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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생 Apr 27. 2022

직장인에게 점심 메뉴 선정이란?

지금은 16년 차 직장인이라 모든 면에서 노하우도 생기고 요령도 생기고 그에 걸맞은 보이는 능력도 길러졌을 거라 내심 생각한다. 그런데도 매일매일 고민하게 되는 일이 하나 있다. 바로 점심 메뉴 선정이다.


이제는 신입이 아니다 보니 밥장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단톡방에 오늘 약속 있으신 분이라는 글과 함께 뭐 드실 거예요?라는 글이 올라오면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날씨가 더워지니깐 시원한 냉면? 아니면 땀을 쭉 뺄 수 있게 매운 마라탕? 그것도 아니면 속을 든든하게 해주는 국밥? 알밥? 회덮밥? 분식? 중식? 칼국수? 초밥?. 

세상엔 점심으로 먹을 수 있는 메뉴가 너무나도 많이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은 꼭 이걸 먹어 야지?"라거나, "이 집 정말 맛있어요!"라고 말할 만한 메뉴는 순간 떠오르지 않는다. 나 혼자 먹거나, 가족들과 먹을 때는 먹고 싶은 게 많은데 회사에서는 "뭐 먹을까요?"라고 누군가 물으면 대답할 만한 음식 메뉴가 이상하게도 떠오르지 않는다.


떠오르는 게 있더라도 쉽게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기도 했다. 쉽게 말할 수 없는 이유는 당연히 있다. 내가 추천한 음식이 맛이 없을까 봐, 사람이 너무 많아서 기다릴까 봐, 주차가 까다로울 것 같아서, 불친절하게 느껴질까 봐 등 결국 나를 제외한 누군가가 혹시 싫어하거나 불편할까 봐 추천하지 못하는 것이다.


처음 대학 졸업과 동시에 직장 생활을 시작할 땐, 점심시간도 업무의 연장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그 당시에는 사무실의 막내가 밥장을 담당했었다.(2년이 넘는 코로나 상황으로 4명 이상 모여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상황이 없었던 상황으로 인해 부서나 팀끼리 같이 먹는 경우가 많이 없어졌다. 개인적으로 약속을 잡아먹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학생 신분일 땐 학교 내 학생식당을 가거나 학교 정문이나 후문에 형성된 대학로에 있는 수많은 식당 중 한 군데를 그냥 들어가도 맛있게 먹고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졸업 후 한 달 사이에 직장인 신분이 되니 대부분 차를 타고 학교와는 조금 떨어진 곳으로 식사를 하러 가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살아왔던 지역도 아니고 대학생 때도 차가 없었기에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 아닌 식당엔 가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처음 부서 발령 후 밥장을 하면서는 밥값 계산만 했을 뿐 식당을 정하는 경우는 없었는데, 한두 달 후부터는 쌓인 경험치로 점심 메뉴까지 정해야 했다. 별거 아니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같이 식사를 하게 되는 분들 중 가장 직급이 높은 분에게 우선 드시고 싶으신 게 있으시냐고 물어보면 항상 "아무거나 괜찮아"라고 말하고, 다른 분들도 "아무거나 괜찮아, 000 선생님이 먹고 싶은 걸로 골라"라고 말한다.


나를 배려해 주는 말 같지만 실상은 전혀 배려해 주지 않는 말이다. 진짜 배려는 메뉴를 결정해 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밥 장인 자가 듣기에는 '니 맘대로 고르되 내 입맛과 취향과 그날의 기분 더 나아가 날씨까지 고려해서 마음에 드는 메뉴를 찾아줘'라는 뜻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정말 아무거나 먹게 되더라도 "이 집 맛있네. 나도 오늘은 이거 먹고 싶더라고. 메뉴 잘 정했네"라고 매일같이 말해주는 분들이 대부분이지만 가끔은 "이 집 며칠 전에도 왔었는데, 이 집 사장이 바뀐 뒤로 맛이 변했어, 오늘 같은 날은 시원한 거 먹어야 되는데, 오늘따라 손님이 많아서 시끄럽네 요즘은 조용한 게 좋더라고"라며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혼잣말처럼 메뉴를 정한 사람이 들을 수 있을만한 크기의 목소리로 먹는 내내 불평을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은 밥장을 하지 않기에 메뉴 선정에서 조금은 자유롭다. 하지만 밥장의 고통을 알고 있기에 도움을 주고 싶긴 하지만 나도 '전 어떤 거든 괜찮아요. 아무거나 먹어도 돼요"라는 전혀 도움되지 않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가끔 이것저것 소심하게 추천하기도 하지만 너무 어렵다. 그래서 사무실 밥팀에 가입이 되어 있긴 하지만 따로 약속을 잡아먹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점심메뉴를 선정해 주는 요정이 매일매일 먹을 메뉴와 식당을 정해주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돈 주고 사 먹는 메뉴 고르는 것도 어려운데 직접 메뉴를 정해서 장보고 요리까지 해서 내어주는 엄마(가끔은 아빠도)들은 얼마나 힘들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잘 먹고 잘살려고 직장에 다니는데 직장에서는 잘 먹는 것도 참 힘들다. 이것도 일이려니 해야 되는 건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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