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 이야기
승무원으로 일을 시작한지 어느덧 12년이 흘렀다.
2011년 나는 예술 전공의 대학 졸업반이었다.
예술과 취업은 어울릴래야 어울릴만한 조합이 아니었으니, 졸업하고 나서 취업하는 선배나 동기들은 많지 않았다.
막연하게만 느껴진 졸업이라는 두 글자 앞에 나는 고민할 거리도 없이 괴로워하고 있었다.
여러 갈래의 길도 보이지 않고, 그저 두터운 벽에 가로막힌 듯 했으니까.
그러다 우연히 학교선배의 항공사 입사소식을 접했다.
A380이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많은 인력이 필요해진 대한항공은 대대적인 공채를 진행 중이었고 나는 부랴부랴 자소서를 쓰기 시작했다.
첫 공채에서 나는 낙방하고 말았다.
사실 큰 기대 없이 본 시험이기도 했고, 붙을거라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낙방에 대해서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승무원 공채는 어떤 형식으로 진행되는 것인지 궁금함을 해소하기 위함이 가장 컸기도 했다.
하얀색 블라우스에 검정색 치마, 정갈하게 쪽진 머리와 분홍색 섀도우를 곁들인 모습이 승무원 면접의 디폴트 값이었다.
그 중에 유일하게 하늘색 블라우스와 남색 치마를 입고 나타난 나는, 특출난 것 없으면 결코 붙을리 없는 모습을 하고 면접장에 들어섰다.
그러니 면접에 떨어지는 것이 당연했을 지도 모른다.
대단히 잘 준비된 면접 답변도 없었고, 유난히 보수적인 회사문화에 적응할 생각이 없어보이는 복장이었으니 말이다.
3개월 뒤, 다시 공채가 진행되었다.
A380 덕분이었다. 한 비행기 안에 최대 25명의 승무원이 탑승 할 수 있었고, 최소 18명의 승무원은 탔어야 했으니
거대한 비행기와 탑승승객들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승무원들이 추가로 필요했다.
그렇게 두 번째 공채에서 나는 합격했다.
예대를 입학하게 되면서 몇 번의 입시 실기시험을 봤다.
적어도 1년은 시험을 준비했고, 실기시험은 온 몸으로 터득하고 공부하는 일이었기에
면접이라는 것은 내게 그저, 늘 하던,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조금 더 보수적으로, 그리고 튀지않는 무채색과 같은 캐릭터를 가지고 면접에 임했으니
두 번째 시험에서 합격하는 것은 (조금 거만하지만) 당연했다.
그 당시의 나는 훨씬 더 패기넘치고 자신감 넘쳤으니 말이다.
그렇게 패기넘치던 내가 스터디나 학원의 도움없이 항공사 공채시험에 떡! 하니 합격했으니
자신감이 물씬 올랐다.
재수를 했어도 이상하지 않은 내가 꽤 괜찮은 대학에 합격했고, 대기업에도 합격했으니 친구들은 나를 참 운이 좋은 아이라고 불렀다.
큰 고통과 고난없이 너처럼 속편하게 살아가는 것도 재주라고 말이다.
그렇게 2011년 기쁨의 합격소식을 받고나서
1주일만에 나는 대한항공에 입사했다.
휴학한번 안하고 졸업했지만 졸업의 기쁨을 느낄 새도 없이, 그리고 항공사 취업의 기쁨을 즐길 새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