이죠. 이에 그래머리는 기존의 "사용자가 있는 곳 어디에서나 동작"하는 플러그인 중심 전략에서 벗어나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그래머리는 작년 말 ‘노션’의 경쟁자로 유명한 문서 협업 플랫폼 코다(Coda)를 전격적으로 인수합니다. 또한 코다의 창업자 시시르 메로트라(Shishir Mehrotra)는 인수와 동시에 그래머리의 성장을 이끌 신임 CEO로 임명됩니다. 창업 15년 만에 처음으로 이뤄진 CEO 교체를 통해 그래머리가 단순한 글쓰기 도구에서 벗어나 AI-Native 워크플로우 플랫폼으로 전환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입니다.


https%3A%2F%2Fsubstack-post-media.s3.amazonaws.com%2Fpublic%2Fimages%2F85f7b7b7-6f35-47a7-a097-0a96acfa86bf_1920x1080.jpeg 작년 말 그래머리에 인수된 노션의 경쟁자 코다(Coda)


2025년 5월에는 기존 투자자였던 제네럴 카탈리스트(General Catalyst)로부터 10억 달러 규모의 벤처 대출성 자금을 조달합니다. 특히 해당 자금은 단순한 에쿼티 형태가 아닌, 고객 확보 비용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신규 창출된 매출의 일부를 공유하는 형태의 구조화 증권 형태의 거래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그래머리 입장에서는 이미 수익을 창출하는 기존 사업이 있었기에 지분 희석 없이 공격적으로 시장 확장 전략을 펼 수 있는 재원을 빠르게 확보한 것입니다.


https%3A%2F%2Fsubstack-post-media.s3.amazonaws.com%2Fpublic%2Fimages%2F1466ec7d-7bde-488f-9359-9e474d0a4c22_1558x454.png Go-To-Market 전략 실행 전용 10억 달러의 비희석 구조화 자금 조달에 성공한 그래머리


"그래머리 같은 회사는 투입된 마케팅 달러 대비 매우 예측 가능한 수익 성장을 창출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제너럴카탈리스트


그리고 지난주, 그래머리는 두 번째 대형 인수를 단행했습니다. 대상은 극강의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이메일 서비스로 명성이 높은 슈퍼휴먼(Superhuman)입니다. 슈퍼휴먼은 지메일 이후 혁신이 없었던 이메일 서비스의 경험을 한 층 끌어올리며 테크 업계 파워유저들의 열광적 지지를 받아온 서비스입니다. 단일 버티컬 서비스로는 드물게 수만 명의 충성도 높은 유료 사용자층을 보유한 서비스이기도 하죠.


https%3A%2F%2Fsubstack-post-media.s3.amazonaws.com%2Fpublic%2Fimages%2Faa81072b-86d5-4dd4-8d80-6b51d0791c33_1162x814.png 7월 2일 슈퍼휴먼 인수를 발표한 그래머리


이 인수의 전략적 의미는 명확합니다. 그래머리는 그동안 지메일, 아웃룩 등 20여 종의 이메일 클라이언트에 플러그인 형태로 서비스를 제공해왔지만, 자체 이메일 애플리케이션을 확보함으로써 훨씬 깊이 있는 통합과 기능 구현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메로트라 CEO는 이메일이 "업무상 가장 핵심적인 커뮤니케이션 공간"이자 협업의 허브라는 점에 주목하여, 슈퍼휴먼을 AI 에이전트들의 활동 무대로 삼겠다는 구상을 밝혔습니다.


이렇게 1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그래머리는 코다 인수를 통해 문서 협업 기반을, 10억 달러 자금 조달을 통해 재정적 여력을, 그리고 슈퍼휴먼 인수를 통해 이메일 플랫폼을 확보했습니다. 각각의 행보가 단발성 기사로 그쳤지만, 연결해서 보면 AI 시대 새로운 종합 생산성 플랫폼으로의 전환하기 위한 고도의 청사진을 바탕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머리의 Outside-In vs 노션의 Inside-Out 전략


AI 시대에는 새로 등장한 서비스가 기존 서비스를 대체하는 속도도 빨라지지만 기존에 경쟁에서 뒤처졌던 후발 주자들이 선두 주자를 앞지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그래머리의 공격적인 전략이 흥미로운 이유는 생산성 도구 1인자로 올라선 노션이 최근 AI 기능 통합에서 시행착오를 이어가고 있는 모습과 대비되기 때문입니다.


노션의 Inside-Out 전략: 중력으로 끌어들이기


노션은 2022년 캘린더 앱 Cron 인수 이후 노션 캘린더를 출시하고, 2024년 보안 이메일 서비스 Skiff 인수를 통해 노션 메일을 준비하는 등 자체 플랫폼 내에서의 기능 확장을 추진해오고 있습니다. 특히 노션은 초기 스타트업 인수를 통해 ‘인력과 기능’ 통합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이미 강력한 사용자 기반을 보유하고 있기에 프로덕트 개발 속도를 단축시키는 관점으로 M&A 전략을 활용하는 것이죠.


이론적으로는 장점이 명확해 보입니다. 컨텍스트 전환(Context Switching) 비용을 줄이고, 일정-문서-대화 등 업무 맥락이 흩어지지 않아 효율성과 협업도가 올라갈 것으로 기대할 수 있죠. 노션 AI와 캘린더, 메일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회의 일정에 의제를 첨부하거나 문서 내용을 기반으로 이메일 답장을 생성하는 등의 시너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https%3A%2F%2Fsubstack-post-media.s3.amazonaws.com%2Fpublic%2Fimages%2F280ea35d-dd23-4543-aa0b-65b4968487d9_1280x720.jpeg 노션 캘린더 기능


하지만 현실은 이론과 다릅니다. 사용자 습관 변화의 벽이 생각보다 높은 것입니다. 노션 캘린더 출시 후에도 상당수 사용자는 기존 구글 캘린더를 완전히 대체하지 못했고, 야심차게 선보인 AI 기능도 챗GPT만큼의 습관적 사용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쓸데없는 AI 기능을 공격적으로 밀어붙여서 오히려 사용에 방해가 된다"

노션 사용자


게다가 노션이 캘린더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Cron을 인수한 시점은 2022년 6월인 반면 공식적으로 노션에 캘린더 기능을 추가한 것은 2024년 1월입니다. 구글 캘린더와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캘린더 기능 추가에 18개월이나 걸린 셈이니 빈틈없어 보였던 노션의 프로덕트 역량도 어딘가 고장나기 시작한 것이 아니냐는 언급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머리의 Outside-In 전략: 물처럼 스며들기


반면 그래머리는 정반대 접근을 취했습니다. "사용자가 있는 곳에 우리가 들어가자"는 철학으로, 기존에 검증된 전문 서비스들을 M&A로 흡수하여 그 사용자층과 기술력을 즉시 활용하는 전략입니다. 코다와 슈퍼휴먼이라는 "이미 성공한 앱들"을 손에 넣어 빠르게 조각을 맞추듯 전략을 완성해가는 방식입니다.


이 전략의 핵심 통찰은 사용자 행동 변화의 어려움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메로트라 CEO는 "그래머리의 진짜 마법은 사용자가 행동 방식을 바꾸지 않아도 4천만 유저가 매일 쓰도록 만들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그래머리 서비스는 애초에 브라우저 확장/플러그인 형태로 지메일, 워드 등에서 동작하도록 설계되어 새로운 사용법을 강요하지 않는 "비서형 AI"로 성공을 거둔 바 있습니다.


https%3A%2F%2Fsubstack-post-media.s3.amazonaws.com%2Fpublic%2Fimages%2F6f870995-9cc9-47cf-954b-878a1812faa4_2048x1365.png 슈퍼휴먼AI의 Instant Reply 기능


코다 인수를 통해 800여 개의 외부 앱 연동 기능을 확보하고, 슈퍼휴먼 인수로 이메일 영역의 혁신적 사용자 경험과 충성도 높은 고객층을 흡수한 것은 이 철학의 연장선입니다. 획득한 서비스들을 유지·발전시켜가면서 그 사이를 AI 에이전트 기술로 연결하는 형태로, 사용자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더 똑똑해진 익숙한 도구를 쓰게 되는 경험을 제공합니다.


그래머리의 Outside-In 전략은 전통적으로 프로덕트 개발 세계에서 선호되는 방법은 아닙니다. 이질적인 서비스의 통합이 사용자 경험을 저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래머리를 이끄는 메로트라는 AI 시대의 달라진 제품 개발 속도와 Outside-In 전략은 충분히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바이브 코딩이 대세로 떠오른 시대, 내부에서 모든 프로덕트를 개발하는 방법론이 오히려 올드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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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면 뒤처진다: AI 시대에는 성장 전략이 곧 생존 전략


그래머리와 노션의 사례가 시사하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AI 시대에는 정체가 곧 퇴보라는 것입니다. 두 회사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성공을 거둔 후에도 멈추지 않고 과감한 확장을 시도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AI 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기존 우위가 하루아침에 무력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머리가 15년간 구축해온 문법 교정 기술이 범용 AI 모델에 의해 위협받는 상황, 노션이 구축한 문서 작성 환경이 또다시 오픈AI, 앤트로픽, 퍼플렉시티의 서비스들과 직접 경쟁해야 하는 상황은 기술적 해자의 반감기가 급격히 단축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제 기업들은 기존 강점을 방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하고 진화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https%3A%2F%2Fsubstack-post-media.s3.amazonaws.com%2Fpublic%2Fimages%2Fbe473545-1c2c-4af5-a8cb-949153609bcd_1266x684.heic AI 시대 경쟁력을 유지하는 피드백 루프는 더욱 복잡하고 정교해진다 (image: Pivotal)


게다가 AI 시대 플랫폼 경쟁의 또 다른 특징은 단순한 기능 추가를 넘어선 생태계 구축 경쟁입니다. 그래머리의 메로트라 CEO가 제시한 ‘멀티 에이전트 플랫폼’ 비전이나 노션의 ‘소프트웨어 레고’ 개념은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개별 기능의 우수성보다는 다양한 기능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만들어내는 시너지가 새로운 경쟁력의 원천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머리와 노션의 경쟁은 아직 시작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치열한 진화 경쟁은 AI 시대 기업 전략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지속적 진화와 과감한 확장, 이것이 AI 시대를 살아남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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