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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생 Jan 09. 2022

첫날의 기록

휴직 중 아빠와 방학 중 딸 - 1일째

아이들이 방학을 했다. 유치원생인 아들은 학교에서 방학과 동시에 다음날부터 방과 후 과정을 시행한다. 오전 8시 30분까지 유치원에 데려다주면 오후 4시쯤 선생님이 집 앞까지 데려다 주기에 방학이어도 별 걱정이 없다.


하지만 5학년 아니 이제는 6학년을 바라보고 있는 딸은 절대 방과 후를 하지 않는 다고 했다. 그래서 방학과 동시에 나와 함께 집에 24시간 붙어있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딸과 함께 이 방학을 어떻게 잘 보내야 할지 아직은 모르겠다.


그래서 매일 계획하고 시행하고, 장난치고 웃고 그러다가 화내고 짜증 내는 아빠와 딸의 이야기를 2달 동안 담아보려고 한다. 이 기록이 언젠간 크게 웃고 즐길 수 있는 기억이 될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방학 첫날의 기록이다.


"애기 방학 땐 운동 좀 시켜"라는 아내의 명령에 따라 우린 운동을 하기로 했다


방학을 시작한 첫 날인 1월 7일 우리 부녀는 큰 맘을 먹고 방학 동안 운동을 하기로 결정을 했다. 그것도 같은 시간에 같은 운동을 하기로 말이다. 그렇게 결정한 운동은 '클라이밍'이었다. 사전에 체육관에 대해서는 아내가 다 알아봐 놓았다. 오전 10시에 클라이밍장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좁은 공간이었지만 처음 보는 장면이기에 우리 부녀는 '우와'라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한번 쓱 훑어 보았다.

그리고 관장님과 이야기를 나눈 후 한 달 29만원(2명, 강사비, 신발대여료 포함)이라는 거금을 주고 등록을 했다. 체육관에는 우리 딸과 비슷해 보이는 남학생 2명이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초보자인 내가 봐도 정말 잘하는 것 같았다. 팔로만 높은 곳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 멋있었다.

"딸, 너도 저렇게 멋있게 할 수 있어?"

"아빠는?"

"아빤 무서워서 못 할 것 같은데"

"그럼 나도 못 하지"라는 쓸모없는 대화를 나누며 우린 대표님이 주신 신발로 갈아신었다. 클라이밍 신발은 처음 신어봤는데 발가락을 굽혀서 신어야 하기에 굉장히 아팠다. 그리고 줄넘기로 몸에 땀을 좀 낸 이후 클라이밍 종목 중 '리드'라는 종목과 '볼더링'이라는 종목을 배웠다. 처음에는 안전에 대한 설명과 함께 기본적인 자세를 배웠다. 우리 부녀는 운동을 꽤나 좋아하지 않기에 자세를 배우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었다.


 그렇게 한 30분 정도 위를 오르락내리락 몇 번 했더니 손가락, 발가락, 어깨 다 아파오기 시작했다. 당연히 우리 딸은 기초의 기초의 기초만 배우는데도 힘들다고 난리였다. 그런데 웃긴 건 딸이 성격이 너무 좋아서인지 힘들어도 웃고, 아파도 웃는다. 그래서 웃으면서 "아빠, 너무 힘들다. 못하겠어"라며 방금 29만원을 결재한 나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질 만한 말을 쉽게도 한다.


그렇게 1시간 넘게 "힘들다"라는 말을 서로에게 20번쯤 했을 때 내가 "오늘은 이쯤 하고 가자"라며 딸에게 말했다. "응" 우리 딸은 가자는 말에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체육관을 나와서 우리는 밥을 먹기로 했다. 이건 내가 방학 전에 딸에게 약속한 게 하나 있다. "너 방학하면 아빠가 직장인의 점심에 대해 제대로 알게 해 줄게"라는 약속이다. 그 약속의 첫 번째 음식으로 곰탕을 먹으러 갔다. 딸은 한우곰탕 나는 얼큰 순대국밥으로 메뉴를 주문했다. 딸은 배가 고팠는지 탕이 나오기도 전에 흰밥에 김치를 우거우걱 입에 집어넣고 있었다. 하정우 먹방은 저리 가라다.


"누가 보면 며 칠 굶은 지 알겠다"

"너무 배고파. 그리고 이 집 김치랑 콩나물 너무 맛있다."

"아직 탕 나오지도 않았다. 좀 기다렸다 먹어"

"배고파. 그냥 먹을래"

 옆자리에 공사 현장에서 일하다 오신 듯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쓴 아저씨들이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먹는 것만 보면 우리 딸이 현장에서 일하다 온 것처럼 먹는다.

"그렇게 맛있냐?"

"응, 아빠 회사 다니면 맨날 이렇게 맛있는 거만 먹고 다니고 좋겠다"라는 나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부러움을 말하며 점심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방학 기념으로 딸이 긴 머리를 짧게 자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밥을 먹고 미용실로 갔다. 한 20cm 이상의 길이를 잘라낸 것 같다. 미용실에서 자르고 고데기를 해주니 너무 예쁘게 변했다. "우리 딸 너무 예쁘다"라는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이상한 건 집에 와서 머리를 감았더니 고데기가 풀리면서 이쁜데 촌스러운 귀여운데 시골틱한 아이로 변했다. 그래서 내가 "봉순이 같다"라며 말하고 계속 봉순이라고 불러주고 있다. "봉순아~~~", "아~! 하지 말라고"


머리를 자르고는 저녁 먹을거리를 사기 위해 마트에 들렀다. 확실히 마트는 혼자 가야 한다는 걸 느꼈다. 혼자 갈 땐 필요한 것만 사고 바로 나올 수 있는데 딸과 함께 가니 평소보다 4배 정도의 시간을 마트에 더 머물렀다. "아빠, 나 이거 사면 안 돼? 아빠, 이거 맛있겠다! 아빠, 이리 와봐 이거 사자!" 결국 계획했던 것보다 4배 이상의 비용을 더 지불하고서야 마트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방학 중엔 아무래도 돈을 더 쓰게 될 것 같다.


마트를 나온 이후에는 서점에 들렀다. 방학 때 놀기만 할 순 없으니 문제집을 좀 사기로 했다. 30일 완성이라는 수학과 국어 문제지를 한 권씩 샀다. "주말 빼고 30일간 열심히 잘 풀고 여름방학 때처럼 열심히 싸워보자"라고 말했다. 본인 자녀의 공부를 봐준다는 건 아내의 운전 연습을 도와주는 것과 같다. 정말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고선 해주어선 안 되는 일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 집은 시골이다 보니 학원이 없기에 어쩔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 소리 높여 싸울 일이 또 하나 만들어졌다.


문제지까지 구입 한 이후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운동, 점심, 미용실, 마트에서 서점으로 참 열심히 돌아다녔다. 돌아다니며 딸과 엄청 많은 이야기를 했다. 진지한 고민상담은 아니었고 그냥 웃고 떠들었던 이야기이기에 기억에 남은 말들은 솔직히 없다. 그냥 재미있었다. 계속 농담하고, 놀리고, 그러면서도 걸어 다닐 땐 항상 손잡고 다니고. 


딸의 겨울 방학은 이제 막 시작이다. 나의 휴직은 곧 끝이 난다. 


"봉순아, 너의 개학일과 나의 복직일인 3월 1일까지 우리 신나게 지내보자. 너랑 함께 있는 순간들이 너무 좋고 잠깐 힘들고, 너무 행복하고 잠깐 짜증 나고, 많이 웃고 조금 소리치는 시간이 되길 서로 노력해 보자. 사랑해"라며 속으로만 말해보며 이제 첫날의 기록을 마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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