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머스크가 싸워도 DOGE 실험은 계속된다
트럼프와 머스크의 분열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때 깐부 같던 그들도 이제는 미디어를 사이에 두고 게임을 하듯 으르렁댑니다. 비난, 조소, 견제, 사과, 협박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모습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두 사람에게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둘 다 소셜미디어의 제왕처럼 실시간 소통에 능하다 보니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올리는 메시지를 따라가느라 고통받고 있죠. 개인적으로는 큰 관심은 없지만 뉴스는 뉴스입니다.
미디어에서는 이런 개인적 갈등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지만, 더욱 주목해야 점은 그들이 함께 시작한 정부효율성부(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 DOGE)가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가입니다. 트럼프 2기의 상징적 조직으로 출발한 DOGE는 머스크의 공식적 이탈 이후에도 다른 형태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단순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정부 내부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흥미로운 자료가 공개되었습니다. 크리에이터 플랫폼 검로드(Gumroad)의 창업자 사힐 라빈지아가 DOGE에서 55일간 근무한 경험을 자신의 블로그에 상세히 기록했습니다. 무급으로 재향군인부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했던 그의 증언은 DOGE 내부를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1차 자료입니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화려한 슬로건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부를 "기업처럼 운영"하겠다던 비전이 실제 운영에서 어떤 도전에 직면했는지, 그리고 선의를 가진 기술자들이 어떤 경험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경험담을 넘어서, 실리콘밸리와 워싱턴의 만남이 만들어내는 복잡성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사힐 라빈지아는 2016년 버니 샌더스 선거운동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는 창업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방정부를 위해 코드를 쓰고 싶다는 순수한 동기로 DOGE에 합류했다고 언급합니다. 재향군인부 비서실장의 "수석 고문"이라는 직책을 받았지만, 급여는 0달러였습니다. 첫날부터 그의 정확한 지위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에게 주어진 첫 번째 임무는 90,000개가 넘는 재향군인회의 계약을 검토하는 것이었습니다. 기존 방식은 PDF를 찾고, 담당자에게 연락하고, 필요성을 판단하는 극도로 비효율적인 수작업이었습니다. 라빈지아는 LLM을 활용한 자동화 스크립트를 제안했지만, 정부 보안 정책으로 인해 깃허브도 Python도 설치할 수 없는 제한된 환경에서 작업해야 했습니다. "왜 정부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아웃소싱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고 그는 회고합니다.
셋째 날(Day 3)은 비용 감축(Reduction In Force, RIF) 관련 회의가 있었습니다. 더그 콜린스 장관과 마크 엥겔바움 비서실장이 참석한 이 회의에서 1944년 재향군인 우대법의 적용 방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과가 아닌 재직기간 순으로 해고가 결정되고, 신입사원과 최근 승진자들이 먼저 대상이 되며, 재향군인들은 보호받는 시스템이었습니다. "민간 기업의 구조조정과는 정반대의 시스템"이라고 라빈지아는 평가합니다.
5일째(Day 5), CTO 사무실 회의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들을 확인했습니다. 재향군인 혜택 신청 처리를 133일에서 일주일 미만으로 줄이는 프로젝트와 40년 전 VA 직원들이 만든 세계 최초의 전자 건강 기록 시스템 VistA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CTO 찰스 워딩턴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용 맥북 사용을 제안했습니다.
8일째(Day 8)에는 DOGE의 운영 방식에 대한 이해가 달라졌습니다. 혁신적인 조직이라기보다는 "기관들에 배치된 맥킨지 자원봉사자들" 같은 성격에 가깝다는 느낌이라고 기록합니다.
13일째(Day 13), 유일했던 전체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구조화된 회의가 아니라 일론 머스크와의 Q&A 형식이었는데, 라빈지아가 코드 오픈소스화를 제안하자 머스크는 "최대 투명성"이라는 DOGE 목표와 일치한다며 승인했습니다. "모든 엔지니어가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 같았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21일째(4월 1일), 뉴욕으로 돌아가 맨해튼 VA 의료센터 지하실에서 원격근무를 시작했고, 34일째까지 VAGPT 현대화와 AI 챗봇 프로젝트에 집중했습니다.
55일째(5월 9일), DOGE에서의 활동이 종료되었습니다. Fast Company와의 인터뷰에서 DOGE 경험을 공개한 직후, 경고 없이 시스템 접근권한이 차단되었습니다. 투명성을 표방하던 DOGE에서의 근무는 그렇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끝나게 되었습니다.
WIRED의 보도에 따르면, DOGE의 실질적 운영은 세 명의 핵심 인물이 담당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머스크가 리더였지만, 실제 일상 운영을 책임진 것은 스티브 데이비스였습니다. 데이비스는 머스크의 보링 컴퍼니 사장이자 오랜 측근으로, 2022년 트위터 인수 당시에도 회사 사무실에서 숙식하며 대량 해고를 도왔던 인물입니다. DOGE에서도 그는 "일론이 있을 때는 비서실장이나 보디가드 같은 역할"을 했다고 전 DOGE 직원은 증언했습니다.
데이비스는 모든 DOGE 팀원들과 Signal을 통해 직접 소통하며 우선순위를 지시했습니다. 각 기관의 DOGE 팀 리더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주기적으로 진행상황을 확인했지만 거의 답장은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머스크가 공식적으로 정부를 떠난 후에도 데이비스는 비공식적으로 Signal을 통해 계속 지시를 내리고 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부 공식 소통에 암호화 메시징 앱을 사용하는 것은 기록 보존 의무와 관련해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바리스 아키스는 벤처캐피털 회사 Human Capital의 공동창립자로 머스크의 오랜 동료로 알려져 있습니다. 터키 출신으로 미국 시민권이 없는 아키스는 정부 고용 규정상 정부 직책을 가질 수 없었지만 아키스는 예외 규정을 통해 DOGE에 합류할 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인력들을 데려오는 채용을 총괄했다고 전해집니다. 라빈지아도 아키스로부터 DOGE 합류 제안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죠. 법적 지위가 명확하지 않은 인물이 정부 인사에 관여했다는 점에서 제도적 경계가 모호했던 상황을 보여줍니다.
안토니 암스트롱은 모건스탠리에서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를 조언했던 인물로, 주로 인사관리청(OPM)에서 활동했습니다. OPM은 DOGE가 가장 먼저 작업을 시작한 기관 중 하나였습니다. 이 세 명은 3월 말 "E 미팅"이라고 불리는 머스크와의 회의에서 실질적인 의사결정권자들로 보였다고 증언이 나왔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모두가 머스크의 비즈니스 네트워크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정부 효율성을 추구한다면서도, 실제로는 기존 인맥을 통한 인사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은 DOGE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제기했습니다. 그는 DOGE가 주장한 550억 달러 절약을 ‘테라노스 사태’와 유사한 회계 조작에 비유합니다. 뉴욕타임즈, 블룸버그, 월스트리트저널이 DOGE의 성과 목록을 검토한 결과, 이중·삼중 계산, 800만 달러를 80억 달러로 잘못 기재하는 등의 오류가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크루그먼은 "만약 상장기업이 이런 식으로 수익을 발표했다면, 회사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경영진이 숨기려 한다고 의심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크루그먼에 따르면, 머스크는 실제로는 정부 효율성보다는 자신의 기업들을 규제하는 연방정부 부서들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국가부채에 대한 진정한 관심은 있었지만, 사회보장청에서 1조 달러의 사기를 막을 수 있다는 비현실적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측정 가능한 지표에 대한 집착이 테슬라와 SpaceX에서는 성공 요인이었지만, DOGE에서는 다른 결과를 낳았다.
트위터 피드백에 과도하게 의존해 USAID 관련 결정을 내린 것도 이런 맥락으로 해석됩니다.
정책 전문가들의 분석도 DOGE의 구조적 한계를 지적합니다. DOGE는 "최소 저항의 길"을 택하였기 때문에 메디케어 어드밴티지와 같은 건강보험 이슈 대신 사무실 식물 관리 같은 간단하고 별 볼일 없는 이슈들만 다뤘다는 것입니다. 머스크의 "이번 주 성과" 위주 접근법이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절약에만 집중하게 만들었다는 분석입니다. 실제로 IRS, 국립기상청, FDA 등에서 인력 감축 후 업무 공백으로 인해 재고용이 이뤄지는 사례들이 나타났습니다.
또 다른 지적은 DOGE가 오히려 관료주의를 늘렸다는 점입니다. 사기 방지를 명목으로 정부 신용카드에 1달러 지출 한도를 두어 수많은 소액 업무가 지연되었습니다. 상무부에서는 10만 달러 이상 지출에 장관의 개인 승인을 요구해 서류 작업이 폭증했습니다. 하위 직급 통제 강화가 상위 직급의 정치적 결정 능력을 제약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닉슨 행정부도 비슷한 딜레마를 겪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합니다.
DOGE가 남긴 성과는 따로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실리콘밸리와 워싱턴 사이의 거리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점입니다. 조직적 성과와는 별개로, DOGE는 기술 지상주의자(Technocrat)들의 정치 진출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보여줬습니다. Levels의 창업자인 샘 코르코스가 재무부의 CIO가 되고, 뉴럴링크와 X의 엔지니어였던 아람 모가다시가 사회보장청 CIO로 임명되는 등 머스크나 팰런티어와 연관된 인물들이 주요 기관의 최고정보책임자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현재 적어도 6명의 기관 CIO가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 주목할 점은 기존에 정치와 거리를 두던 실리콘밸리 인사들의 변화입니다. 마크 안데르센처럼 정치적인 지향성이 불분명했던 인물도 점점 정치적 발언과 견해를 적극적으로 표출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개인적 변화가 아니라, 기술 산업 전반의 정치적 각성을 반영하는 현상입니다. 규제 이슈, 반독점 정책, AI 거버넌스 등이 비즈니스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면서, 기술 리더들이 정치적 중립을 포기하고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DOGE 2.0이라고 불리는 현재 모습도 흥미롭습니다. 머스크가 공식적으로 떠난 후에도 DOGE 출신 인력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어 정부 내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DOGE"라는 이름 대신 각 기관의 "디지털 서비스"로 재브랜딩하며 조용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DOGE가 단순히 머스크와 트럼프의 ‘일탈’에 머무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예측을 가능하게 하는 시그널입니다.
앞으로의 전망은 어떨까요? DOGE는 워싱턴과 실리콘밸리의 결합이 단순한 효율성 개선을 넘어서는 복잡한 아젠다라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기술적 해결책만으로는 정치적·행정적 제약을 극복할 수 없고, 정치적 의지만으로는 기술적 한계를 돌파할 수 없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잡음이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상호 간 효용성과 효능감을 체감할지도 모릅니다. 아직까지는 DOGE 실험이 현재진행형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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