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수생 Jan 10. 2022

이 정도면 우리 같이 있을 수 있겠다

휴작 중 아빠와 방학 중 딸 - 2,3일째

금요일 딸의 방학 후 첫 주말이 되었다. 주말은 학교 다닐 때의 주말과 다르지 않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뭔가가 다르게 흘러갔다. 


토요일 아침을 먹고(당연히 내가 차린) 집에 귤이 너무 많기에 귤쨈을 만들기로 했다. 딸과 함께 하기로(딸의 생각은 자기를 시켜먹는 것으로)했다. 아이들이 귤껍질을 열심히 벗기고, 내가 큰 냄비에 귤과 설탕을 붓고 딸이 30분 넘게 열심히 저었다. 그리고 아내가 마무리로 검사를 하고 "이제 그만 끓여도 되겠다. 불 꺼라"라는 말을 함과 동시에 쨈 만드는 일이 종료가 되었다.

쨈이 너무 잘 만들어졌다. 그랬더니 서로가 결과물에 대해 본인의 지분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만들자고 했고, 귤과 설탕 양을 기가 막히게 맞춰 넣었다. 그래서 이렇게 맛있게 나왔다. 그랬기에 이번 귤쨈에 가장 중요한 일은 내가 했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딸은 어이없는 얼굴로 "내가 귤껍질 까고, 30분 넘게 저어서 만들었는데 내가 다 만든 거지 그게 뭔 소리여!"라고 두 눈을 부릅뜨며 소리를 쳤다. 


여기에 정말 단 1도 지분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아내마저 "쨈은 적당한 점도에서 마무리하는 게 가장 중요한 건데 내가 검사하고 불을 끄라고 말했기에 가장 중요한 일을 했다"라는 말을 하며 발을 담그려고 했다. 옆에 있던 막내도 뭔가 말을 해야 한다고 느꼈는지 "나도 귤껍질 깠는데?"라고 했다. "응, 넌 빠져"라고 누나가 대답해 주었다. 나도 말하고 싶었다. '너희 다 빠져'라고 말이다. 하지만 여자 둘의 강렬한 눈빛을 마주하며 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쨈을 만든 후 아내는 독서 모임 나는 딸 치과 진료가 있어 치과에 갔다. 주말이라 유치원에 가지 않은 둘째도 당연히 내 몫이다. 아내를 약속 장소에 내려다 주고 조금 멀리 떨어진 치과에 가서 진료를 하고 다시 아내를 태우로 왔다. 돌아오는 길 점심시간이 다되어가기에 밖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뭐 먹을 까? 떡볶이, 라면 빼고 말해"

"응. 나는 중국요리"

"아빠 먹기 싫은데?"

"그럼, 얼큰 칼국수"

"그것도 싫은데. 국밥 먹을까?"

"아니. 칼국수"

결국 칼국수를 먹으러 갔다. 나는 돈가스를 먹었다.

오후엔 아이들 도자기 만들기 체험이 있어서 아내가 아이들만 데리고 나갔다. 나에게 90분 정도의 자유시간이 생겼다. 집에 와서 쉬기 전에 각 방 정리하고, 청소기 돌리고, 빨래를 겐 후 이제 혼자 뭘 해야 잘 쉬었다고 소문이 날까라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 끝났어. 데리로 와""응. 바로 갈게" 젠장.

그렇게 다시 데리로 가서 오는 길에 딸이 "아빠, 방학이라 집에만 계속 있는데 먹을 게 없어. 간식 좀 사자"라고 말하기에 "그럼 예전에 엄마가 행사하고 받아온 편의점 상품권 5만 원짜리 있는데 그걸로 쇼핑하자"라고 대답했다. 편의점까지 가는 길에 딸과 아들은 각 15000원씩, 나와 아내는 10000원씩 사용하기로 했다. 결론은 5000원 정도의 추가 금액을 지불할 정도로 가득가득 골라서 사 왔다.


나도 간식이 많아진 게 좋았지만 아내가 저녁을 차려야 하는 나를 가련하게 생각해서 삼각김밥과 김밥을 여러 종류를 골라와서 그것으로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는 게 더 좋았다. 덕분에 토요일 저녁은 너무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딸의 방학 3일째인 일요일은 예전에 막내가 약속한 데로 완주군에 있는 '놀토피아'에 가기로 했다. 오전 10시에 오픈을 하기에 집에서 9시 20분쯤 출발하기로 했다. 놀러 가는 날이라 그런지 아이들이 단 한 번의 짜증도 없이 출발하기 20분 전에 씻고, 옷 입고 갈 준비를 다 마무리하고 나만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날도 이렇게 준비해줬으면 참 좋겠다"라고 말했더니 그냥 웃기만 한다.


오전이라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사람이 참 없다. 그래서 기다림 없이 하고 싶은 것들을 바로바로 할 수 있었다. 놀토피아라는 아이들이 쉽게 실내 클라이밍을 체험할 수 있게 만들어놓은 곳이다. 며칠 전부터 막내가 가고 싶다고 했는데 막상 막내는 두 칸 정도만 올라가면 무섭다고 하기 싫다고 했다. 그래서 막내는 나와한 쪽에 마련된 유아 놀이터와 풋살장에 놀았다.

풋살장에서 막내와 둘이 얼마나 뛰어다녔던지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막내도 "아~ 오늘 운동 많이 했다"라고 말하며 숨을 헐떡일 정도였다. 그렇게 2시간을 바짝 놀고 고산시장에 가서 한우국밥을 먹었다. 아이들이 국밥을 좋아해서 참 다행이다. 딸과 아들 모두 국에 밥을 말고 김치를 올려 너무도 맛있게 먹었다.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맛있는 식사를 하고 시장 구경하면서 또 아이들 손에는 이것저것 생겨나고 내 지갑은 비워져 갔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저녁을 먹은 후에 딸이 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다. 아이 캔 스피크라는 영화인데 꼭 보고 싶다길래 오랜만에 방에 프로젝터를 연결해서 영화를 봤다. 재미있고, 슬프고, 감동적이었다. 딸 덕분에 좋은 영화 한 편 볼 수 있었다. 막내는 열심히 잘 보는 것 같았는데 오늘 하루가 고단했던지 중간에 깊은 잠에 빠져 버렸다. 


이렇게 딸의 방학 3일째가 흘러갔고, 나의 남은 휴직 3일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글을 쓰며 돌아보는 이번 주말을 너무 재미있었다. 24시간 내내 아이들과 붙어 있었지만 힘들진 않았고 맛있는 거 많이 먹고, 많이 웃는 시간들이었다.


이런 주말만 반복된다면 행복이라는 게 멀리 있지 않다는 걸 느끼며 살게 될 것 같다.


이전 01화 첫날의 기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