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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매기 Aug 07. 2024

엄마들의 놀이터 기싸움

아이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 놀이터는 필수코스이자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애증의 장소다. 특히 나처럼 친구엄마가 별로 없거나 동네 외톨이라면 더욱더 지겹고 따분한 곳이 바로 놀이터다.


놀이터는 정글 그 자체다. 어딜 가나 애기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있기 마련이고 그들과 마주친 첫날 밝은 미소와 넉살로 먼저 인사를 건네며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면 그날 이후 다시는 그 무리와 섞일 수 없는 놀이터 뜨내기가 돼버린다.


이제 여기서 당신은 선택을 해야 한다. 놀이터 영역을 이미 점령한 암사자 무리에 먹잇감이 될 것이냐 주변을 맴도는 하이나가 될 것이냐 아니면 무리에 끼거나 다른 무리를 만들 것이냐!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이미 연대감이 생긴 무리를 비집고 들어가는 건 어렵다. 그렇다고 새그룹을 만들 수도 없다. 그럴만한 능력이 있다면 무리에 끼는 게 오히려 더 쉬울 것이다. 그렇다고 먹잇감이 될 수는 없으니 하이나가 될 수밖에..


하지만 나는 비굴해 보이는 하이에나보다는 비장해 보이는 호랑이가 되기로 했다. 암사자들이 무시 못할만한 전투력을 장착하고 어슬렁 거리는 범이 되어 내영역을 만들었 어쩐지 재수 없지만 건들면 안 되는 그런 류의 별종 엄마가 되었다.




4세까지는 인적이 드문 놀이터를 찾아다니거나 은근슬쩍 다른 경로로 산책을 하는 식으로 아이의 호기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수월하지만 유치원에 다닐 나이가 되면 아이는 저절로 또래 친구들이 북적대는 장소로 이끌리게 되어있다.


아이가 놀고 싶을 때 언제든 나가면 금세 또래들을 만나고 누구든 친구가 되어 자연스레 함께 뛰어놀 수 있는 꿈의 놀이터는 사라진 지 오래다. 요즘은 어딜 가도 아이들을 찾아보기 힘들고 아는 엄마들끼리 자기네 자녀들만 무리를 지어 감시하에 놀게 하는 그런 시대다. 엄마가 직접 놀이터 친구를 만들어 줘야지만 같이 놀 친구가 생기는 딱 그런 세상이란 말이다.


요새 엄마들은 금이야 옥이야 귀한 내 새끼를 혹시라도 상처 입힐지 모르는 낯선 아이와는 절대 놀게끔 내버려 두지 않는다. 한마디로 호구조사를 다 마친 내 아이와 수준이 비슷해 보이는 친구만 허용한다는 말이다. 참 꼴값이다 싶지만 이게 바로 현실이다. 만약 당신이 아무런 노력도 없이 놀이터에서 내 아이와 놀아주는 고마운 애들을 만났다면 부모가 방치하거나 친구 없는 왕따일 것이다.


그나마 자녀가 둘 이상 되는 가정이라면 걱정이 좀 덜만, 나처럼 아이가 외동인 경우 친구도 없이 혼자 노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고 짠한 마음이 든다. 그런 감정은 금세 미안한 마음으로 바뀌어 '내가 부족해서 우리 애가 외롭구나'라는 죄책감과 우울감까지 더해진다. 저출산이라서 애들을 안 낳는다는데 우리 애만 빼고 다 형제자매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면 당신 맘이 곧 내 맘이다.



아파트 단지 내 있는 놀이터에는 그곳을 점령한 무리들이 무조건 존재한다. 임대아파트나 오래된 구축아파트일수록 가족 구성원이 많은 집이 놀이터를 차지하게 다. 일반 분양 아파트에선 드물지만, 시댁과 친정 식구 전부가 같은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경우도 본 적 있다. 어쨌든 온 식구가 모여 사는 집에 엄마 또는 할머니가 놀이터 대장이 된다.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아파트 내 놀이터는 사실 엄마들의 영향력약하다. 그냥 머릿수가 많으면 장땡이니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아무나 친해지는 것이 유리하다.


반면에 젊은 부부들이 많이 사는 신도시나 근처 지역에 있는 신축 아파트 내 놀이터는 분위기가 완전 다르다. 처음 보는 낯선 애기 엄마의 등장 놀이터 전체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고 아무도 반기지 않는다. 나를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아이와 놀이를 한다는 것은 참 괴로운 일이다.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그까짓 놀이터에서 애랑 놀아주는 게 뭐 그리 힘드냐고 할 테지만 나를 경계하는 시선과 소외감을 이겨내고 아무렇지 않은 척 놀이터를 활보하는 것은 엄청난 담력이 필요하다.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고 했던가! 하지만 아줌마가 되었다고 해서 모두가 철판이 두꺼워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출산과 육아로 인해서 장기간 사회생활을 못하게 되면서 자신감이 떨어지고 소심해지는 경우가 더 많다.


모르는 엄마들을 만날 때마다 방실방실 웃으면서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감정 노동인지 모르면 말을 마라. 모두가 반갑게 나의 인사를 받아주고, 가벼운 담소라도 나누는 날에는 하루종일 기분이 좋지만 누구 하나 나를 경계의 눈빛으로 쳐다보거나 무시하는 사람을 만나면 온종일 나의 컨디션을 나쁘게 만들기도 한다.



이제부터 당신의 하루를 다른 사람이 좌지우지하도록 내버려 두지 말자. 친한 엄마들이 많아지면 의 동네생활이 조금 편해지고 기분이 나아지는 것이지 내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건 거의 없다. 엄마들과 수다를 떨면서 육아스트레스가 조금 줄어들 수는 있지만, 내 아이를 위해서 억지로 피곤한 관계를 유지할 만큼 절대적 이득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동네친구가 많으면 자녀의 사회성 발달에 좋을 것이라는 착각부터가 유아 발달에 대해 무지한 것이다.


7세 이하 유아들이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하루종일 관찰해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여럿이 모두 함께 놀이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리 안에서 내가 좋아하는 친구 한 두 명 하고만 꾸준히 대화하고 놀이를 할 뿐이다. 어른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룹 안에서도 유독 마음이 통하는 한 두 명 하고만 따로 뭉치게 되어있듯이 아이들도 똑같다. 굳이 많은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바라는 건 그냥 엄마가 보기에 흐뭇해하기 위함이지 절대 아이를 위한 행동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면 훨씬 마음이 가벼워질 것이다.


자녀가 어릴 때부터 친구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알려주고 심심함도 느끼고 소외감도 느끼고 좌절감도 느끼게 그냥 놔둬도 괜찮다. 엄마의 생각보다 아이는 훨씬 더 강하다. 어쩌면 엄마보다 더 강한 존재일 수 있다. 우리 딸은 어릴 때부터 외톨이 엄마덕에 참 많은 장소를 돌아다녔다. 순전히 내가 좋으려고 지루한 놀이터 대신 산림욕장, 숲놀이터, 둘레길, 체육공원 같은 자연으로 바깥놀이를 많이 나갔니 자연스레 엄청난 신체활동못하는 운동이 없게 됐다.


5살에 인라인 스케이트도 타고, 보조바퀴 뗀 14인치 두발 자전거까지 탈 수 있다면 말 다한 거 아닌가. 그리고 어린이회관, 도서관, 실내놀이터, 키즈카페 같은 실내 놀이 시설도 부지런히 다녔다. 가족들과 캠핑, 국내, 해외여행도 틈나는 대로 가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보고 만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내가 직접 나서서 친구를 만들어 주는 대신 새로운 환경에 스스로 적응할 수 있도록 노출시켜 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정말 멋지게 성장해 주었다.


현재 우리 딸은 어딜 가나 혼자서 구를 척척 잘도 사귄다. 고작 5살밖에 안된 어린애가 어떤 식으로 친구를 사귀는지 살펴보면 이렇다. 어른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안녕? 내 이름은 00야. 나는 5살이야 우리 친구 하자! 가 아니다. 또래 친구를 감지한다. 그리고 관심이 생기면 그 주변을 계속 어슬렁 거리면서 맴돈다. 반응이 괜찮으면 본격적으로 졸졸 쫓아다닌다. 친구가 뛰면 자기도 뛰고 멈추면 멈추고 그렇게 계속 쫓아다니다 어느새 같이 논다. 끝!  


어떠한가? 아이들의 놀이터 세상은 엄마들의 쓸데없는 기싸움의 현장과는 전혀 다르다. 별 볼 일 없는 여자들의 대장놀에 휘둘리지 말고 당신의 자녀가 마음껏 놀이터를 활보할 수 있는 당돌함을 먼저 가르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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