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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매기 Jul 29. 2024

하필 나 같은 게 언니라서 진짜 미안해

자정이 다되어 가는 밤, 불 꺼진 방 안에서 나는 울다가 지쳐 잠이든 동생들 머리맡에 앉아 있다.

그날은 빨리 집에 들어오라는 내 말을 거역한 둘째 동생을 유독 심하게 때렸다. 나는 동생이 집에 돌아올 때까지 파리채로 연신 바닥을 두드려 대고 있었고 내 손이 저릿한 통증을 느끼자마자 금세 그 짓을 그만두기로 했다. 대신 동생이 집에 오면 내가 느낀 통증보다 열 배는 더 한 체벌을 하기로 다짐을 했다.


자고 있는 정숙이를 바라보면서 나 자신이 사이코패스 정신병자 . 도저히 모르겠다. 내가 왜 그렇게 화가 났었는.동생들을 잘 보라고 했지 두들겨 패라고 시킨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내가 그냥 미쳐버린 건가 싶다. 동생들이 안쓰럽고 가여워서 내가 죽어야구나 생각했다.


손찌검을 시작한 뒤로 밤마다 알 수 없는 공포감에 잠이 오지 않았다. 엄마랑 같이 다녔던 교회에서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간다고 했는데 누군가 내 죄를 다 알 것 같아서 무서.





정숙이는 한글을 늦게 뗐다는 이유로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도움반에 들어갔고, 입학 첫날부터 덜떨어진 아이로 불리며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나는 동생에게는 무서운 언니였지만, 못된 무리들을 혼내줄 만큼 센 언니는 아니었다. 정숙이가 불쌍했지만, 사실 내 코가 석자였다. 동생이 찐따라고 나까지 놀림을 당할까 봐 학교에서는 정숙이를 모르는 척했다.


하지만 내심 미안한 마음에 동생을 건드리는 만만한 상대가 나타났을 땐 몇 번 큰소리 쳐준 적도 있었다. 그렇게 변변치는 않았어도 언니노릇은 하고 싶었던 내가 엄마의 가출 이후 동생을 가장 괴롭히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막 사춘기에 접어든 나는 싸구려 신발과 가방이 맘에 들지 않았다. 내 얼굴을 가득 채운 촌스러운 주근깨도 싫었다. 나는 왜 이렇게 가난하고 못생겼을까 항상 불만이었다.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줄곧 외계어를 남발하는 것 같은 수업은 안 들은 지 오래됐다. 선생들은 학원에 다니는 애들만 인간 취급하는 외계인들 뿐이다. 별 볼 일 없는 학교 생활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나를 기다리는 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설거지 거리와 저녁 밥상거리 걱정밖에 없었다.


그때 마침 동생들이 밖에서 실컷 놀다가 집으로 들어온다. 어찌나 신나게 뛰어놀았는지 땀을 많이도 흘렸다. 급하게 주전자에 보리차를 따라서 한잔 들이켜고는 물컵을 싱크대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놓는다. 설거지거리가 하나 또 늘었다. 나는 마치 육아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주부처럼 갑자기 짜증이 확 치솟는다. 동생들의 머리를 한 대씩 후려치고 나서야 화가 조금 가라앉는다. 동생들을 향한 짜증과 신경질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지만, 아무도 나에게 참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힘들면 집안일을 그만 두면 된다고, 혼자서 온갖 짜증을 다 내면서 할바에는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고 말이다.



불쌍한 나의 동생들... 나는 부모를 잘못 만났다고 치지만, 너희는 부모 형제 모두를 잘못 만났으니 얼마나 원통할까... 언니 누나가 정말 미안하다. 평생 갚으면서 살아갈게 아우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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