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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매기 Aug 13. 2024

그네는 왜 항상 금쪽이 차지인가?

날씨 좋은 여름날, 딸과 함께 자주 가던 체육공원으로 나들이를 갔다. 공원 바로 옆에는 고등학교와 아파트 단지들이 즐비한 곳이라 공원 안 놀이터는 늘 한산했다.


그날은 웬일로 젊어 보이는 할머니가 6살, 7살 정도 돼 보이는 손녀 둘을 데리고 놀고 있었다. 텅 빈 놀이터에 우리 딸 혼자 덩그러니 노는 것보다는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내심 나쁘지 않았다.


할머니는 그네 바로 앞 벤치에 앉아 계셨고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벤치에 네를 바라보고 앉았다. 우리 딸은 언니들이 타고 있는 그네가 타고 싶은 모양이었다.


"언니들이 타고 있잖아. 다른 거 하고 놀다가 그네에 사람 없을 때 가서 타면 되지."

라고 설명해 줬다.


내 말을 듣은 딸내미는 지금 타고 싶다고 잠깐 떼를 쓰는가 싶더니 이내 포기하고 그네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신나게 그네를 타고 있는 언니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기둥을 잡고 그렇게 10분을 넘게 기다렸다.


손녀 둘이 놀이터 그네 2개를 전부 차지하고 있는 내내 할머니는 우쭈쭈 바라보기만 했다. 모든 사람이 다 나와 생각이 같을 수는 없으니 양보와 배려를 강요할 수도 없고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그 할머니에 그 자식들이겠거니 했다.'


"언니 우리 비키지 말고 그네 계속 리끼리만 타자!"

"ㅋㅋ 그래. 내가 밀어줄까?"

"아니 그럼 쟤가 언니꺼 타면 어떡해."

"쟤는 왜 안 가고 계속 여기 있어?"

"우리 안 비킬 건데~ 키득키득!"



멀리서도 들리는 얄미운 대화에 슬슬 혈압이 오르지만 어쩌겠는가.

'동생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양보 좀 해줘' 소리가 바로 옆에서 모든 걸 지켜보고 있는 늙은이 입에서도 안 나오는데 어린이가 뭘 알겠.


오랜 기다림에 약이 바짝 오른 우리 딸은 두 눈 가득 눈물을 머금고 결국 뒤돌아서 내쪽을 향해 걸어왔다. 우리 딸이 떠나는 모습을 힐끗 보던 손녀 한 명이 그네가 지겨웠는지 슬쩍 어나 옆에 있는 흔들 말을 타기 시작했다.


나는 딸에게 손짓을 하며 그네가 비었다는 사인을 보냈고 딸은 발길을 돌려 그네를 향해 잽싸게 뛰어갔다.


그런데 흔들 말을 타던 계집애가 달려오는 우리 딸을 보고는 간발에 차로 다시 그네를 낚아 채 버렸다. 그네를 눈앞에서 뺏긴 것도 억울하고 밀쳐진 것도 서러워서 울음이 터진 딸을 보며 나는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하하하! 그걸 또 뺏겼어?

으이그! 괜찮아 울지 마."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할머니도 슬쩍 민망한지 "그러면 다쳐 조심해야지" 하면서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나는 딸을 달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내 속도 식힐 겸 근처 수돗가로 갔다. 눈물 콧물 범벅인 딸의 얼굴을 시원한 물로 닦아주며 말했다.


"우리 딴 데 갈까?"

"아니! 나 그네 꼭 타고 싶어."

"알겠어. 따라와!"


나는 딸의 손을 붙잡고 심기일전으로 다시 놀이터로 향했다. 역시나 우리가 떠나고 흥미가 떨어졌는지 그네는 텅 비어 있었고 둘 다 흔들 말을 타고 있었다.


진작 좀 비켜주지 고얀 것들!

이 아줌마가 나서 주마!


나는 그네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할머니가 앉아있는 벤치 앞에 들고 있던 짐가방을 털썩 내려놓 외쳤다.


"이제 우리도 그네 좀 타보자! 딸아 이리 와!"


딸과 나는 그네 한 개씩 모두 차지하고 앉아서 요란하게 그네를 타기 시작했다.


"딸아, 우리도 이제 그네 실컷 타자! 절대 비켜주지 말고!"

"응! 엄마, 나 너무 오래 기다리느라 힘들었어. 그네 재밌다. 그치그치?"

"그러네. 하루종일 타도 되겠다."


나는 최대한 얄미운 표정과 말투로 할머니와 애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아니 쩌렁쩌렁 울리도록 외치며 그네가 끊어질 듯 격하게 곡예운전을 했다. 평소에는 살짝만 왔다 갔다 해도 어지럽더니 그날은 다시 학생이 된 것 마냥 짜릿하고 재밌었다.



그렇게 나는 할머니를 마주 보며 철딱서니 없이 한참 동안 그네를 탔다. 우리 딸이 이제 그만 타고 제발 가자는 소리가 나올 때까지 오~~ 랫동안 그네를 타고 또 탔다. 그네를 내릴 때는 할매 코앞까지 점프해서 착지지 하는 완벽한 마무리였다.


정말로 속이 후련하고 통쾌했다.

그날 퇴근한 남편에게 나의 영웅담을 들려주니

"니가 애냐?"라고 비웃었지만

"그럼 내가 어른이냐?"라는 박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날 그 놀이터에는 어른이 한 명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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