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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선 Apr 16. 2022

기억이 돌아오자 말씀하셨다. "에미라?"

호접지몽胡蝶之夢

건강하셨다.

노인의 몸으로

70대의 혼자의 몸으로 사과 농사를 지어낼 정도의 체력. 강인함.


나의 시아버지는 강한 분이셨다.

남편의 엄하시다는 말과 무섭다는 말과 다르게

아버님은 나를 보면 너무나도 인자하셨다.


자신을 향한 무한 사랑.

허허허 웃으시는 그 호탕함.

그렇게 아버님은 든든한 나무처럼 계셔주셨다.

출처: 픽사베이

어느 날부터 아버님께 드리던 안부전화는 짧아지기 시작했다.

들리시지 않는 듯했으나..

그래서 전화를 빨리 끊으시려나보다 했는데.

아니었다.


나를 기억하지 못하시는 거였다.

통화가 낯선 것이었다.


늘..

버텨내자던, 에미가 힘들어서 걱정이라는 말씀으로

한참을 서로를 위로하고는 했었는데...


그렇게 아버님은 안부 전화를 걸 때마다 30초가 안되어 끊으셨다.


이내, 아버님이 치매 시라는 말씀을 들었다. 아버님은 요양원에 지내시게 되셨고 코로나와 맞물려 면회도 금지되고 유리막을 둔 채 면회를 하고, 그렇게 아버님을 뵐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걱정되었다.

그리고 면회마다 반응이 없으신 아버님.


나를 봐도 전혀 관심 없으신 아버님.


날 정말 예뻐해 주셨는데.

"며느리가 아니야. 내 막내딸이야. 우리 선이야!" 하시며 웃으시던 아버님은

나를 완전히 잊으셨다.


치매를 앓게 되면 원가족만 남는다 했다.

그렇기에 서운하지 않았다. 아버님의 기억이 없어져도 내가 기억하면 되니까.


내가 추억하면 되니까.

언젠가 아버님을 위한 책을 만들어내리라.

잊혀가는 것에 대한 마음을 담아 그림책으로 보답드리리라 뵐 때마다 다짐했다.


안동의 기억.

준솔이와의 사과나무 그네의 추억.

사과를 따서 함께하던 그 오랜 시간들을 내가 기억하리라.. 아버님은 평생을 사과와 함께 하셨음을 남겨드리리라.

출처: 픽사베이

아버님이 얼마 전 코로나에 걸리셨고

87세의 연세인데 이겨내셨다. 불행 중 다행으로 우리는 면회가 가능해졌다.

아버님을 유리막이 없이, 면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버님을 눈앞에서 안을 수 있게 되었다.


아버님이 나를 보고 말하셨다.

"에미라?"

(아버님은 늘 나를 선이라고 불렀지만) "네! 아버님. 저 에미예요!! (기억해주셔서 감사해요 ㅠ.ㅠ)


잠깐이라도 돌아온 그 기억에 눈물이 고인다.

다시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다니

다시 추억을 이야기 나눌 수 있게 되다니

오늘은 정말 뜻깊은 날인 것 같다.


환생.

다시 기억을 되찾고

다시 인연이 닿는 날.

오늘은 나에게 그런 날이었다.


나는 에미였다.

출처: 픽사베이

                                                                                  호접지몽胡蝶之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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